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는 독일차가 별로 없다? 독일에서는 독일차가 더 쌀것이다?
독일 관련 커뮤니티를 통해서 이제 막 독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올린 댓글에 답변을 달아주는 친절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추상적으로 지레짐작만 하던 "독일"에 대한 환상을 깨게 되는 일이 많다. 요즘에 즐겨보는 유튜브에도 독일에 대한 찬양성 컨텐츠가 올라오면, 독일에 오래 거주하던 분들이 환상을 깨라는 댓글을 다는 경우가 많다. 내가 독일에 몇 십년을 살았는데, 그것은 독일의 일부 측면이고 대게는 이러하더라라는 식이다. 나름 오랜 경험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맞다 틀리다를 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인간"이란 존재는 자신이 아는 만큼 보고 느끼게 되어 있는 존재이며, 어디서 어떤 삶을 살고 있고 누구와 어울리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내가 몇 십년을 한국에서 살았는데 어쩌구 저쩌구 블라블라 하는 순간 "꼰대"가 되는 것처럼, 독일에서 몇 십년을 살았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고 본다.
우리 부부는 독일에 오자마자 1주일만에 차량을 출고할 정도로 차가 없으면 못사는 사람들이다. 그 일주일의 기간 동안 이케아에서 가구를 사서 온가족이 바리바리 들고 집으로 오면서, 차로 가면 얼마 안걸릴 거리에 있는 마트에 꾸역꾸역 걸어서 장을 보러 갔다오면서 자동차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뼈저리게 느끼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평소 2~3대의 차량을 소유하면서 각자 차량을 이용하는 시간이 많았던 탓에 연말 정산을 할때마다 1년 동안 사용한 가족 전체의 대중 교통비는 얼마 안된다는 것을 매번 알게 될 정도이다. 국산차 역시 신경쓰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외제차(독일차)는 무조건 고급 휘발유만 넣었으며 정기 점검을 꼼꼼이 챙기고 서머 타이어와 윈터 타이어를 철마다 교체해주었다. 그래서 차 구입이나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깝다고 생각을 해본적도 없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벤츠 2대, 아우디 1대, 폭스바겐 1대를 소유하면서 총합 25만km 정도를 운행해보았기 때문에 독일차에 대한 기본 지식은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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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우리 부부가 독일에 와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날씨가 좋으면 탑을 오픈하는 컨버터블이나 로드스터 등이 엄청 많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3년 동안 아우디 로드스터를 소유하면서 신나게 오픈 에어링을 즐겼던 입장에서 상당히 반가운 모습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부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햇볓이 엄청 뜨거울 경우, 오픈 에어링을 하는 것이 좋기만 하지는 않다. 필자는 한국에서 한 여름에 양팔을 노출 시킨 상태에서 고속도록에서 뚜껑 열고 달리다가 화상을 입기도 했고, 날씨 좋다고 연일 오픈 에어링을 즐기다가 얼굴에 햇볓 알러지라는 진단을 받기도 했었다. 서울 시내에서 오픈 에어링을 하면 매연 혼자 다마신다고 고소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차피 서울 시내를 걸어다니기만 해도 매연 들이마시는 것은 똑같으니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다. 한국에서는 컨버터블이나 로드스터가 인기 차종이 아니라 선택의 폭이 적은데, 여기는 정말로 다양한 가격대의 개성있는 차종이 많다보니 더욱 신날 뿐이다. 우리나라에는 들어오지 않는 마쯔다 MX-5 로드스터를 구경하려 매장에 간 적이 있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차량도 로드스터 다워서 마음에 쏙 든다.
독일에서 1년간 운전을 하면서 느낀 점은 교통 시스템이 상당히 합리적이고 듣던대로 운전자들이 룰을 잘 지킨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을 한국으로 그대로 가져갔다가는 난리가 날것이다.) 물론, 이민자가 많은 베를린의 경우 정말 가끔씩 싸가지 없는 운전자를 보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양보 운전이 몸에 배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너 있고 교통 법규를 잘 지킨다고 해서 속도를 안내는 것은 아니다. 다들 엄청나게 급발진을 하고, 코너에서도 속도를 안줄이는 통에 필자의 운전 스타일이 독일 스타일이라는 것을 여기 와서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가까운 거리라도 운전을 하고 나면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는데, 여기서는 시내 주행을 많이 해도 스트레스가 적어서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다. 복잡한 시내에서는 꼬리 물기를 많이 하기도 하고, 도로에 수많은 자전거와 수시로 도로를 횡단하는 보행자들이 있어서 주의 운전을 해야하지만 그럼에도 한국에 비하면 양반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운전한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사람이 우선인 운전자들의 태도이다. 길을 걷다가 건널목을 건널라고 하면 차들이 미리 멈춰있어서, 오히려 미안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베를린에서는 독일인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을 가진 친구들과 동료들과 어울리다보니, 말로만 듣던 자동차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느꼈다. 수입이 적든 많든, 이 친구들에게 차는 이동을 위한 생필품과 같은 개념이라는 것을 느낀다. 특히 베를린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자동차란 1000유로를 넘기지 않는, 매년 실시하는 자동차 검사를 무사히 통과할 만한 자동차를 의미한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나 뮌휀 쪽으로 가면 독일인이 자동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된다고 한다. 이 부분은 나중에 해당 지역을 여행하고 현지인들과 만나서 다시 한번 확인해봐야 겠다. 참고로 내 옆자리의 영국인 아저씨에게 들으니 영국인들은 차보다는 "집"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더 비싼 집을 사려고 하고, 항상 집 값 이야기를 한단다. 하지만, 이 영국인 아저씨는 차를 가지고 있지 않고 대중 교통만을 이용한다니 일반적인 관점이라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나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해당 국가에서 발급해준 1년짜리 국제 면허증을 6개월씩(!?)이나 인정해주고 독일 운전면허로 변경 신청이 가능하지만, 이란이나 조지아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들은 그들의 운전면허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서 운전면허를 새로 따야한다. 한 친구는 2번이나 운전면허 시험에서 떨어져서 포기했다고 한다. 운전 면허가 없으니 자동차 조차 없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
독일차에 대한 환상은 따로 없는 상태에서, 독일로 출발하기 전까지 현지 대리인을 통해서 적당한 차량을 물색하기 시작했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가보고 스페인과 독일 답사를 하고 나니 처음에는 부담이 적은 소형 차량이 적당하다고 판단을 했고, 체류 비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현금으로 밖에 살 수 없는 상황이라 2만 유로 전후의 가급적 신차를 알아보았었다. (내 인생에 중고차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독일에 오면서 현실과 타협을 했다) 몇가지 종류의 차량을 두고 고민 끝에 시승차량으로 사용되어 2300km 주행한 폭스바겐 신형 폴로를 선택했다. 덕분에 독일에 온지 1주일째 되는 날에 폭스바겐 딜러사에서 차량을 인수하여 타고 다녔다. 신차를 주문했다면 3개월 이상은 기다렸어야 하는데 차없이 3개월을 사는 것은 우리에게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시승 차량이다보니 온갖 기능이 다 있는 풀옵션 차량이었고, 1리터 가솔린 엔진임에도 차량의 성능은 괜찮았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보증 기간이 무려 5년이고 인수한 차량에 기름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부터 독일의 지역 딜러사의 맞춤형 서비스에 감동을 지금까지 계속 받으면서 잘 타고 있다. 차를 출고하자 마자 가까운 포츠담 상수시부터 시작해서 함부르크, 드레스덴 등의 독일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폴란드 스우비체, 체코 프라하와 체스케 슈비 차르스코 국립공원 등 다른 나라까지도 신나게 다니고 있다. 다음에는 우리가 지금 타고 다니는 폴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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