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에 서 있어야 할 팔자

by 김대일

오늘도 어김없이 B 형은 새벽 산책길에서 찍은 사진을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 심지어 엊그제는 출장을 가려고 끊은 그날 아침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을 캡처한 사진을 올리면서까지 루틴에 충실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엄격한 규칙성. 새벽 6시 전후면 깨똑거리는 메시지가 단톡방 모든 이들 일상의 일부가 된 지는 꽤 오래됐다.

너무 철저하면 사람 모질어 못쓴다는 선입견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연중무휴로 오전 6시를 전후해 뒷동산을 산책하며 주변 풍경을 사진 찍어 전송하려면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난다는 건지. 듣자 하니 전날 꽐라가 될 만치 퍼마셨을지언정 산책 갈 시간만 됐다 하면 두 눈이 번쩍 떠진다는데 이건 뭐 보름달만 뜨면 변한다는 늑대인간의 아침형 버전 아니면 사람 탈을 쓴 로봇이 따로 없다. 천수를 누리기 위해 사서 하는 고생이든 고질이 되고 만 습관성 조기기침(早期起枕) 증후군이든 간에 그런 그를 쳐다보는 나같이 방만한 인간은 당연하게도 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토록 완고해 뵈는 그와 어찌어찌해서 대면하게 된다면, 모름지기 사람은 직접 만나 겪어봐야 알 수 있는 법이라는 시쳇말에 금세 공감할 것이다. 자기 자신한테는 완고할는지 모르겠으나 타인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유연하게 굴지를 않나 주변머리까지 출중하다 보니 매력적이라는 표현이 절로 튀어나오니까. 처음에는 사람 사이에 갖춰야 할 격식에 엄근진한 딱딱한 태도에 살짝 부담을 느낄 수는 있지만 서먹서먹함도 잠시, 전혀 천박하지 않게 수더분하며 시의적절하기까지 한 특유의 능글능글한 표정과 제스처, 유머까지 목격하게 되면 감정의 골은 이미 평탄화 작업이 끝난 뒤다. 나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겪어봤지만 이토록 고상함과 스스럼없음이 공존하는데도 그 이중적인 면모에 이질감이랄지 반감이 전혀 일지 않는 이는 다섯 손가락으로 채 꼽지를 못하겠는데 그중 둘째가라고 했다간 그가 몹시 서러워할지 모를 일이다. 그만큼 별종이란 소리다 내가 보기에.

내가 《우리들의 만인보》라는 보통 사람들의 열전을 기록하기로 작심한 뒤 첫 인물로 그를 정한 건 지극히 우발적이다. 그가 오늘 단톡 방에 사진과 함께 올린 글귀를 보고 홀지에 홀렸다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사람들이 멈춘 사이 자연은 참 빠르게도 익어갑니다^^’


다른 데는 모르겠고 매일 산책을 나서는 제 동네 뒷동산 자연의 섭리만은 이미 꿰뚫고 있을 그가 자연이 선사하는 신비한 매력을 사진을 곁들여 대수롭지 않게 툭 던지는 건 B 형만의 의뭉스러움이다.

새벽 6시 전후 어김없이 전송되는 메시지가 클리셰로 굳어진 지 오래지만 일상처럼 굳어진 그 행위에 분명 웅숭깊은 뜻이 담겨 있으리라는 나는 짐작한다. 특전사를 나온 본인은 정작 쑥스러워서 차마 말 못 하겠지만 아마 이런 내용이 아닐까. ‘그저 말없이 함께 있음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벗들과 함께 행복을 얻는 방법 중에서도 으뜸가는 거라고 했다(베르나르 베르베르, 『상상력 사전』, 열린책들). 너희는 말하지도 말고 그대로 가만히 있으라. 내가 에오스의 쌍두마차를 타고 너희들에게 먼저 다가가리니!’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구심력을 일으키고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그는 무리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할 팔자다. 구심점이 필요한 내 글이 그를 맨 처음 언급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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