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4 그제 써서 오늘 올리는 아침 일기
어제 발레 힘들었다.
많이 뛰고 계속 뛰고 오래 뛰었다. 매트 근력운동도 강도가 셌다. 게다가 무려 '키트리(발레 작품 '돈키호테' 3막 키트리와 바질의 결혼식 장면 중 그랑 파드되 솔로)'를 몇 번 했는지 기억도 안날만큼 반복했다. 선생님이 오늘로 날을 잡으셨구나, 근육을 태워 날 죽이려고 작정을 하셨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는데 몸이 가뿐했다.
아픈 곳 말고는, 아픈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왜지?
운동을 제대로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다음 날 아침에 정확히 알 수 있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 다쳐서 아픈 것을 제외하고, 어제 움직인 부위 어디라도 근육이 뻐근하고 당기며 힘이 안 들어가서 에구구 소리를 동반해 몸을 일으켜야 운동을 제대로 했다는 증거다. 그리고 훈장인 듯 친구에게 모닝 문자를 보낸다.
몸 괜찮아? 나 죽을 거 같아.
발레를 하는 동안 어딘가 늘 아픈 것이 당연해서 웬만한 통증쯤 잘 참는 덕에 좀 아프다 싶어서 병원에 가면 ‘그동안 어떻게 참으셨어요?’가 의사 선생님의 단골 질문이었다. 안 아픈 날이 더 이상하고 심지어 아프지 않은 것이 싫을 때도 있다. 운동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거니까. 그런데 그 이상하고 싫은 날들이 겨울방학을 지나고 코로나 격리를 지나 거의 3개월 만에 발레를 다시 시작한 5월 한 달 내내 이어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열심히 안 하거나, 제대로 못 하거나, 힘든 것에 비해 운동강도가 약하거나.
아니면 원래 이렇게 안 아픈 게 맞는 건가?
운동 효과를 전혀 내지 못하는 나와는 다르게 푸르른 5월을 맞아 식물들은 쑥쑥 자라고 있다.
문샤인이 자구를 생성해서 자모 분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구문초가 너무 높이 자라서 네 그루로 나눠 심었고, 화분에 뿌리가 꽉 찬 스파티필름은 조금 더 큰 화분으로 옮겼다. 종류가 다른 세 가지 몬스테라는 제각기 다치기 쉬운 새싹들을 열심히 내고 있다. 모두가 매일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성장이 멈춘 내가 지켜보고 있다.
지난겨울을 나면서 이런저런 일로 지쳐서 갖은 핑계로 화분 돌보기를 게을리했더니 아끼던 치자나무와 오색마삭이 죽어버렸다. 봄에 소생할 걸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놓치면 안 되는 때를 지난 것이다. 생명을 키우고 돌보는 일이 그렇다.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정말로 늦었다.
치자나무와 오색마삭 화분을 정리하고 남은 화분들을 보며, 알아서 잘 자라는 빛 좋고 날 좋은 봄, 여름에는 자주 들여다보고 예쁘다 아끼면서, 겨울에 힘들게 버틸 때는 나도 힘들다며 제대로 돌보지 않는 인간이 화분을 키울 자격이 있나 생각했다. 이렇게 비겁한 인간이라서 애가 짜인 계획 안에서 돌발행동 없이 순응할 때만 친절한 건가. 이번 생에 다정한 인간으로 살기는 글렀나. 그렇다면 사는 한 단정하게라도 살아야 할 텐데. 성장기가 멈춘 인간이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까.
학교 가는 아이를 준비 시킨다고 부엌과 방을 오가며 움직이다 보니 몸에 조금씩 통증이 느껴진다.
종아리에 알이 배기고 뒤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이 뭉쳐 아프다. 오랜만에 느끼는 무겁지만 기분 좋은 통증. 다행히 어제 운동은 제대로 한 것 같다. 그렇다면 그동안 아프지 않았던 것은 운동 강도가 약하거나 열심히 안 했기 때문이라는 건데. 곤란하네. 내가 발전하지 않는 것도 시련을 덜 겪어서는 아니겠지. 응, 이만하면 됐어.
오늘은 밀린 추앙을 몰아 할 예정이다.
내일은 뭉친 근육을 풀고 기분 좋은 적당한 통증을 유지하기 위해서 발레에 가야지.
그리고 쓸모없는 것 사이에 쓸만한 것을 올리기 위해 책 사진을 찍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