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연주

볼리비아 : 코파카바나

by 나린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호수인 티티카카 호수와 접해있는 항구 도시이다. 티티카카호수를 조금 더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코파카바나에서 한시간 반 배를 타고 태양의 섬(Isla del Sol)으로 가야한다. 호수 근처 서른여섯개의 섬 중 하나인 그곳은 잉카의 황제가 태어난 섬이라 하여 '태양의 섬'이라고 불린다.


코파카바나를 지키고 있던 인디언




오늘은 티티카카 호수를 보기 위해서 여행 중 만난 일행들과 전망대에 오르기로 했다. 혼자의 여행이 익숙해질 때쯤 그들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은 꽤나 대화가 잘 통했고, 여행의 많은 시간, 여정을 함께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혼자 떠나온 여행자들을 많이 만나곤 한다. 그들과의 만남은 외로운 여행길에 든든한 도반道伴이 된다.


전망대를 향해 20분 정도 걸어 올라갔다. 생각보다 가파른 언덕에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높은 곳에 올라 발 밑을 바라보는 일은 매번 경의롭고,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들을 선물하곤 한다. 때로는 시원 섭섭하고, 때로는 보람차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감동받고, 때로는 숙연해지기도 한다.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우리의 인생과 참 닮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심호흡을 크게 내쉬고 주위를 둘러보니, 앞에는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진 호수와, 뒤로는 붉은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순간 그곳에 있던 우리는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이런 곳에 맥주가 빠질 수 없지!”


평소에 마시던 것보다 몇 배는 더 시원하고 달달하게 느껴지는 맥주 맛. 누군가의 함께 하느냐에 따라 음식의 맛이 달라지듯 그날의 맥주 맛은 평생 잊지 못할 맛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청춘의 전부인 낭만에 살고, 낭만에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모든 것이 완벽한 순간이었다.








옆에서는 외국인 친구들의 버스킹이 한창이었다. 경쾌한 젬베 소리, 맑은 피리소리, 그리고 거기에 딱 어울리는 흥이 가득한 노래까지 더해지니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함께 연주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흔쾌히 “Of course!”를 외치며 그들은 내게 젬베를 건네주었다. 그들은 나에게 먼저 시작하라며 손짓을 했고, 내가 치는 리듬 위에 노랫소리와 피리 연주를 얹기 시작했다.


앞뒤 하나 맞지 않는 서툰 멜로디는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제각기 다른 리듬이었던 멜로디는 오선지에 음표가 그려지듯, 하나의 노래로 스며들었다. 누군가는 박수를 쳤고, 누군가는 함께 춤을 췄다. 아주 자유롭게. 처음이었지만 처음이 아닌 것처럼. 마치 어제도, 오늘도 함께 춤을 추고 연주했던 것처럼 음악을 즐겼다.


이것은 우리가 그 시간 속에 함께 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는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간질거렸다. 누군가와 ‘친구’가 된다는 것.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 여행을 오기 전까지만 해도 어렵게만 느껴지던 행위들에 익숙해지고 어느새 나는 이 전과는 조금 달라진, 훨씬 자유롭게 누군가와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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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의 음악론에 보면 “노래와 음악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고 사람들을 매우 빠르게 변화시킨다.”라는 말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음악은 삶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우린 아주 많은 부분 음악과 함께 한다. 위로받고 공감하고, 행복해한다. 음악의 힘이 위대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단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감정들을 공유하게 하고 공감하게 만든다는 것에 있다.


우리들 사이에 만난 기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서로에게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고, 아름다운 풍경을 공유하며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기울이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음악으로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그저 행복한 순간에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도반道伴이었다.



"Salud!"

맥주병을 부딪혔다.

다시금 경쾌한 젬베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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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란 즐기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으로서는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는 음악이 없을 수가 없다. 즐거우면 곧 그것이 목소리에 나타나고 행동으로 표현된다."

(순자, 제20편 음악에 대하여 논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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