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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Oct 04. 2022

돼지에게 줄 '돼지감자'는 없다.

이탈리아 가을 채소 요리법, 돼지감자(topinambur)


'어? 저건 가을 해바라기?' 뭔 뚱단지 같은 소리야?  땡! 돼지감자 꽃이다.  

갑자기 가을 찬 바람이 불면 다른 꽃들은 시들시들 생기를 잃어간다. 이때, 지금이다 하고 환하게 노란 등불을 밝히는 멀대같이 키 크고 얼굴도 큰 노란 꽃.



한국에서도 본 적이 없고, 토리노에서도 본 적이 전혀 없다. 가을 초입부터 늦가을까지 환하게 주변을 밝히는 이 노란 꽃은 2017년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근처 시골로 이사 오고 나서 알게 되었다.


돼지감자, 한국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맛보지도 못했다. 그러니 나는 뚱뚱하고 짧은 생강처럼 마디가 진 이 덩이뿌리 식물을 '토피남불(topinambur)'로 먼저 알게 되었다. 요리를 이탈리아에 와서 배우다 보니, 식재료 이름을 이탈리아 어로 먼저 알게 되고, 후일 한국어로 찾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돼지감자가 그렇다.


적어도 피에몬테 지역에서는 돼지에게 줄 돼지감자는 없다. 대신 돼지에게는 뭘 던져주나? 이곳에서는 한국에서는 대접받는 도토리를 돼지에게 준다. 도토리를 먹지 않는 문화라 가을만 되는 도토리가 발에 차이니까.


한때 한국에선 돼지에게나 줬다던 토피남불은 이곳에서는  대우받는 가을 식재료 중의 하나다.  토피남불이 처음부터 귀한 식재료는 아니었다. 꽃이 예뻐 여러 곳에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싸늘한 가을부터 땅이 얼기 전까지 ‘가난한 자의 음식’이 되어 주었다. 지금은? 돼지 감자 스프, 수란, 트러플이 접시 안에서 만나면 사람들은 잎 다투어 지갑을 열기 바쁘다.


어떻게 요리해서 먹을까? 이름처럼 감자가 들어가는 요리에 감자 대신 넣으면 다 어울릴까? 돼지감자는 아티쵸크(artichoke)처럼 약간 들큰한 달달함이 있다. 껍질만  벗기고 아삭하게 생으로도 먹고, 익혀서도 먹는다. 생으로나 익혀서나 토피남불의 가장 오래된 단짝은 앤쵸비와 마늘을 듬뿍 넣어 만들어 뜨거울  여러 야채에 찍어 먹는 피에몬테 전통 소스 바냐 카우다(Bagna Cauda).  토피남불이든, 흙을  씻어내고 껍질채 오븐에 익힌 토피남불이든 바냐 카우다 소스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변주는 무엇이 있을까? 볶음, 벨루따따, 튀김을 추천한다.


볶음이야 볶음이다. 원하는 크기대로 토피남불을 자르자. 단, 크기는 되도록 일정하게 자르는 것이 포인트.  비슷한 크기로 자른 식재료야말로 태우지 않고, 설익히지 않는 비결이다. 엇? 자르려고 했는데 아삭함이 남다르니 깔끔하게 잘라지지 않고 쩍쩍 갈라진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크기만 대충 비슷하게 맞춰 자르자.

집에 샬롯이나 파 하얀 부분 혹은 양파가 있다면 삼중 택 일하자. 잘게 자른 샬롯(혹은 파 흰 부분이나 양파 조금이 되겠다.)을 올리브 오일에 살짝 두른 팬에 넣고, 연이어 토피남불을 넣는다.

간은 바다 소금 조금이면 충분하다.


..... 볶음을 하다가 마음이 바뀌셨다면...... 갑자기 아가들 생각도 나고, 소화가  되려면 볶음보다는 천연 야채 크림이 낫지 않겠나 의구심이 드는 순간? 문제없다. 한참 볶던  볶음 재료 그대로에 재료가 간당간당 잠길 정도로만 물을 붓는다. 그리고는 중불에   끓기 시작하면 가장 약불로 줄여 토피남불이 뭉근해질 때가지 끓인다. 이때, 태우지 않고 적절한 양의 물만 추가하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 인내심 언제까지요?' 토피남불 조각을 맛봤을  설컹거리는 식감 없이 부드럽게 익을 때까지. 그리고는 도깨비방망이로 윙윙 갈자.  

저는 인내심이 전혀 없는데요? 하는 당신. 문제없다. 그렇다면 토피남불 통째로 오븐 종이와 쿠킹 호일에 감싸 오븐에 던져 넣자. 이쑤시개로 찔러 폭 들어갈 정도가 되었을 때, 꺼내서 믹서기에 약간의 물과 소금, 그리고 올리브 오일 약간을 넣고 윙윙 간다.

난 뭔가 프렌치 한 사람이거든요? 최고의 부드러움을 선물해 줘요! 아, 그러시다면...... 곱디 고운 체에 한 번 내린다. 극강의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소한 맛을 더 원하는 사람이라면 무가당 액체 생크림을 조금 넣어도 좋다. 무가당 생크림 추가로 요리 이름은 순식간에 벨루따따(Vellutata)가 된다. 음...... 뭔가 갑자기 그럴 듯 해진다.

맛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일단 멩글어서 잡숴 봐!


부드러운 토피남불 크림 혹은 벨루따따 위에 토피남불 볶음을 조금 올리면 재미있는 식감의 변주를 느낄  있다.


흠.........

이왕 이렇게 된 거, 가자! 튀김까지!

맛과 식감의 3중주다.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 토피남불 칩도 기가 막히니까.


어떻게 만들까? 최대한 얇게 써는 게 관건이다. 칼질에 자신이 없다면? 날이 잘 드는 얇은 오이 슬라이서를 사용하면 좋겠다. 단, 손 끝이 날아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얇게 썬 토피남불은 바로 찬물에 넣는다. 공기와 닿으면 금방 색이 검게 변해 보기 흉하다. 찬물에 담그는 다른 이유는 전분기를 빼면 튀김이 더 바삭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분기를 잘 제거한 얇게 썬 토피남불을 깨끗한 키친 타월에 올려 톡톡 물기를 잘 제거한다.  그 후 쌀가루나 세몰리나 가루를 통에 넣고 쉐킷쉐킷 여분의 수분으로 가루를 잘 붙이고 다시 체에 받쳐 여분의 가루를 잘 털어낸다. 기름의 양과 토피남불의 양에 따라 다르겠지만 175~185의 온도에서 순식간에 바삭하게 튀겨내는 게 관건이다. 온도가 낮으면 기름을 먹어 눅눅해지고, 온도가 너무 높으면 얇은 칩이 그대로 검게 다 타 쓴 맛이 난다. 토피남불을 기름에 넣고 긴 핀셋이나 튀김용 기다란 젓가락으로 기름을 조심스레 휘휘 저어 보면 핀셋이나 젓가락 끝에서 작은 물고기가 톡톡 장난치듯 건드리는 느낌이 난다. 이때가 토피남불을 건질 때다. 토피남불이 바삭해져서 집게 끝에 부딪히며 나는 느낌적인 느낌이니까. 낚시하는 느낌으로 이 순간을 놓치지 말자. 조금 망설이는 순간 ‘심심 달콤 고소한’ 토피남불은 쓴 맛이 나게 홀라당 타 버린다.


소금 간이 적당한 달큰한 토피남불 벨루따따, 토피남불 볶음,  위에 파삭한 토피 남불 칩스는 먹기 직전에 바로 올린다.

늦가을에서 겨울 사이 이탈리아에 온다면 토피남불 칩스 대신 트러플을 올린 토피남불 요리도 꼭 맛 보시길.


유기농으로 돼지 감사 농사를 짓는 한 농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두 가지 고민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농사가 너무 잘 된다는 거란다.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지 한 번 심어두면 다음 해에는 따로 심지 않아도 미처 다 파내지 못하고 남은 작은 덩이뿌리들이 자라 이듬해에 다시 빼곡히 숲을 이룬다는 것이란다. 너무 빼곡히 잘 자라 그늘을 만드니 잡초가 들어설 공간도 없어 제초제도 필요가 없단다. 농사가 너무 잘 되어도 고민.

다른 고민은? 판로가 문제란다. 돼지감자가 한국에서 항암에 좋다, 당뇨이 좋다 소문이 나 인기라고 들었는데, 실제로 생산자가 느끼는 온도는 다른가보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맛있게 요리하고 건강도 챙겨보자. 아....그냥 몸이 천근만근 이도저도 귀찮을 때는? 그냥 밥 할 때 같이 감자밥 하듯이. ^^

보는 사람 얼굴에 저절로 입꼬리 올라가게 만드는 둥그런 꽃은 꽃차로 만들어 향도 즐기자.  


돼지들아, 미안. 양보하렴, 돼지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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