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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구레나룻을 낚다

▶ 뜬 방파제_포항

by 방현일

나는 포항 신항만 뜬 방파제로 낚시하러 가기 위해 전날 짐을 챙겼다.


“야, 그냥 몸만 와!”


한 통의 뜬금없는 전화였다. 또 발동이 걸린 모양이었다. 친구 민재는 낚시광이었다. 바다낚시는 처음이었다. 갑작스럽게 떠나는 여행이라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낚시가 취미가 아니라서 잘 몰랐다. 이것저것 챙겨 넣었을 뿐, 이것들이 바다낚시에 필요한 물품인지 또한 알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미니 의자와 아이스박스를 챙겨 차에 올랐다.




포항 신항만에 도착했을 때가 오전 3시 30분이었다. 처음 오는 곳이라 어디가 어딘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화장실을 가고 싶었지만, 누구한테라도 물어볼 사람도 없어서 참기로 했다. 오전 4시가 되니 한두 사람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관리자분이 오셔서 배에 오르기 전 구명조끼가 없는 사람은 구명조끼를 빌리라고 했다. 오전 4시 30분 첫 배에 짐을 싣고 뜬 방파제로 향했다.


“뭐지, 전쟁터라도 나가나, 얼굴은 왜?”


배에 탄 사람들은 눈만 보일 뿐, 얼굴을 죄다 꽁꽁 싸맸다. 그때까지 몰랐다. 여전히 어두웠고 물살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시원함을 느꼈다. 뜬 방파제에 오르기 위해 낚시 장비를 챙겨 배에 연결된 사다리에 올랐다. 흔들대는 사다리가 왠지 오늘 일진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마지막 사다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친구가 준비한 낚시 장비를 손에 들고 기웃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냉동 새우인 미끼를 끼고 낚싯대를 힘껏 던졌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어서 주변은 어두웠고 날씨도 9월 초가 믿기지 않을 만큼 서늘했다. 뭐가 뭔지도 모르지만, 아이스박스에 가득 물고기를 잡겠다는 포부는 전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고등어, 감성돔, 쥐치가 자주 출몰한다고 하니 이내 긴장하며 눈을 부릅뜨고 바다를 향해 정신을 집중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손에 감지를 느끼고 낚싯대를 걷어 올렸다. 감성돔이었다. 짜릿한 손맛이었는데 찌릿한 가슴앓이가 되고 말았다. 새끼였고 바로 놔주었다. 첫 낚시와 첫 수확의 기쁨은 반비례했고 너무 이른 시간에 잡힌 거라 다시 한번 가득 찬 아이스박스를 상상한 후, 조금 더 멀리 낚싯대를 던졌다.




문제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시작되었다. 갑작스럽게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태풍이 지나갔다는 혹은 지나갈 거라는 정확지 않은 정보를 서로 주고받으며 육지로 가야 하나,라는 갈등 속에 감성돔과 쥐치가 연이어 올라왔다. 올라오는 족족 새끼여서 바로 놔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센 바람도 바람이지만 어디 한 군데 라도 피할 곳이 없는 뜬 방파제에서 오롯이 작렬하는 햇볕을 온몸으로 견뎌내야만 했다. 아프리카가 이 정도일까?라는 뜬금없는 상상을 하면서 낚싯대를 걸쳐두고 민재에게 다가갔다. 민재도 제법 감성돔을 끌어올렸다. 다만 새끼뿐이라서 바로 놔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입질이 오지 않았다. 전날 집에서 각 종류의 물고기를 잡아 회를 떠먹고 나머지는 손질해서 집으로 가져오는 상상을 했었다. 월척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기대하고 왔건만 물고기는커녕 바람과 싸워야 했다. 우리는 거세지는 바람과 작렬하는 햇볕을 뒤로하고 고민했다. 모처럼 만에 서울을 떠나 이곳 포항까지 왔고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지긋지긋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느라 늘 녹초가 되곤 했는데 무척 허탈했다. 바람은 점차 폭풍으로 변했고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서 우리는 물고기고 뭐고 짐을 쌌다.


뜬 방파제 위로 각종 낚시용품이 날아다녔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대한 투정과 함께 나의 첫 바다낚시는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바로 잤고 아침에 일어나서 기염을 토했다.




“으아악!”


마스크로 가린 얼굴 외 부분이 시커멓게 탔다. 광대를 중심으로 가로세로 새카매진 피부에 한동안 거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헉, 소리가 절로 났다. 그 와중에도 혼잣말로 ‘뭐야, 다 놔주었는데.’라는 원망을 물고기에 돌려보기도 하고 뜨겁게 타올랐던 해를 원망하기도 하며 출근을 서둘렀다. 별의별 방법을 떠올렸다. 비비크림? 선크림? 하다가 결국 모자와 마스크를 뒤집어썼다. 첫술에 배부르냐를 떠나서 실로 어이없는 실수가 부른 대참사에 망연자실하며 연고를 발랐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문제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탄 부분이 없어지지 않았다. 화상을 입은 건지 괜한 두려움이 앞섰다. 병원에 가니 화상은 아니고 탄 것이 맞다고 했다. 겨울까지 갈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면서 탄 부분에 무엇이 좋은지 등을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듣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지만, 정말, 꽤 오랫동안 자국이 남아 있었다. 문득 구레나룻이 떠올랐다. 자연스러운 구레나룻이 아닌 문신 같은 구레나룻. 결국 하다 하다 포기하기로 했다. 이로써 나의 첫 바다낚시는 월척은커녕 시간에 따른 지저분한 구레나룻만 남게 되었다.


- 끝 -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이미지 출처_방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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