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이탈리아 : 피렌체

by 나린

유럽 전역에서는 사상 최대의 폭염이라는 뉴스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일사병에 쓰러지는 사람들의 속출했다. 피렌체도 예외는 아니었다. 40도가 웃도는 기온에서 살아남기란,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는 것뿐이었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날씨 속에서는 활동량으로 줄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온 도시 전체가 에어컨 실외기를 틀어놓은 듯했다. 선풍기를 틀어놓은 실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기세가 유독 비싼 피렌체에서 가급적이면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고 싶었는데, 결국 전기세 폭탄을 선택했다. 해가 뜨고 지는 그 순간까지 에어컨을 단 한시도 끌 수 없는 그런 폭염이었다. 낮이 긴 백야현상 탓에 더위는 늦은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아침 10시부터 창문으로 뜨거운 햇살이 들기 시작한다. 따스한 햇살이라기보다는 정말 말 그대로 뜨거운 햇살이었다. 5분만 서있어도 살이 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도로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산지 1분도 안된 젤라또는 손등을 타고 주르륵 흐르기 시작하는 그런 날이었다. 도저히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런 날에 나가는 건 불쾌감 지수만 높일 뿐 득이 될게 하나도 없었다.


날이 너무 더워 제대로 여행 조차 하지는 못하는 날씨 탓에 괜히 우울해졌다. 할 수 있는 게 아무도 없어진 것 같은 기분에 에어컨이 켜진 거실 소파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


땀을 흘리며 숙소로 들어오는 누군가 커다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이곳이 파라다이스지, 완전 천국이네, 원래 여행은 편하게 쉬는 게 최고야. 가끔 쉬면 좀 어때. 나가서 많이 돌아다닌 다고 다 좋은 여행은 아니야."


하루 종일 더위에 지쳐 제대로 된 외출을 못해서 우울해하고 있던 나에게 누군가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며 말하는 것 같았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인정하고 싶은 마음과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일어났다. 여행 내내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속삭였다. '여행'이라는 타이틀을 속에 매일 특별함을 찾고, 익숙함을 거부하고, 자극적인 것들을 해야 제대로 된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찾고, 보고, 느끼고, 어떤 수식처럼 반복했던 일련의 과정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일상적인 것들과 권태로움이 늘어나고, 어느 순간 그 시간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게 된다. 그것을 인정하기까지가 참으로 힘들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매 순간 특별할 수 다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나의 특별함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날은 유난히 마음이 가벼운 날이었다. 하루에도 일기예보를 몇 번씩이나 봤다. 날이 풀리기만을 기다렸다. 비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날이 풀리자마자 나가겠노라 하고.


이런 내 마음에 응답이라도 하듯 일주일 넘게 이어진 폭염으로, 지쳐있던 도시 전체에 단비 같은 소나기가 내렸다. 창문 너머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정작 그런 날이 오니, 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오히려 창문으로 살랑이며 불어노는 바람을 느끼며 집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으로 얕고 간사하다.


어느 하나 완벽한 것 없는, 특별할 것 없는, 부족하고 권태로운 미완성의 일상에서 만끽하는 황홀.


나는 지난날의 폭염이 싫었다기보다, 풀어내지 못한 열병 같던 내 마음이 싫었던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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