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쿼시+영화] 자아의 미러링과 인간관계의 경계/선

운동으로 얻는 삶의 Insight-7 (feat. 레드룸스 이미지)

by Nashira

[스쿼시+영화] 시리즈

01. 스쿼시와 공간에서의 위치(position)

02. 개인적인 스쿼시경험과 긴장(stress)

03. 스포츠게임과 레벨/게임/차이/성(性)

04. 스쿼시와 충돌/매너/의도

05. 스쿼시와 템포/시간/효율

06. 기회를 쫓는 근성과 회복탄력성

의 에필로그입니다. 순서는 상관없습니다. :)

스쿼시 치는 장면이 나오는 <레드 룸스>와 테니스영화 <챌린저스>, 그리고 <조커 : 폴리 아 되>를 보면서 떠올랐던 고전? 책 <자아 연출의 사회학>

※ 공포영화 <레드 룸스>와 애니메이션 <와일드 로봇>의 스포 있음!



07. 자아의 미러링과 인간관계의 경계/선


+ 문득 떠오르던 20대의 추억과 내 친구


이번 '스쿼시+영화' 에세이는 2달전 극과 극 성향의 두 인물이 함께 스쿼시치는 장면이 등장하는 공포/스릴러 <레드룸스>를 본 뒤 기획하게 되었다. 이 작품 속엔 세명의 어린 소녀를 잔혹하게 고문/살인했을 거란 심증만 가득한 용의자가 실제 범인일지, 그 진실을 궁금해하는 서로 다른 입장의 두 여성들이 등장한다. 한명은 속을 잘 모르겠는 소시오패스 같은 주인공 캘리앤이며, 다른 한명은 반대로 발암에 가까울 정도로 대놓고 용의자의 무고함을 믿는 (피해자 유족/여성들에겐 공감능력을 보이지 않는) 철없성적인 인물 클레망틴이다.

그리고 후반부엔 오히려 용의자가 아니라, 낮에는 모델이고 밤에는 해커이기도 한 캘리앤이 벌이는 기괴하고 소름끼치는 상황이 펼쳐진다. 어쩌면 용의자에게 팬심?을 보이는 두 여성 법정 방청객에게 진실이 밝혀지기 전부터 화살을 마구 날리던 해자 소녀의 어머니를 향한, 그녀만의 방식으로 선을 넘나드는 (자기)위로였을 지도...

너무나 끔찍하게 딸을 잃은 어머니는 이 상황/용의자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여성들에게 원망을 토로한다. 지금은 세상에서 본인이 가장 아프고 힘겹기에 안전거리를 지켜줘야 할듯한...

살인 용의자가 안에 들어가있는 법정의 유리벽/프레임을 보면서 왠지 스쿼시 코트같다 느꼈는데, 나중에 진짜 스쿼시치는 장면이 등장하자 훅~! 하고 빨려들어갔다. 특히 주인공 캘리앤의 모습 속에 나와 극과 극 성향이면서 자칭타칭 (사회화된) 소시오패스인 내 절친의 모습이 보이길래 꽤 흥미롭게 관람했다. 마침 <조커 : 폴리 아 되>를 본지 얼마 안되었기에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있는 단짝 관계, 즉 미러링사회적 자아에 관심이 생기던 차였다.

법정 공방을 참관하러 가는 길에서 만난 (서로 다른 입장의) 둘은 잠시 함께 지내며 스쿼시를 쳐본다.

한편, A.I.에게 소름돋았던 경험(도서관 추천도서 알고리즘에 기겁했던;)이나 숫자 강박이 있는 스쿼시 애호가란 점은 나와도 닮아있어서 신기했던 작품이다. 물론 그 (line)을 넘는 코스프레 장면부턴 너무나 기괴해서 절대로 공감고싶지 않아졌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전쟁/밀리터리 장르는 좋아해도 공포/고어물 계통은 못보는 편이라 잔혹한 장면들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어렴풋이 소리로만 들려주었다는 게 무척이나 고마웠다. (어차피 보여줘도 눈을 감았을듯...)

저...저기;;; 관종도 아니고 아무리 호기심이 생긴 범인의 관심/반응(진실)을 이끌어내고 싶었다해도... 이건 좀;;

내가 조신하게 어른스러운 척? 가면을 쓰고 두번째 직장생활을 하다가 20대의 끝자락에 만났던 내 베프는 "모든 소시오패스가 너 정도로만 매너를 지키면서 사회화되어도 세상은 꽤 아름다울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온갖 사람들을 죄다 이해해보려고 기를 쓰면서 인류애를 간직하고픈 네가 결국 자살하는 세상이라면 꽤 살기 싫어질 것 같다"는 말을 해주며, 항상 싸늘한 팩폭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잘받는 나의 유리멘탈을 단단하게 만들어주곤 했다. 사람이 싫다면서도 나처럼 동물들과 자연/해양 다큐를 좋아하는 그녀는 한편으론 고슴도치 같아서 거리두기가 필수인 친구이기도 하다.

범인/세상의 잔혹한 정체/진실을 뒤에서 이미 알고 있던 캘리앤. 자신을 싸잡아 비난/가해하는 피해자 소녀 어머니의 인터뷰에 발끈한 뒤, 그집 딸처럼 보이는 기행을 벌인다.

마치 성선설/성악설의 차이처럼 나는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 종종 문제가 되곤 했고, 그 친구는 사람을 너무 못 믿어서 문제가 되곤 했다. 왠지 자라온 환경 탓에 갈라지게 된 것 같았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서 왠지 거울처럼 같은 주제로 서로 간의 편견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꽤 좋은 친구 사이다. 그녀를 둘러싼 배경/자산과 외형은 전혀 다르지만 묘하게 속은 내 모친을 닮아있는 그 친구가 조금씩 인간적으로 말랑해지는 걸 지켜보는 게 기분좋기도 하다. 난 반대로 숨겨져있는 컴플렉스가 많다던 그녀의 발톱에 상처를 받지않도록 거리를 조절하며 자신을 단단하게 지키는 법을 익혀나갔다. (의외로 내 주변에는 그녀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꽤 많아서 나 또한 생존 훈련?이 필요한...)

수많은 시행착오와 시뮬레이션 끝에 자신이 곁에 있을 상대/장소에 대한 미션을 스스로 부여한 <와일드 로봇>

이젠 거의 15년을 알고지내는 사이가 되었는데, 2년전 비록 애티튜드가 엉망인 짧은 복장이긴 했으나 누군가의 가족 장례식장에 처음 와본 거라는 걸 알기에 나를 위로고 먼길을 찾아온 그녀의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다. 또한 내가 결국 거렁뱅이 노숙자가 되더라도 친구 관계를 계속 유지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은근 감동을 받았었다. 한없이 목표지향적인 워커홀릭이던 그녀가 딱히 쓸모없어 보이는 한심한? 날 곁에 두는 것에 대해 굉장히 오랜시간 고민했을 게 빤하기 때문이다. ㅋㅋㅋㅋ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저 자신의 생각과 취향을 가지고 (지 꼴리는 대로) 이끌리는 사람/장소들을 찾아서 떠돌아다니는 <소공녀>의 철없는 주인공 미소. :)

그나저나 내게 <무위의 공동체> 라는 장 뤽 낭시의 책을 추천한 알고리즘에 속을 들켰던 기억 때문인지, 영화 <레드룸스>에서 "Q) 유령(ghost)이 거짓말을 잘 못하는 이유는? A) 투명해서..."라는 A.I. 기네비어의 농담을 듣자마자 기계를 갈아버렸던 캘리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어쩌면 그녀는 바깥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관한 관계의 사회화/거울 기능이 고장나있는 것일지도...

초반부에 캘리앤이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심리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흐음... 그나저나 초반에 꽤 발암이었던 클레망틴은 나중엔 반성하며 사회화된 공감형 인간이 된다.

+ 거울을 통한 세상 관찰 : 샬롯의 여인


<레드 룸스>에서 주인공인 캘리엔의 ID로 나오는 샬롯의 여인은 19C 테니슨의 서정시와 워터하우스의 그림으로도 잘 알려진 설화 속 인물이다. 영화 속 A.I.의 별칭이던 기네비어 왕비와 불륜을 저지른 아서왕의 기사 랜슬롯과도 관련이 있다. 저주를 받아 에 갇힌 채, 평생 거울을 통해서만 세상을 볼 수 있던 레이디 샬롯은 거울로 기사 랜슬롯을 보고난 뒤 사랑에 빠 밖을 내다보게 된다. 거울이 깨져버리자 죽음을 예감한 그녀는 세상 밖으로 뛰쳐나와 그를 쫓으며 를 탔으나, 세상은 그녀가 알고있던 거울 속 모습과 반대로 뒤집혀있다.

한편, 워터하우스의 그림(좌)에서 레이디 샬롯은 거울을 통해 바라본 연인들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수놓은 태피스트리를 깔고 앉아 강물 위를 둥둥 떠다닌다. 그러나 결국 영화 <레드 룸스> 속 모니터의 배경화면이던 존 앳킨스 그림쇼의 그림(우)처럼 에 탄 채로 주검이 되어 (아마도 그녀를 알지못할) 카멜롯의 기사들 앞에 당도하게 된다.

The Lady of Shalott : (좌)John William Waterhouse (1888) / (우)John Atkins Grimshaw (1875)

20대 시절 내게 당구를 가르쳐준 기계과 선배의 결혼식에 가서 사진을 찍을 때 남자하객들이 99%인 걸 보며 기묘하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참고로 선배가 속한 기계과는 나보다 열배는 더 심한 1:100~200 수준의 남초집단이었다. (기계과에 여학우가 처음 입학하자 정문 앞에 '우리가 지금까지 널 기다렸다'는 부담스러운 플랜카드가 붙고, 학과의 총 800명이 만원씩 걷어서 마티즈 차량을 뽑아줬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아... 전설 속 기계과 이 혹시 이 언니였던건가? 분명 내 졸업사진도 비슷한 모습일텐데, 미래에도 이런 풍경이라면 좀 슬프겠는걸?하는 생각이 든 이후, 가급적 동성 친구를 찾아내 많이 사귀려고 애를 썼다.

왜인지 전혀 안맞아 보이는 극과극 성향의 (속이 투명한) 캘리앤과 (겉이 투명한) 클레망틴은 함께 지낸다.

실은 둔한 너드형 인간인지라, 전에는 으로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향의 사람들, 특히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속을 쉽게 알 수 없는 성인여성들을 좀 어려워했었다. 여고에서는 종종 고백을 받았다가 오히려 사회에 나가서는 여성들에게 눈치가 없는 자기 남편/남동생 같다며 종종 타박을 들었다. 그리고 난 겉으로 보기엔 보호본능을 자극할 정도로 여성성이 대단히 강해보이지만, 마치 고양이처럼 발톱을 숨기고 내숭을 떨고있는 외유내강형 남성에게만 성적으로 끌렸다. 참고로 전통적인 여성기호 ♀는 그리스로마 신화 속 아프로디테의 손거울에서 유래한다. 서로 간의 미묘하게 다른 차이와, 앞으로 달라져가는 차이를 알아채면서 감춰진 진짜 모습을 판별해내는 고도의 사회화 스킬을 은유하는 듯한...

<레드룸스> 에서 유리벽 안에 갇혀 전시된 용의자의 실체/진실을 궁금해하던 주인공 캘리앤은 자신의 실체를 짙은 화장으로 감추고 전시하는 모델 일을 한다.

한번은 동기에게 "사회에 나가보니까 너네 엄청 괜찮은 남자들이었더라?"라고 말하자 "네가 어릴때 우리를 좀 쩌리 취급하긴 했지"라 대답해 놀란 적이 있었다. 난 그저 나와 똑같은 쩌리란 생각을 했었으나, 너무나도 편하게 대하자 자신들을 이성 취급 안한다는 생각에 존심이 상했던 것일까. 평소 거울을 잘 보지않던 나는 차이도 많이 나지 않기에 주로 목소리로 성별의 차이를 인식했다. 예전에는 노래방에서 다함께 남자곡/Rock을 불러도 한 옥타브 통째로 높여부르면 됐으나, 나이가 들면서 (텐션을 내리깔기 위한 수년간의 노력 끝에...) 목소리 이 평범한 정도로 낮아지자 (key)가 틀어져 함께 부르기 어려워졌다.

몇년만의 동기모임에 이쁘게 화장을 하고 와달라는 황당한 부탁을 듣고는 "우리끼리 이 뭔 개소리야?"라며 빵 터지긴 했으나, 순간 나와 그들 사이에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친구들 옆에 있는 배우자들(몇몇은 내가 소개해서 이어준)에게, 막역한 이성 솔로인 나라는 존재가 꽤 거슬릴 수 있단 걸 인식했달까...

<레드룸스> 의 캘리앤+클레망틴처럼 인간은 서로 상반된 점이 둘다 있는 모순된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같은 방향의 스크린/진실을 함께 보고난 뒤, 각자의 길로 갈라선다.

어쩌면 기계과의 그 선배는 자기처럼 군중 속에서 외로울 공대아름이이자, 워커홀릭 꼴초란 게 눈에 확 튀어버리는 동성 후배거울처럼 눈에 밟혀 따로 불러내 챙겨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늘?같은 기수였던 그녀는 나에게 많은 말을 걸지는 않았으나, "할일 없이 심심하면 걔도 나오라 그래~"라며 당구장에 항상 불러주었다. 평소에는 대단히 천방지축인 선머슴아였음에도 그녀와의 그 말없는 무료한 시간들이 왠지 좋았다. 너무 많이 쏟아지는 사회적 시선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feat. <오후 네시>)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방문/침묵에 감춰진 자아를 끄집어내는 듯한 <오후 네시>



[스쿼시+영화] 운동으로 얻는 삶의 Insight

00. 스쿼시의 특성

01. 스쿼시와 공간에서의 위치(position)

02. 개인적인 스쿼시 경험과 긴장(stress)

03. 스포츠 게임과 레벨/계급/차이/성(性)

04. 스쿼시와 충돌/매너/의도

05. 스쿼시와 템포/시간/효율

06. 기회를 쫓는 근성과 회복탄력성

07. 자아의 미러링과 인간관계의 경계/선

08. 노마드처럼 결국 이동/탈피하는 장소애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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