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그렇게 뭉쳤다가 그렇게 헤어졌다...
날씨가 무척 무더웠다. 창문을 활짝 열고 머리 위쪽으로는 큰 선풍기를, 발아래쪽에는 작은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대나무 돗자리에 땀이 흥건했다. 잠결에 무슨 소리인가 들었다가 점점 커지는 소리에 잠을 깼다.
“수박 한 통에 일만 원, 일만 원입니다.”
‘일만 원이라는 거야, 이만 원이라는 거야.’ 멀리서 들려와서 그런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수박이 왔어요. 일만 원에 모십니다.”
‘어, 왜 이렇게 싸지. 마트에서 분명 작은 건 만 팔천 원, 큰 건 이만 삼천 원으로 봤는데.’
나는 비몽사몽 창가 쪽으로 가서 방충망을 젖히고 길가에 세워 둔 트럭을 보았다. 어제 마트에서 라면을 사고 나오다가 입구에 있는 수박을 보며 참 비싸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팔리니까 갖다 놓았겠지만, 망설임 없이 뒤돌아왔었다. 돈 들어오면 수박 한 통 배달해야지 하며, 집에서 가져온 검은 비닐봉지에 라면을 넣은 채 걸음을 재촉했었다.
나는 잠깐 의심하고 혹시나 하며, 이러다간 뭐가 됐든 다 팔릴 거로 생각해 후다닥 사 층 빌라에서 내려왔다. 수박이 뭐라고 슬리퍼가 벗겨질 뻔했다. 그때 이층 아저씨와 지하 아저씨도 나와 있었다. 겸연쩍은 인사를 서로 건네고 트럭으로 갔다. 평상시에는 거의 보지 못했다.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오다가다 만날 수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 원래는 아홉 시에 출근해서 여섯 시에 퇴근이라고 사무실 홈페이지에 표시해 놓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지켜지지 않았다. 개인 사업을 하다 보니, 일이 없는 날에는 열 시 가까이 돼서 출근하기도 하고 그와 반대로 일이 많을 때는 열두 시가 다 되어 퇴근할 때도 있다. 집과 사무실이 그리 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일이 정말 많이 들어올 때는 새벽같이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거나 주말에도 공휴일에도 명절에도 나갔다. 이층 아저씨는 제품 공장을 운영해서 나와 비슷했다. 지하 아저씨는 개인 사정으로 낮에 집에 있다가 밤에는 대리운전을 했다. 그래서 셋이 만나는 일이 흔치 않았다. 나는 황급히 트럭에 가서 물었다.
“아저씨, 진짜 일만 원이에요?”
“일만 원짜리는 못 먹어요. 오래돼서 요기 작은 게 만 오천 원, 조금 큰 게 이만 원입니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쌀 리가 없었다. 크다고 한 것도 마트에서 파는 작은 것보다 훨씬 작았다. 나는 입맛을 다시고 뒤돌아 아저씨들에게 인사를 했다. 아저씨들은 담배를 한 대씩 피우며 먼 하늘을 보고 있었다.
오늘도 무척 더웠다. 당분간 아침 일과가 비슷할 것 같았다.
“수박 한 통에 일만 원, 일~만 원~입니다.”
자다 깨기를 반복해서 그런지 정확히는 않았어도 분명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그때와 달랐다. ‘어, 확실히 그때 그 아저씨가 아니네.’ 나갈까 말까 하다가 속는 셈 치고 또 후다닥 내려왔다. 지하에 있던 아저씨와 입구에서 만나 인사를 했다. 이층 아저씨가 트럭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반바지에 러닝만 걸치고 있었는데, 볼 때마다 너무 말랐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지하 아저씨와 웃으며 트럭으로 갔다. 다행히 그때 그 아저씨가 아니었다.
“수박 얼마예요?”
“작은 건, 만 오천 원, 큰 건 이만 원.”
이번에는 좀 화가 나서 물었다.
“일만 원이라고 왜 방송하시는 거예요?”
“뭐, 일만 원짜리도 있으니까.”
“뭐가 일만 원인데요.”
“이건데, 못 먹어요.”
나는 담배를 태우는 아저씨들을 뒤로한 채 씩씩대며 올라왔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날씨도 덥고 하늘도 맑았지만, 마음은 춥고 기분은 우중충했다.
어느덧 그럭저럭 여름 막바지에 들었다. 이층 아저씨는 전세 계약이 끝났다며 이사를 했다. 어느 날 사 층까지는 못 올라가겠다며, 일 층으로 나와 달라는 택배기사의 전화를 받고 일 층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골목 밑에서 지하 아저씨가 양쪽에 비닐봉지를 들고 올라오고 있었다. 가까이 오면 인사나 해야겠다며 아저씨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아저씨도 나를 보았다. 아저씨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순간, 두 번의 수박 때문인가? 생각했다가 아저씨의 발걸음을 보고 아, 잠시 쉬었나 보다 생각했다. 근데 아저씨는 우리 빌라를 거쳐 다른 빌라로 향했다. 순간,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나를 채권자로 생각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머리가 눌려 할 수 없이 모자를 쓴 것이었는데, 하긴 이 밤에 검은 옷과 검은 모자를 쓰고 있었으니, 충분히 오해받을 만했다. 나는 먼저 모자를 벗고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그제야 나를 보고 더 올라갔던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 내려왔다. 아저씨는 개인적인 문제로 커다란 채무를 지고 있었다. 우리는 멋쩍게 인사를 건넸다.
길에서 우연히 전에 이층에서 살았던 아주머니를 뵙고 인사를 건넸다. 제품 공장은 잘 되냐고 물었다. 다 처분했고 남편이 멀리 갔다고 했다. 처음에는 여행이라도 간 줄 알았다. 폐암이라고 하며 서둘러 가던 길을 갔다.
날씨가 끝까지 더웠다. 반바지에 러닝만 걸친 채, 집 안의 창문이라는 창문을 활짝 열고 라면을 끓였다. 하늘을 보았다. 유난히 푸르렀다. 나는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며, 편의점에서 사 온 시들해진 조각 수박을 만지다 도로 집어넣었다.
- 끝 -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Image by Pixabay_Fruitn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