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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식 Apr 19. 2022

열 세 번째 날

2022년 1월 13일: 30일 모닝 요가 챌린지

  


아침에 눈 떠서 잠깐 ‘일어나지 말까?’ 생각했다.     


몸을 일으켜 침대 옆 의자에 던져놓은 옅은 주황색 홈웨어 가디건을 몸에 감고 늘 비슷한 자리에 벗어두어 눈 감은 채 발끝만 더듬어 찾을 수 있는 도톰한 천 실내 슬리퍼에 발을 넣고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아이의 몸 위로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준 뒤 허리를 다 펴지도 못한 채 흐느적흐느적 걸어 방을 빠져나왔다. 거실에 있는 식물 실내등을 켜고 티비 리모컨을 찾아 유튜브에 들어가 라이브 방송 준비 중인 요가 채널을 열어 놓고 거실 바닥에 요가 매트를 편다. 그다음엔 부엌으로 가서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는데 그 주변의 전기제품들 - 에어프라이어와 커피머신과 전기포트 - 의 전선이 모두 검정색이라 전선을 따라 손을 움직여 본체를 확인한다. 한 번에 전기포트의 전선을 잡는 행운은 잘 없다. 오늘은 꼭 마스킹테이프를 붙여야지 하면서 오늘도 까먹겠지 생각한다. 전기포트에 전원을 넣어 물을 끓이는 동안 찻잔을 꺼내고 오늘 마실 차를 신중하고도 빠르게 고른 뒤 티백을 뜯어 잔에 담는다. 그즈음이면 요가 선생님이 방송을 시작한다. 라이브방송에 접속한 사람들이 채팅으로 그들만의 용어를 사용해 인사를 올리면 선생님도 반갑게 답인사를 나누고 오늘 할 요가 시퀀스에 대해 얘기한 후에 매트에 올라간다. 드디어 오늘의 요가가 시작된다.

어느 날은 조용하고 차분하고 한 동작 동작에 시간을 많이 할애해서 충분히 집중할 시간을 주지만 다른 날들 대부분은 나에겐 버거운 빠르고 고난도의 동작들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따라 한다. 비틀거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눈만 끔뻑거리며 빠르게 지나가는 동작들을 보기만 하기도, 그것조차 안 하고 가만히 누워있을 때도 있지만 그저 매트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의미를 둔다.    

 

아침에 눈 떠서 잠깐 ‘일어나지 말까?’ 생각했다.

고작 열세 번째 날인데, 그중에 두 번 있었던 일요일은 인간적으로 쉬었는데, 열세 번째 날인 오늘, 목요일, 아침, 다섯시 오십분에, 눈 떠서 잠깐, ‘일어나지 말까?’ 생각했다.

다시 눈 감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는 눈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주 잠깐 생각했다.    

 

요가를 마치고 핸드폰의 루틴 체크 어플을 열어 ‘모닝 요가’ 앞의 네모 박스에 완료했다는 체크를 했다. 요가를 마치고 나서 플랭크 3분을 했기 때문에 모닝 요가 아래에 있는 ‘플랭크 2분 이상’에도 체크를 했다. 두 개 항목을 완료했지만, 그 아래로 오늘 해야 할 남은 항목들이 많았다. 다시는 눈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잠깐이나마 생각했던 사람치곤 꽤 열심히 살고자 하는 목록들인데다가 비타민 먹기, 물 많이 마시기 등 하찮지만 네모 박스에 체크하며 스스로 작은 성취감을 얻어 자존감을 올리고자 하는 노오력까지 넣어 만든 루틴 리스트들을 보며 나 좀 웃기네 하고 생각했다.     


차를 다 마신 잔에 물을 따랐다.

늘 체크 확률이 제일 낮은 항목이니까 오늘은 좀 더 일찍부터 노력해보겠다고 생각하며.     


별것도 아닌 투 두 리스트에 체크하며 삶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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