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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Oct 06. 2018

존재의 증명

볼리비아 : 우유니 소금사막


여행 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알랭드보통, 여행의기술)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여행을 꿈꾼다. 긴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고 나니 사람들로부터 여행을 왜 갔냐는 질문을 많이 받곤한다. 그들은 무언가 거창한 대답을 원한다. 여행을 다녀오기 전의 나도 긴 여행의 끝엔 엄청난 변화가 있을것 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대에 불과했다. 오히려 전보다 더 고통스러운 현실이 기다렸다. 꿈과 현실의 중간에 놓인 아주 애매하고도 혼란스러운 시점이었다. 눈 앞에 실제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그것을 느낀 순간, 이제는 꿈과 현실의 경계선에 벗어날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꿈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느냐 혹은 현실에 받을 딛고 살아가느냐 양자택일.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있기 위한 선택은 ‘꿈'이었다.





망망대해 같이 끝없이 펼쳐진 우유니 소금 사막이 그토록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은 오히려 여행이 끝난 후 사진 속의 나를 보았을 때였다. 사진 속의 나와 지금의 내가 너무나도 대조적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새벽 3시 아직은 모두가 잠든 시각, 30분 정도 차를 타고 달렸다. 우유니 소금 사막에는 새벽의 고요한 어둠만이 가득했다. 차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와 발끝으로 전해지는 빗물의 찰 강 거림. 나와 어둠. 세상에 이 두 가지만 존재하듯 아주 평화로운 ‘무無'의 상태 속에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나는 나로서 존재했다. 눈 앞의 세계는 아니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였다. 조금은 낯선, 아주 생경한 감정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전 날 내린 비 때문인지 별들이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그렇게나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사실, 별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 순간 자체로 마냥 좋았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별도 몇 억년 전에 이미 생을 다 한 별이니, 이 어둠 속에도 여전히 별은 빛나고 있으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비를 가득 머금은 하늘이 조금씩 빗방울을 떨어트리기 시작했지만, 그 정도는 이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주위를 감싸고도는 차가운 공기의 알싸함마저 상쾌하게 느껴질 정도로 행복했으니 말이다.


어둠이 사그라들고,  멀리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출. 그것은 세상의 시작이었다. 빛과 어둠이 존재하는 이유는 서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무채색이었던 세상이 서서히 오묘한 빛으로 물들어갔다. 백지에 물감이 퍼져가듯 세상은 색을 얻고, 이름을 얻었다.


우리는 그것을 ‘하늘'이라 불렀고, ‘땅’이라 불렀다.
그리고 나는 ‘너’가 되었고, 너는 ‘우리’가 되었다.


어둠 속의 내가 실제로 존재하는 순간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소금 사막의 풍경을 보고 있으니 마치 다른 세상에 빨려 들어온 기분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굴에 빨려 들어가 ‘꿈속의 세상’에 도착한 것처럼, 여긴 분명 이상한 나라였다.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런 피상적인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나의 감정이 그랬다. 지구에 존재하는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경의롭고, 숭고함마저 느껴지던 곳이었으니까.


전에 본 적 없던 빛깔의 하늘이 사방에 가득했다. 눈 앞에는 붉은 태양과 함께 보랏빛 하늘이 있었고, 뒤로는 회색 먹구름이 묘하게 어우러진 분홍빛 하늘이 있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경계선을 허물듯 나의 발아래는 또 다른 하늘이 펼쳐졌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늘의 색깔도 시시각각 변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색깔로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색이었다. 오히려 점점 맑아지는 날씨에 조금씩 푸른빛으로 변해가는 하늘이 아쉬울 정도였다. 별을 보지 못해서 속상한 마음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진한 먹구름과 빛이 만들어낸 세상이 더 큰 선물을 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꿈꾸는 세상에 첫 발을 내딘 순간은 언제나 경이롭고 짜릿한 감정을 선물한다.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지금 내가 느낀 이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추위마저 잊을 정도로 가슴 벅차던 이 느낌을 오래 간직해야겠다 다짐했다. 그리고 이곳에 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무엇을 위해 왔는지 처음 그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되뇌고 되뇌었다.


여전히 세상 속에는 내가 가보지 못한 ‘꿈속의 세상’이 많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곳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다. 지금이 맞는지 틀렸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미 ‘꿈’ 같은 현실이었다.

 



아주 많은 철학자들이 삶의 본질에 대해 논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눈에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왔다. 본질 위의 본질. 존재 위의 존재. 그것을 인간이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 삶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은 개인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것이 무엇이길래 그들은 그렇게 많은 질문은 던졌던 것일까.


존재해야만 현실이라 생각했고, 존재하지 않으니 꿈이라 생각했다. 꿈이 한 낮 꿈이 된 순간 그것이 고통이었다. 여행이 끝난 후 사진 속의 우유니를 보고 전율을 느낀 이유는 다름 아닌 이상理想을 현실로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내 여행의 이유를 그때서야 찾았다. 어떤 상황과 공간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의 물결을 나의 존재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시는 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우유니를 나는 다시 가고 있었다. 



"어느 길로 가야 되는지 묻고 싶었어."
"그야 어딜 가고 싶으냐에 달렸지."
"그건 별로 상관이 없어."
"그럼 아무 길로 가도 되겠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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