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여름
노트북을 접고 책도 펴지 않은채 글을 손에 놓은지 일주일 째가 되었다. 여행 중 이렇게 긴 시간 아무것도 안한건 처음이다. 분명 호기롭게 글쓰겠다고 떠나온 나였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열심히 사진찍고 일상을 공유하며 '나 잘지내고있어요!'하고 보여주는 삶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행복으로 덕지덕지 물든 글을 쓰면서 죄책감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이 바라는 기대치에 부흥해야 한다는 강박이 따라다닌 순간, 창작을 위한 나의 여행은 내 손을 떠난지 오래였다. 여행 일정을 전면 수정한채 고요하고 한적한 한인민박 스텝으로 들어갔다. 4~5군데 연락을 돌린후에 가장 먼저 계약이 된 곳.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곳 이탈리아 피렌체.
오늘은 더욱더 경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손님들 조식을 차려주고 간단히 뒷정리를하고 장을보고 오면 하루의 필수 일과는 끝이 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여행자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현지인의 모습을 한채, 그들 속에 섞여 살아간다. 익숙한듯 거리를 거닐며, 두오모 성당 앞에서 자주 마주치는 외국 가이드들과 친숙하게 눈인사를 주고받고, 마트 점원에게는 반갑게 손인사를 건낸다. 고작 일주일하고도 2일만에 이런 일상이 익숙해졌다. 복잡하고 정신없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그런 일상.
“오늘도 어디 안나가니. 아무것도 안할거야?”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데 더 아무것도 안하고 싶어요. 이런 여유가 오랜만이거든요.”
체크아웃이 다 끝난 거실 소파에 널부러져있는 나를 보며 민박 사장님이 물어왔다. 나는 짧막한 대답을 남긴채, 침대에 몸을 뉘였다. 뒹굴 뒤잉굴-내 생활 반경의 대부분을 차치하는 민박 가장 안쪽에 있는 내 방 안 크고 넓은 침대. 아침이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이불을 뒤짚어 쓰게 되는 방. 그리고는 이내 곧 더위에 숨이 막혀 이불을 걷어차고마는 그런 애증의 방.
모두가 떠난 숙소의 적막함이 싫어 노트북으로 한국 예능을 틀었다. 생각할 틈을 주고 싶지 않은 탓이겠지. 누가 이 곳을 낭만이 넘치는 도시 피렌체라고 생각하겠는가. 지금의 내 모습은 딱, 할 일 없이 시간을 떼우는 한량과 다름 없다. 조금 다른게 있다면 밤 낮 쉬지 않고 창문 너머에서 클래식과 버스킹 연주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
다음 체크인까지 생긴 여유가 왜이리도 영원처럼 느껴지던지. 고요함이 생길때마다 걱정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와 나를 괴롭혔다. 생각없이 창밖에서 들리는 음악소리를 가만히 경청 할 수 있는 안정감이 필요했지만 마음이 어지러우니 멍하니 공상에 빠지는것 마저 불가능했다.
그런 여백을 마주하면 나를 기다리는 현실들이 가장 먼저 찾아온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잠시 바다 건너 던져 놓고 온 나의 위치, 해야하는 일들, 미래, 인간 관계 그외 수많은 것들. 조금은 도망치고 외면하고싶은 그런 현실. 여행을 떠나온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도돌이표같은 여행을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계속해서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와중에 아주 솔깃한 스카웃 제안을 받았다. 현지에서 같이 가이드를 해볼생각이 없냐는 꽤나 괜찮은 조건의 제안이었다. 적당히 돈도 벌고, 적당히 삶을 즐기는, 해외에서의 삶을 꿈꿔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혹할만한 그런 제안이었다. 그 날부터 아주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국에 가지말고 이곳에 있을까.'
'그럼 내가 한국에서 하고자했던 일들은? 내 미래는? 하지만 제안을 놓치지엔 너무 아까운걸.?'
하루에도 수십번씩 오락가락했다.
마치 악마와 천사가 귀에대로 속삭이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며칠 보내고 나니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벌떡 일어나 한동안 쳐다보지 않았던 핸드폰을 꺼내어 들어, 친구에게 연락했다. 때로는 제 3자의 날카로운 말이 필요할 때가있는 법이니까. 정확히 말하면 그냥 무조건 털어놓고싶은 거였다.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싶은 욕심.
한참을 나의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말했다.
"이러면 행복할거야 하면서 자기 합리화하지 마. 제안 듣고 ‘행복할거야. 행복하겠지’ 라며 스스로 세뇌하지마. 지금 너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곳에서 잘 살고있다' 라고 하면서 과도하게 행복해 하는척 하는것 처럼 보여. 누군가에게 좋아보인다거나 좋은 말을 들으려고 사는것 같아. 나는 너가 주변 신경 안쓰고 집에서 티비를 볼때 제일 행복해보였어."
뼈때리는 친구 말에. 소심하게 반항을 했다.
"티비 볼때는 누구나 다 행복해 보이는거 아니야..?"
"아니...그 말이 아니잖아. 내말은!! 너가 짐 같은거 다 내려놓고 편하게 자유롭게 사는게 행복해보였다고. 그리고 나는 너가 알바를 하면서 글을 써도 지금보단 응원했을거야.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너를 응원했을거라고.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 내가 봐온 너고."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낯간지럽기 짝이없는 이 말들이 날카롭게 심장에 박혔다.
친구는 말을 말을 이어갔다.
"만약에 지금 이순간 나한테 술쳐먹고 자는게 행복 1순위라고 치자. 그런데 맨날 술쳐먹고 파티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텝 제안을 받았으면 고민이나 걱정없이 바로 오케이하겠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면돼. 지금 네가 제안을 받고 뭔가 하나하나 재고 따지면서 고민한다는거는, 뭔가 걸리는게 있다는거야. 그럴싸한거 말고. 행복한길을 가. 지금 너 도망치고 있는 중이잖아. 현지 이순간 행복한가부터 생각해. 너의 영감에 도움되는 일만하라고. 너 잡다한 생각이 너무 많아. 내가 봤을땐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마음이 들떠있는 상태같으니까 괜히 감정에 치우쳐서 혹하지 말고."
마치 제 일인것 마냥 열변을 토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멍하니 듣고 있다. 후- 큰 한숨과 동시에 말했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했어. 그러니까 말로 그만 때려.아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의 무게는 더 커지고, 행복한일 보다는 행복해보이는 일을 선택한다. 매력적인 일, 나에게 매력적인 것 보다는 누군가의 시선속에 갇혀 그들의 매력적이라 생각하는 길을 택하게 된다. 그랬다. 어느순간 가장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허영심과 욕심으로 똘뭉친 아이가 스멀스멀 자라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럴싸한 인생을 살고싶었던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인생의 낭만의 정의가 다시 내려졌다.
이런 모습이 싫어, 그 날것의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무서워서 무수히 많은 이유를 대며 도망쳤다. 나의 글이 발전이 없는 이유는 이 감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낭만을 쫒다가 낭만을 죽이는 그런 삶이라니.
이상적인 기대의 범주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마음. 더 대단한 것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강박.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는 미완의 존재였고, 그 속에서 탄생하는 모든것을 사랑했다.
'아.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무언가 잘못되었구나.'
번쩍 정신이 들었다. 역시, 때로는 3자의 날카로운 쓴소리가 필요하다.
"사장님 죄송해요. 저는, 가야해요. 가서 할 일이 있거든요."
제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이요.
저의 영감을 끊임없이 설레이게 하는 그런 일이요.
그게 설령 조금은 고된 가시밭길이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