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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꽃다발

▶ 성당에서 죄를 짓다

by 방현일

우리의 사랑이 시작된 것은 영주를 처음 만난 지 10년 만의 일이다.


‘따르릉.’

“민수 오빠, 그때 오빠가 제게 하신 말씀…. 아직 유효한가요?”

“갑자기 왜 그래, 어색하게.”

“….”

“알았어, 얘기해 봐. 너 다른 남자 생겼다는 말 하면 오빠 삐진다. 하하, 농담이야.”


나는 왠지 걱정이 앞섰다. 혹시 영주가 딴 맘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우리 결혼해요.”




영주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성당 청소년 모임에서 만났다. 그때 영주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나는 학교 공부도 벅찬데 굳이 성당에까지 나가서, 주말을 성당 교리 시간으로 보내는 것이 싫었다. 사실 그때에는 학교 공부보다도 학교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말씀대로 나는 토요일 오후 4시부터 7시까지는 꼬박꼬박 성당엘 다녔다. 나는 토요일 교리 세 번째 날, 앞에 앉아 있는 영주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예쁘장하게 생긴 하얀 얼굴엔 환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나는 은근슬쩍 영주에게 환심을 사려고 영주 옆을 서성거렸고 영주도 내가 싫지 않았는지, 나에게 다가와서 자신이 다니는 학교 얘기며 친구들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사건은 두 달 후, 여름이 시작하는 달에 시작됐다.


토요일, 나는 조금 일찍 나와서 영주에게 주려고 꽃을 사 들고 성당으로 들어갔다. 교리실에서 학생들은 수군대며 다소 시끄러웠고 영주는 나를 보자,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영주에게 꽃다발을 내밀었고 꽃다발을 받는 영주의 오른쪽 팔 안쪽이 심한 흉터로 일그러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영주의 팔을 보며 놀랐고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영주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는 나가지 않았다. 감당하기가 두려웠다. 나는 교리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영주 얘긴 데요. 제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긴 숨을 들이마시더니,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영주네 부모님이 꽃가게를 하고 계셨는데, 난로로 인해 가게가 불이 났었다고 하네.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는데 그때 부모님하고 동생이 죽고 영주는 오른쪽 팔과 등에 화상을 입었다고….”


나는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성당으로 들어가서 기도했다. 영주가 입은 화상보다 내가 영주에게 보낸 차가운 눈길이 그 애의 가슴에 더욱 큰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내 눈물에 영주에게 보냈던 눈길을 씻어 내고 싶었다.




그리고 10년 뒤였다.

나는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갔고 원하던 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직장 동료의 소개로 소개팅하게 되었다. 저녁 늦게 서야 직장 동료로부터 오늘이 소개받았던 여성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밖으로 뛰어나갔고 꽃가게를 찾았으나, 오후 9시가 넘긴 걸 알고 허탈해하였다. 일단은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만나기로 한 술집에서 조금 떨어진 가판대에 하얀 안개꽃과 장미꽃을 보았다.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빛에 물안개처럼 보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가판대로 뛰어가서 꽃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꽃은 팔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주체하지 않고 술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가 떠올랐고 오늘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영주의 생일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잠시 길가에 서 있었다. 잠시 후, 누가 뒤에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저, 이 꽃 가져가세요. 제가 아까는 무슨 생각 좀 하다가 손님을 그냥 보낸 것 같네요. 그냥 가져가시고요. 다음에 꽃살 땐 저한테 사세요.”


나는 돌아섰다. 그리고 꽃을 들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영주였다.


“영주야, 하~.”


나는 할 말이 없었다. 10년 전의 영주와의 갑작스러운 일이 떠올랐는지, 얼굴이 화끈거리며 더듬더듬 변명하려 했다.


“민수 오빠구나. 세상 참 좁다. 저 여기서 꽃가게 해요. 가게라고 하기엔 조금 뭣하지만.”


영주는 그때 그 일을 잊어버린 듯했다. 괜히 나 혼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오빠, 애인 생겼나 봐요. 하하하.”


영주의 웃음소리는 나를 비웃듯이 들렸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몰랐다.


“영주, 너 결혼했니?”


엉뚱한 질문에 내가 말을 해 놓고 더 당황해했다. 영주는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며 약간은 떨고 있다가 돌아서며 말했다.


“오빠, 저 갈게 요.”


뒤돌아 있는 영주의 모습은 많이 지친 듯 보였다.


“영주야! 미안해.”


영주는 뒤돌아선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영주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동안 영주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들고 있던 꽃다발을 영주에게 건넸다.


“영주야, 생일 축하해.”


- 끝 -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Image by Olessy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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