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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식 Apr 19. 2022

노란 프리지아와 빨간 장미와 하얀 안개 꽃다발

2022년 4월 18일 세가지 중 첫번째 이야기

   

 이맘때면 늘 마음이 시리다.

목련이 피었다 지고 벚꽃이 흐드러지고 날이 따듯했다 더웠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비가 내렸다 종잡을 수가 없어, 거리에서 사계절 옷을 다 만날 수 있지만 여전히 바다는 차갑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 동기인 남편과 4월 16일에 결혼을 했는데, 바로 같은 날 또 다른 대학 동기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날 대학 동기들은 두 탕의 결혼식을 오가며 4월 16일이 길일이랬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날은 더이상 길일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날이 되었다.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그리워하고 미안해하고 또 미안해 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날. 그저 기억하는 것만으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끝없는 슬픔에 잠기는 날.     


 일이 바빠서 일주일에 하루 겨우 집에 들어오는 남편이 결혼기념일이라고 집에 잠깐 들르며 안개꽃과 노란 프리지아와 빨간 장미가 섞인 꽃다발을 내밀었다. 보자마자 지하철역 앞의 할머니가 하시는 노점상에서 사 왔단 걸 알았다. 남편은 일 년에 한두 번쯤 사는 꽃을 늘 거기서 산다. 예쁘지도 않은데 비싼 꽃을 파는 할머니에게서. 사실 작년에도 이렇게 생긴 꽃다발을 받았다. 나는 그때 너 꽃다발 고르는 센스 없다고 빨간 장미랑 노란 프리지아 섞은 거 진짜 촌스럽다고 얘기하며 앞으로는 꽃을 살 거면 그냥 프리지아만 한 단 사오라고 얘기했었다.

 남편은 올해도 같은 꽃다발을 사 왔지만, 이번에는 그냥 고맙다는 말만 하고 받았다. 이번 주의 나는 더이상 누군가를 비난할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촌스러운 꽃다발을 본 순간, 이번 주랑 완전히 어울리는 꽃다발이라고 생각했다.    

 

 친구가 주최한 플리마켓에 갔다가 일찍 집에 돌아오기가 아쉬운, 아이를 친정에 맡긴 날이라, 근처에서 하는 전시회를 하나 보고 카페에 막 들어온 참이었다. 사전 정보 하나 없이 무턱대고 들어간 전시가 예상외로 좋아서 그 기분을 이어 서울숲을 살랑거리며 걸어보려고 했는데 바람이 강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벚꽃이 몰아치는 바람에 떨어지느라 정신없었고 커플들과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은 벚꽃눈 사이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나무가 우거진 숲이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운 좋게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카페 안에도 창문 너머 숲에도 나무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한참을 기다려서 받은 커피와 샌드위치를 앞에 놓고 앉았는데 친구로부터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친구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고 나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면 늘 그렇듯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그저 어떡해 너 괜찮아를 남발했다. 당연히 괜찮지 않은 애한테 자꾸 괜찮냐고 묻는 바보 같은 짓은 언제 그만둘 수 있을까. 친구와 전화를 끊은 뒤 가깝게 지내는 몇몇 다른 친구들과 조문은 언제 갈 건지, 식장은 어디인지, 발인은 언제 하는지 등을 얘기하는 통화를 했다. 어쩔 줄 모르는 마음과는 달리 남은 사람이 해야 하는 절차는 너무 명확해서 더 슬펐다. 아이스 커피의 얼음이 반쯤 녹아 있었고 한가로운 4월의 주말 오후에 그 카페 안에서 웃고 있지 않은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친구 아버님의 장례식장은 다음날 정오에 차려졌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바로 출발할 준비를 했었는데 출발 전에 시간이 생겨서 며칠 전에 주차장에서 난 사고를 처리하고 가기로 하고 아파트 관리 사무소로 갔다.             

2022.04.18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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