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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바 May 21. 2020

반복된 자극은 생각의 전파를 더 쉽게 만든다

또한, 감정이 아닌 구체적인 생각도 지금 당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우리의 기억에 무의식적으로 저장되어 우리의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직장 동료에 대해 믿기 힘든, 안 좋은 소문을 접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제가 그 동료와 친분이 있었다면 처음에는 그 소문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무시할 수 있겠지만, 그 소문이 여러 경로를 통해 여러 차례 계속 전달된다면 저는 어느 순간 그 사람을 볼 때마다 그 소문이 생각날 수 있습니다.


공자의 제자였던 증삼과 그의 어머니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바로 반복된 자극에 의한 행동 변화에 대해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공자의 제자이자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에서 소문난 효자였던 증삼에게는 노모가 계셨습니다. 증삼의 어머니는 어느 날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소문을 듣게 되지만 자신의 아들이 그럴 리 없다며 그 소문을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소문이 다른 사람에게서 세 번이나 반복되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문의 진위 여부에 대해 확인하고 다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에릭 칸델의 기억력 연구에 따르면 반복적 자극은 한 번에 몰아서 이뤄지는 것보다 지속적인 강화가 이뤄지는 방식으로 일어났을 때 강하다고 합니다. 칸델은 민달팽이가 자극을 받았을 때 몸을 움츠리며 아가미를 숨기는 모습을 통해 장기 기억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이때 자극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민달팽이는 아주 작은 자극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연구 결과, 단기간 내 40회의 자극을 받은 민달팽이는 1일 동안 자극에 대한 민감성이 강해졌지만, 하루에 10회씩 4일에 걸쳐 자극을 받은 민달팽이는 수주에 걸쳐 민감성이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명한 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온스(Robert Zajonc)는 대학 신문에 터키어 또는 터키어처럼 보이는 단어들을 나열한 광고를 게시한 후 터키어를 전혀 모르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단어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해보았습니다. 단어들은 무작위적으로 노출 빈도수를 차별했는데, 어떤 단어는 여러 차례 등장한 반면 어떤 단어들은 1~2번 정도만 나타났습니다. 실험 결과, 해당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도 여러 번 등장한 단어에 대한 호감도가 1~2번 등장한 단어보다 훨씬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복이 익숙함을 만들고, 익숙함이 호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반복된 자극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그것에 익숙하게 만들고, '인지적 유창성'을 낳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인지적 유창성'은 행동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점화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점화 효과란 우리가 어떤 자극을 접했을 때 그와 연관된 연결고리를 통해 전혀 다른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빨간색 승용차를 보면 머릿속에 즉각 소방차가 생각나고, 소방차는 다시 화재를 떠올리는 식으로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점화 효과입니다. 우리에게 소방차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다면 아마 빨간색을 보았을 때 다른 더 익숙한 개념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이 같은 과정으로 처음 접했을 때는 콧방귀를 뀌던 생각이지만 그것이 여러 차례 반복될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에 남아, 다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기존 생각과 얽히고설켜 자신의 것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듣던 이야기나 행동 방침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것이 된 경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명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맥키(Robert McKee)는 저서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를 통해 초보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에 하나가 자신이 여태 읽고 봐 왔던 것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머릿속으로 합치고 뭉뚱그려 자신만의 모범을 만들고 그것에 맞추려고 작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사회 심리학의 바이블 중 하나인 <군중심리>를 저술한 저자인 귀스타브 르 봉은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반의 사람이었지만 무의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같은 얘기도 자꾸 반복되다 보면 결국 우리 행동의 동기가 생성되는 무의식적 심층에 서서히 각인되고, 반복의 힘은 바로 이런 사실에서 기인한다. 그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누가 반복된 주장을 했는지를 더 이상 알지 못하고 결국 그 주장을 믿어버리고 만다. 광고의 놀라운 힘은 바로 여기서 생겨난다. X라는 상표의 초콜릿이 최고라는 광고를 백 번 천 번 반복해서 읽다 보면 어디를 가든지 그 광고가 귀에 들려오는 듯하여 끝내는 정말 그 초콜릿이 최고라고 확신하게 된다. Y라는 상표의 밀가루가 잘 낫지 않는 병에 걸린 사람들을 대부분 살렸다는 광고 문안을 천 번이나 읽었다고 치자. 그럴 경우, 만일 같은 병에 걸리면 우리는 그 밀가루를 한번 먹어보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만약 A는 악명 높은 깡패고 B는 정말 정직한 사람이라는 기사를 똑같은 신문에서 항상 읽는다면 결국은 그게 사실이라고 믿어버리게 될 것이다 [두 인물을 수식하는 형용사가 완전히 정반대로 나오는 다른 신문을 자주 읽어보지 않는 한]. 확언과 반복은 우월을 가릴 수 없을 만큼 각각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군중심리 中>


우리는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전파하기보다는 그것이 왜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인지 확인을 하고 전파를 해야만 자신의 의도와는 벗어난 생각을 전파하는 실수를 피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생각이 어떤 경로로 자신에게 떠오른 것인지, 그것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생각에 관한 생각, 즉, 메타인지(meta cognition)를 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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