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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부끄러운 하루

▶ 새콤달콤 더덕무침과 구수한 시금치 된장국

by 방현일

날씨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손님이 드물었다. 손님이 오지 않으니, 사무실은 더욱 추웠다. 이럴수록 더 잘 먹어야 하는데, 입맛이 없어 대충 때웠다. 사무실은 훤한데 마음은 추웠다. 그렇다고 등을 부분적으로 켜 놓을 수는 없었다. 삼 층 주인아주머니의 문을 여닫고 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현관 옆 작은 창문이 바람에 달달대기 시작했다. 을씨년스러웠다. 갈까 말까 하는 생각이 들 때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뭔지 모르겠지만 맛있는 냄새가 들어왔다. 이런저런 잡생각이 들면서 퇴근 시간보다 좀 더 서두르게 되었다. 이층에서 내려와 일 층 셔터를 내리는 순간에도 냄새는 계속 코를 자극했다. 그냥 그 냄새를 맡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길바닥에서 한기가 올라왔다. 허기가 지니 더 춥게 느껴졌다. 건널목을 종종걸음으로 시장 입구에 들어섰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천천히 걸으며 찬찬히 둘러보았다. 향긋한 더덕 냄새가 발길을 재촉했다. 더덕 옆에는 싱그러운 시금치도 있었다. 시금치 된장국이 생각났다. 남은 시금치는 무쳐 먹을 생각을 하자 입가에 침이 솟았다. 더덕도 새콤하게 무쳐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지만, 아무래도 가격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아냐, 더덕은 떫어.’


나는 합리화를 하며 애써 더덕은 외면했다. 그때 시멘트 바닥에서 냉기를 받으며 채소를 팔고 계신 할머니의 모습에 순간 흔들렸다. 오래된 나무의 마른 껍질 같은 손등에서 얼마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와 산 것은 아니었지만, 한동안 내가 시골에 가 있거나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실 때가 있었다. 거친 손등에 구불구불 도드라진 핏줄이 마음을 심란하게 하였다. ‘살까? 말까?’ 그렇게 고심하던 찰나였다.


“싸게 줄 테니 가져가요.”


지갑을 여는 사이 할머니는 내가 사려던 시금치와 더덕 모두 두 배를 담았다. 나는 할머니에게 시금치 한 단과 더덕 한 바구니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한사코 웃으며 시금치와 더덕을 담은 봉지를 내밀었다. 순간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렇지, 날 호구로 보는구나.’


나는 이 상황과 맞지도 않는 상황들마저 떠올렸다. 현지에 가서 사면 국산이라고 생각해서 갔더니 외국산, 현지에 가서 물건을 사면 훨씬 싸다고 해서 갔다가 상인의 현란한 말솜씨에 엮여 돈을 더 주고 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두 배의 돈을 건넸다. 할머니는 허리에 맨 가방에 돈을 넣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뭐 더 필요한 것 없어요?”

“아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왜요? 또 덤터기 씌우려고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다시는 이곳에서 사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발길을 돌리려 했다. 나는 배가 고픈 것도 잊은 채 이 상황만 벗어나려고 했다. 그때였다.


“너무 많은데. 잠깐만. 돈을 더 줬어.”


‘두 배를 줘놓고. 덤으로 조금 줬다면 모를까.’라는 말을 내뱉기 무섭게 할머니는 손을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요.”


나는 찡그린 표정을 지은 채 돌아섰다. 채소를 뭘 또 먹으라고 냉장고에도 많은데 하며 할머니의 손을 보았다. 할머니는 나에게 돈을 내밀었다. 순간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부터 앞섰다. 분명 덤이 아닌 두 배의 물건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또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어서 계산을 못 하시는 건지. 저렇게 장사하면 뭐가 남아. 아니, 오히려 손해지. 자식들은 아나? 등등 그때였다.


“내 손주 같아서.”


오히려 내가 잘못 알아들었다.


“손주가 왜요?”

“뭔 잘못을 했다고 내는 모르지만, 교도소에 있는데 지금 추울 텐데.”


할머니의 얼굴은 무척 슬퍼 보였다. 순간 부끄러웠다. 어렵게 손수 제작한 물건을 손님과 흥정하다 보면 헐값에 팔거나 심지어 손해를 보고 팔 때가 있다. 심지어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깎으려 해서 팔지 못했던 경우도 있었다. 한 번은 많은 제품을 주문해 놓고 처음에는 괜찮다고 했다가 눈치 보며 조금씩 가격을 깎다가 맘에 안 든다며 실랑이만 하다 간 적이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손님의 취향대로 디자인해서 만들어 놓은 거라, 다른 손님한테 팔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고 해서 한쪽 구석에 처박아놨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다시 와서 반값에 찾아갔다. 정말 속상했다. 손님들이 아닌 사람들이 미워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시간이 지속하다 보니 편견과 선입견이 머릿속을 지배하게 되었다. 누가 선의를 베푸는 것도 ‘왜?’라는 궁금증부터 떠올렸다. 나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차가운 바람이 입속에 맴돌았다. 선뜻 받지를 못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할머니를 번갈아 보며 눈치 아닌 눈치를 보았다. 할머니는 손을 계속해서 내밀었고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받았다. 그때 내 또래 정도 보이는 손님이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그의 손을 꽉 잡고 손주에 관해서 물었다. 그는 할머니의 두 손을 꽉 잡은 채 조만간 교도소에 면회를 갔다 오겠다, 얘기하고 있었다. 손주 친구처럼 보였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좀 전까지 달달대던 사무실 유리창처럼 마음이 들썩댔다. 잠시 추위도 배고픔도 잊은 채, 한발 한발 달빛에 의존한 채 걸었다. 집에 오는 내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괜히 쓴웃음이 났다. 참 부끄러웠다. 예전만 해도 나도 누군가에게 선뜻 손을 내밀었었는데. 각박해진 세태 속에서 알게 모르게 변해가는 내 모습이 씁쓸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싸우다가도 내가 먼저 사과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면서 친구도 이해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점차 더 멀어지는 일도 있었다. 그냥 웃으며 살 걸, 웃으며 팔을 걸, 그럼 맘이라도 편할 텐데 말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온화한 달빛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빨리 가서 새콤달콤한 더덕무침에 구수한 시금치 된장국을 먹을 생각에 남은 걸음을 재촉했다. 내일 퇴근길에 들러 할머니께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라도 해야겠다.


-끝-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Image by G.C.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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