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집단과 허브의 생각에 내 생각을 '동조'하거나 '수렴'하고 있습니다. 이때 동조와 수렴을 더 강하게 만들거나 더 약하게 만드는 힘이 작용하기도 합니다. 더 강하게 만드는 힘으로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나와 연결된 허브가 얼마나 영향력/신뢰도가 강한 존재인가'가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힘으로는 '내가 동조하는 또는 수렴하는 집단에 얼마나 더 많은 숫자의 군중이 있느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솔로몬 애쉬와 사회 동조성에 대해 같이 연구하기도 했던 미국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군중의 숫자가 사람들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기 위해 1968년 어느 추운 겨울날 뉴욕시 거리로 나섰습니다.
실험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추운 겨울날 1~15명의 '자극 군중'을 미리 인도에 배치해두고 그들이 다 같이 어떤 행동을 취했을 때, 거리를 걸어가던 보행자 1,424명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었습니다. 신호를 보내면 자극 군중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근처 건물의 6층 창문을 1분 동안 올려다보았는데, 그 창문에는 밀그램이 세워놓은 남자 한 명 이외에는 별다른 흥미로울 것이 없었습니다.
실험 결과 자극 군중이 1명일 때는 보행자 중 4%만이 자극 군중과 같이 멈춰 섰지만, 자극 군중이 15명 일 때는 40%의 보행자가 멈춰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분명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많은 군중이 멈춰 서자 실험 대상자들도 따라 멈춰 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많은 비율의 보행자들이 자극 군중과 같이 멈춰 서진 않았으나, 자극 군중에 따라 고개를 돌려 함께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행 중 목적지를 향해 가는 행동에 영향이 없는 선에서, 추위를 피하는데 불리하지 않은 선에서 불완전하게 자극 군중을 따라 했던 것입니다.
1명의 자극 군중은 보행자 42%에게 자기가 바라보는 쪽과 같은 곳을 바라보도록 영향을 준 반면, 15명의 자극 군중은 보행자 86%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5명의 자극 군중이 행동했을 때와 15명의 자극 군중이 행동했을 때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특정 방향을 바라보게 만드는 효과에는 5명 이상의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와 관련하여 앞서 소개한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는 사람들이 행동에 대한 '문턱값'을 갖고 있다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요컨대 어떤 대규모 집단이 소요사태를 일으키는 상황을 가정해보면, 맨 처음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혁신가 또는 선구자이지만, 동참한 사람이 증가할수록 보통 사람들도 난동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함께하는 사람이 10명만 되어도 가담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함께하는 사람이 몇천 명은 되어야 행동에 가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 마다 행동을 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그라노베터는 '문턱값'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라노베터는 문턱값에 대해 개인별로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인지된 이득이 인지된 비용을 넘는 지점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득'이 사람마다 다르고, 함께하는 사람의 규모에 따라 '예상되는 비용'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행동에 나서고, 누군가는 행동에 나서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것은 '기대되는 이득'을 높이는 한편, '예상되는 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선택이니만큼 많은 사람들이 고민 끝에 했을 것이므로 그 선택이 나에게도 유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니 그만큼 위험성도 덜할 것이라(비용이 낮을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어떤 선택을 내리고 행동을 하는 것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것이 심리적 안정감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정리하는 뇌>의 저자 대니얼 리버틴에 따르면, 우리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고 감정을 조절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어떤 선택을 내릴 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면 '에이 설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데 잘못되었을 리가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며 안도감이 든 경험이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군중심리에 빠지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기를 지켜본 프랑스의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 붕은 그의 유명한 저서 <군중심리>를 통해 군중이 형성되는 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1) 논의가 이뤄지거나, 행동을 해야 되는 분야에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모여있을 것
2) 모여있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목적을 위해 모여있을 것
3) 감정의 교감이 일어나 이미 하나가 되어 있거나, 그러한 일을 촉발시키는 사건이 일어날 것
르 봉은 위와 같은 조건하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의 군중을 형성하기 쉽고, 이렇게 형성된 군중은 최면에 걸린 듯 집단에 감화되어 평상 시라면 생각지도 않을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몇 년 전 비트코인 열풍 때 이런 군중심리의 형성을 체험한 적 있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투자를 시작했습니다만, 대다수의 투자자들이 평상시 주식이나 다른 변동성이 높은 투자 자산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투자 분야에 문외한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비록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었지만 암호화폐 거래소라는 가상의 한 공간에 같은 목적을 위해 모여있었고, 가격이 상승하면 기뻐하고 가격이 하락하면 슬퍼하는 감정의 교감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많은 투자자들은 하나의 군중이 되어 평상 시라면 행동하지 않을 과감한 투자와 행동을 거듭했고, 자신들만이 믿는 꿈과 환상을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점점 더 많은 투자자들이 몰릴수록 자신들이 옳은 방향에 서 있고, 더 막강한 힘을 얻고 있다고 믿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