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으로 얻는 삶의 Insight-7 (feat. 레드룸스 이미지)
[스쿼시+영화] 시리즈
의 에필로그입니다. 순서는 상관없습니다. :)
※ 공포영화 <레드 룸스>와 애니메이션 <와일드 로봇>의 스포 있음!
이번 '스쿼시+영화' 에세이는 2달전 극과 극 성향의 두 인물이 함께 스쿼시치는 장면이 등장하는 공포/스릴러 <레드룸스>를 본 뒤 기획하게 되었다. 이 작품 속엔 세명의 어린 소녀를 잔혹하게 고문/살인했을 거란 심증만 가득한 용의자가 실제 범인일지, 그 진실을 궁금해하는 서로 다른 입장의 두 여성들이 등장한다. 한명은 속을 잘 모르겠는 소시오패스 같은 주인공 캘리앤이며, 다른 한명은 반대로 발암에 가까울 정도로 대놓고 용의자의 무고함을 믿는 (피해자 유족/여성들에겐 공감능력을 보이지 않는) 철없이 감성적인 인물 클레망틴이다.
그리고 후반부엔 오히려 용의자가 아니라, 낮에는 모델이고 밤에는 해커이기도 한 캘리앤이 벌이는 기괴하고 소름끼치는 상황이 펼쳐진다. 어쩌면 용의자에게 팬심?을 보이는 두 여성 법정 방청객에게 진실이 밝혀지기 전부터 화살을 마구 날리던 피해자 소녀의 어머니를 향한, 그녀만의 방식으로 선을 넘나드는 (자기)위로였을 지도...
살인 용의자가 안에 들어가있는 법정의 유리벽/프레임을 보면서 왠지 스쿼시 코트같다 느꼈는데, 나중에 진짜 스쿼시치는 장면이 등장하자 훅~! 하고 빨려들어갔다. 특히 주인공 캘리앤의 모습 속에 나와 극과 극 성향이면서 자칭타칭 (사회화된) 소시오패스인 내 절친의 모습이 보이길래 꽤 흥미롭게 관람했다. 마침 <조커 : 폴리 아 되>를 본지 얼마 안되었기에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있는 단짝 관계, 즉 미러링과 사회적 자아에 관심이 생기던 차였다.
한편, A.I.에게 소름돋았던 경험(도서관 추천도서 알고리즘에 기겁했던;)이나 숫자 강박이 있는 스쿼시 애호가란 점은 나와도 닮아있어서 신기했던 작품이다. 물론 그 선(line)을 넘는 코스프레 장면부턴 너무나 기괴해서 절대로 공감하고싶지 않아졌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전쟁/밀리터리 장르는 좋아해도 공포/고어물 계통은 잘 못보는 편이라 잔혹한 장면들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어렴풋이 소리로만 들려주었다는 게 무척이나 고마웠다. (어차피 보여줘도 눈을 감았을듯...)
내가 조신하게 어른스러운 척? 가면을 쓰고 두번째 직장생활을 하다가 20대의 끝자락에 만났던 내 베프는 "모든 소시오패스가 너 정도로만 매너를 지키면서 사회화되어도 세상은 꽤 아름다울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온갖 사람들을 죄다 이해해보려고 기를 쓰면서 인류애를 간직하고픈 네가 결국 자살하는 세상이라면 꽤 살기 싫어질 것 같다"는 말을 해주며, 항상 싸늘한 팩폭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잘받는 나의 유리멘탈을 단단하게 만들어주곤 했다. 사람이 싫다면서도 나처럼 동물들과 자연/해양 다큐를 좋아하는 그녀는 한편으론 고슴도치 같아서 거리두기가 필수인 친구이기도 하다.
마치 성선설/성악설의 차이처럼 나는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 종종 문제가 되곤 했고, 그 친구는 사람을 너무 못 믿어서 문제가 되곤 했다. 왠지 자라온 환경 탓에 갈라지게 된 것 같았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서 왠지 거울처럼 같은 주제로 서로 간의 편견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꽤 좋은 친구 사이다. 그녀를 둘러싼 배경/자산과 외형은 전혀 다르지만 묘하게 속은 내 모친을 닮아있는 그 친구가 조금씩 인간적으로 말랑해지는 걸 지켜보는 게 기분좋기도 하다. 난 반대로 숨겨져있는 컴플렉스가 많다던 그녀의 발톱에 상처를 받지않도록 거리를 조절하며 자신을 단단하게 지키는 법을 익혀나갔다. (의외로 내 주변에는 그녀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꽤 많아서 나 또한 생존 훈련?이 필요한...)
이젠 거의 15년을 알고지내는 사이가 되었는데, 2년전 비록 애티튜드가 엉망인 짧은 복장이긴 했으나 누군가의 가족 장례식장에 처음 와본 거라는 걸 알기에 나를 위로하려고 먼길을 찾아온 그녀의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다. 또한 내가 결국 거렁뱅이 노숙자가 되더라도 친구 관계를 계속 유지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은근 감동을 받았었다. 한없이 목표지향적인 워커홀릭이던 그녀가 딱히 쓸모없어 보이는 한심한? 날 곁에 두는 것에 대해 굉장히 오랜시간 고민했을 게 빤하기 때문이다. ㅋㅋㅋㅋ
그나저나 내게 <무위의 공동체> 라는 장 뤽 낭시의 책을 추천한 알고리즘에 속을 들켰던 기억 때문인지, 영화 <레드룸스>에서 "Q) 유령(ghost)이 거짓말을 잘 못하는 이유는? A) 속이 투명해서..."라는 A.I. 기네비어의 농담을 듣자마자 기계를 갈아버렸던 캘리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어쩌면 그녀는 바깥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관한 관계의 사회화/거울 기능이 고장나있는 것일지도...
<레드 룸스>에서 주인공인 캘리엔의 ID로 나오는 샬롯의 여인은 19C 테니슨의 서정시와 워터하우스의 그림으로도 잘 알려진 설화 속 인물이다. 영화 속 A.I.의 별칭이던 기네비어 왕비와 불륜을 저지른 아서왕의 기사 랜슬롯과도 관련이 있다. 저주를 받아 탑에 갇힌 채, 평생 거울을 통해서만 세상을 볼 수 있던 레이디 샬롯은 거울로 기사 랜슬롯을 보고난 뒤 사랑에 빠져 창 밖을 내다보게 된다. 거울이 깨져버리자 죽음을 예감한 그녀는 세상 밖으로 뛰쳐나와 그를 쫓으며 배를 탔으나, 세상은 그녀가 알고있던 거울 속 모습과는 반대로 뒤집혀있다.
한편, 워터하우스의 그림(좌)에서 레이디 샬롯은 거울을 통해 바라본 연인들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수놓은 태피스트리를 깔고 앉아 강물 위를 둥둥 떠다닌다. 그러나 결국 영화 <레드 룸스> 속 모니터의 배경화면이던 존 앳킨스 그림쇼의 그림(우)처럼 배에 탄 채로 주검이 되어 (아마도 그녀를 알지못할) 카멜롯의 기사들 앞에 당도하게 된다.
20대 시절 내게 당구를 가르쳐준 기계과 선배의 결혼식에 가서 사진을 찍을 때 남자하객들이 99%인 걸 보며 기묘하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참고로 선배가 속한 기계과는 나보다 열배는 더 심한 1:100~200 수준의 남초집단이었다. (기계과에 여학우가 처음 입학하자 정문 앞에 '우리가 지금까지 널 기다렸다'는 부담스러운 플랜카드가 붙고, 학과의 총 800명이 만원씩 걷어서 마티즈 차량을 뽑아줬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아... 전설 속 기계과 퀸이 혹시 이 언니였던건가? 분명 내 졸업사진도 비슷한 모습일텐데, 미래에도 이런 풍경이라면 좀 슬프겠는걸?하는 생각이 든 이후, 가급적 동성 친구를 찾아내 많이 사귀려고 애를 썼다.
실은 둔한 너드형 인간인지라, 전에는 겉으로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향의 사람들, 특히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속을 쉽게 알 수 없는 성인여성들을 좀 어려워했었다. 여고에서는 종종 고백을 받았다가 오히려 사회에 나가서는 여성들에게 눈치가 없는 자기 남편/남동생 같다며 종종 타박을 들었다. 그리고 난 겉으로 보기엔 보호본능을 자극할 정도로 여성성이 대단히 강해보이지만, 마치 고양이처럼 발톱을 숨기고 내숭을 떨고있는 외유내강형 남성에게만 성적으로 끌렸다. 참고로 전통적인 여성기호 ♀는 그리스로마 신화 속 아프로디테의 손거울에서 유래한다. 서로 간의 미묘하게 다른 차이와, 앞으로 달라져가는 차이를 알아채면서 감춰진 진짜 모습을 판별해내는 고도의 사회화 스킬을 은유하는 듯한...
한번은 동기에게 "사회에 나가보니까 너네 엄청 괜찮은 남자들이었더라?"라고 말하자 "네가 어릴때 우리를 좀 쩌리 취급하긴 했지"라 대답해 놀란 적이 있었다. 난 그저 나와 똑같은 쩌리란 생각을 했었으나, 너무나도 편하게 대하자 자신들을 이성 취급 안한다는 생각에 존심이 상했던 것일까. 평소 거울을 잘 보지않던 나는 키 차이도 많이 나지 않기에 주로 목소리로 성별의 차이를 인식했다. 예전에는 노래방에서 다함께 남자곡/Rock을 불러도 한 옥타브 통째로 높여부르면 됐으나, 나이가 들면서 (텐션을 내리깔기 위한 수년간의 노력 끝에...) 목소리 톤이 평범한 정도로 낮아지자 키(key)가 틀어져 함께 부르기 어려워졌다.
몇년만의 동기모임에 이쁘게 화장을 하고 와달라는 황당한 부탁을 듣고는 "우리끼리 이 뭔 개소리야?"라며 빵 터지긴 했으나, 순간 나와 그들 사이에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친구들 옆에 있는 배우자들(몇몇은 내가 소개해서 이어준)에게, 막역한 이성 솔로인 나라는 존재가 꽤 거슬릴 수 있단 걸 인식했달까...
어쩌면 기계과의 그 선배는 자기처럼 군중 속에서 외로울 공대아름이이자, 워커홀릭 꼴초란 게 눈에 확 튀어버리는 동성 후배가 거울처럼 눈에 밟혀 따로 불러내 챙겨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늘?같은 기수였던 그녀는 나에게 많은 말을 걸지는 않았으나, "할일 없이 심심하면 걔도 나오라 그래~"라며 당구장에 항상 불러주었다. 평소에는 대단히 천방지축인 선머슴아였음에도 그녀와의 그 말없는 무료한 시간들이 왠지 좋았다. 너무 많이 쏟아지는 사회적 시선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feat. <오후 네시>)
00. 스쿼시의 특성
01. 스쿼시와 공간에서의 위치(position)
02. 개인적인 스쿼시 경험과 긴장(stress)
03. 스포츠 게임과 레벨/계급/차이/성(性)
04. 스쿼시와 충돌/매너/의도
05. 스쿼시와 템포/시간/효율
06. 기회를 쫓는 근성과 회복탄력성
07. 자아의 미러링과 인간관계의 경계/선
08. 노마드처럼 결국 재이동/탈피하는 장소애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