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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Jun 21. 2019

여행에도 여백이 필요해

영국 그리고 두 번째 런던


영국은 나에게 꿈의 나라였다. 몇 년 전 영국을 처음 왔을 때 나는 영국 특유의 분위기에 매료됐다. 추적추적 비만 내리는 이곳이 뭐가 그렇게도 좋았던지 마치 운명의 나라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전히 좋은 이유는 알 수 없다.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으니까. 어쩌면 영화에서만 보던 브리티시 발음에 반한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뒤로 줄곧 영국의 런던은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 1순위에 있었다. 그런 곳에 다시 왔다. 익숙한 도시 냄새와 아스팔트로부터 올라오는 습기 가득한 온도. 삭막함과 차분함이 묘하게 뒤섞인 이 도시가 좋았다. 이런 곳에서 의외의 온기를 발견할 때의 기쁨은 의외로 어마무시하다.     


여행 일주일 차, 북적이던 여행자들에게서 벗어나 처음으로 혼자 보내는 하루였다. 아침 11시, 오늘은 낯선 이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고요한 동네에 뜨거운 햇살이 교향곡처럼 드리운다. 

    

한적한 마을 골목을 지나니 활기 가득한 중심 거리가 나왔다. 이곳이 목적지가 맞는지 헷갈렸다. 사실, 목적지는 없었다. 정처 없이 한 시간을 더 걸었다. 그러다 문득 목이 말라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책으로 가득한 북 카페였다. 로즈베리 레모네이드와 초콜릿 쿠키를 시켜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곳의 북 카페의 종업은 굉장히 친절하다. 카페에 오는 모든 손님에게 말을 걸고, 오늘이 하루는 어떠했는지 다정하게 물어본다.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부분 살가운 인사와 함께 ‘저번에 하던 일은 잘 끝났어요?’,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어때요?’와 같은 관심 어린 질문들이다. 그의 시선이 유독 오래 머무는 곳이 있었다.     


머리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계속해서 자신의 앞의 부인에게 묻는다. “Honey. Can you hear me?” 그녀는 아주 느린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쉰 할아버지는 그녀의 무릎 위에 흩어져 있는 담요를 정리하고는 휠체어를 밀었다. 소년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던 종업원은 그들을 향해 조심히 가라며 인사를 건넨다. 내일도 만나자며, 오늘은 얼굴이 좋아 보인다며. 그의 모습에 사뭇 따뜻함이 느껴져 그 온기가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카페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의 삶을 엿보게 된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어떤 대화를 하고, 어떤 것을 먹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창문 너머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사라지는 시간을 눈에 담는다. 가끔 여행자에서 현지인으로 전이되는 순간이 있다. 가령 오늘 같은 날이 그렇다. 늘 오던 카페인양 들어와 음료를 시키고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오로지 나의 할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그렇다. 

    

온종일 카페에 앉아 멍때리는 그런 날.

노트북과 책을 펴놓고, 정말 펴놓기만 하는 그런 날.

따뜻했던 핫초코가 차갑게 식을 때까지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그런 날.

그러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온 동네를 미친 듯이 걷는 그런 날.

그리고 집에 와서 기절하듯 잠이 드는 그런 날.     

무료한 자체에 매료되는 그런 날.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다 이내 더 이상 움직이는 앉는 손가락을 보고 의자에 기대어 카페를 오고 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아 맞다. 여기 한국이 아니었지.’ 하고 정신이 차려졌다.   

   

허전함을 채우기 위한 발악은 아주 미세한 신경 세포를 타고 손끝의 감각으로 전해졌고, 나도 모르게 책을 손에 들었다. 나는 또다시 여행의 자극적인 것을 찾아 습관적으로 움직였다. 여행의 환상은 끝났지만, 마음은 멈추지 않았다. 여백을 견뎌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마음과 시선에 잘 세공된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했다.    

  

사실 오늘과 같은 일련의 시간들은 여행 중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감정을 절제하기 위한 나만의 장치에 불과하다. 이렇게라도 여백을 줘야 했다. 인풋과 아웃풋의 적절한 조절이랄까. 모든 순간을 폭넓게 느끼되 깊이 빠져들지 않기 위한 브레이크 같은 시간이다. 

     

여행하면서 깨달은 것은 삶의 어느 한 부분을 외면하고 잊고 싶을 정도로 여행에 빠져드는 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여행은 순간적이지만 순간적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위험하게 중독되는 마약보다는, 매일 아침 눈뜨는 일처럼 당연한 것이 되어야 했다. 죽어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것들이 모여 하나의 세상을 이루듯 ‘살아있는 것’이어야 했다. 빈 공간에서 발견하는 의외성의 기쁨을 만끽할 줄 알아는 게 필요했다.      


여행의 의미는 그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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