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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Oct 10. 2019

내 안의 두려움

이집트:다합


애증의 바다와 본격적으로 만나는 날. 스쿠버 다이빙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모든 것이 새롭고,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하던 날이었다. 10kg가 넘는 웨이트 (바다에서 중성 부력을 위해 허리에 착용하는 납 벨트)와 무게는 가늠도 안되는 무거운 공기통을 메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바닷속은 미지의 세계이다. 순식간에 온 몸을 사로잡는 두려움에 걱정이 앞섰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자신감을 어디로 갔는지, 숨을 내쉬는 것조차 쉽지 않게 느껴졌다. 지금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한 몸, 오로지 입에 물고 있는 호흡기의 의지해 바다에 몸을 맡기는 일뿐이었다.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바다에서는 그에 맞는 호흡법을 배워야 했고, 몸과 마음이 여유가 필요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일 삶이라 했던가. 방황하는 손과 점점 아파오는 귀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더 멀리 데려가는 듯했다. 어느 곳 하나 단단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수중의 불안함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육지의 안정감이 몹시도 그리웠다.


어떻게 끝이 났는지 모를 첫 번째 입수를 마치고, 두 번째 입수가 되어서야 조금씩 적응이 되는 듯했다. 물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벼움에 동화되고, 수면 아래로 떨어지듯 반짝이는 물빛을 느낀다. 여전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여유를 찾아가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되뇌었던 한마디 ‘괜찮아. 침착하자.’


늦은 저녁, 지친 몸을 이끌고 SUBA DIVE 라고 적인 책을 펼친재, 열심히 자격증 공부를 했다. 사실, 불안함을 조금이라도 잠재우기 위해 이론 공부에 매달렸다고하는게 맞을것 같다. 머리로라도 잘 파악하고있으면 위기이 상황에서 조금은 덜 당황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위기의 순간에서는 머리가 백짓장이 되고 말았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감기는 눈을 애써 떠가며 시험 공부에 몰두했다. 

순간, 내가 살고자하는 욕망이 이렇게나 강한 사람이었었나 싶었다. 어찌되었든, 사람이라는건 언제나 자기 위안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이지 않은가.


다행히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하루하루 물 속에서의 새로운 재미를 알아가는 중이다.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뀌는 순간은 언제나 짜릿하고 가슴 뛴다. 아직까지 깊고 푸른 심해보다는 얕고 거친 모래 바닥이 조금 더 친숙하지만, 언젠가는 더 깊은 바닷속에 코끼리상을 보러 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



사람은 적응이 참 빠른 동물이다. 다합 생활도 차츰 적응해간다, 여유로운 오전 시간을 보낸 후, 오후 다이빙 수업을 마치고 나면 금세 하루가 지나간다. 어제 하루 물에 들어갔다 왔다고 오늘은 비교적 무서움이 덜했다. 첫날 애를 먹었던 이퀄라이징 ( 압력 평형 기술 : 유 스타티 오관을 통해 중이 부분에 공기를 밀어 넣어 외부와의 압력 차이를 해소해주는 것)도 귀가 아프기 전에 잊지 않고 하는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터득했다. 바닷속의 호흡법에 적응해가는 중이다. 암흑이라 느껴졌던 이곳이 조금은 평화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이 마음과 같이 따라주지 않을 때면 온 몸을 휘감는 두려움에 덜컥 잡아먹혀 조급해진 마음과 함께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곤 했다. 수중에서 부력을 컨트롤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럴 때 일수록 천천히, 그리고 침착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다시 한번 타이른다.



물에 대한 두려움은 나에게 풀기 어려운 숙제이자 애증의 관계였다. 어릴 적 해변가에 가서 놀다가 거센 파도에 몸이 뒤집혀 물을 잔뜩 마신 사건과, 비닐봉지인 줄 알고 무심코 들어 올렸던 것이 해파리였던 사실을 자각함과 동시게 독에 쏘여 소스라치게 놀랐던 날 이후, 바다는, 물은, 나에게 가까이하고 싶지만 가까이하기에는 너무나도 먼 존재였다. 그 후로 이런 트라우마를 극복해보고자 여러 번 시도는 했지만 물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푸른 바다는 잿빛으로 변했고, 어디선가 덩치 큰 상어와 고래들부터 시작해 소용돌이 같은 물보라가 나타나 잡아먹히는 괴이한 상상들이 펼쳐졌다. 그리고는 발버둥 치듯 수면 위로 올라와 거친 호흡을 내쉬기를 여러 번.


여름휴가 시즌 때면 워터파크나 해변, 계곡 등 물놀이를 한다며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움 반, 이해되지 않는 마음 반이었다. 물놀이에서 재미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던 나였기에, 여름은 더위에 지치기만 하고 죽도록 재미없는 계절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데 사람 많고 정신 사나워서 안가’ 하면서 이런저런 자기 합리화와 함께 변경 거리를 만들었다. 사실은 무서웠던 거지만...그러면서도 친해지고 싶은 미련과 아쉬움에 여행을 갈 때면 꼭 수영복 한 벌씩은 챙기곤 했다. 호텔 수영장에 발만 담근 채 살랑살랑 물장구를 치거나, 그것보다 조금 더 용기를 낼 때면 발이 닿는 깊이의 풀장에서 겨우 벽을 잡고 물 속에 들어가는 정도가 전부지만 말이다.


이랬던 내가 며칠 사이에 물을 무서워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은 것들의 변했다. 그것도, 일주일도 채 안되는 시간동안. 내 입에서 바다에 빨리 들어가고 싶다는 말이 나올 줄 누가 상상했을까. 스쿠버 다이빙은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질 거라던 주변 사람들의 말을 실감하는 중이다.



두려움을 마주한다는 것은 뭘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연약함을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 바라볼 수 없다 생각했던 자신의 약함을 바라보는 것, 그러기 위해선 속도를 늦추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삶의 방식을 하나씩 배워가는 중이다. 

들숨. 날숨. 한 호흡 내뱉을 때마다 느껴지는 어떠한 신비로움.


내가 바다로부터 배운 첫 번째 지혜. ‘여유’


그것으로 오늘의 하루는 이미 충분했다.

어제와는 다른 한걸을 내디뎠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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