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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daal Jun 22. 2023

많은 작은 것들이 내게 말을 걸어와

 narrative_recipe : 채소 팟타이

많은 것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해. 대상에 내 마음을 향하고 두 귀 기울이면 우리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솔바람에 흔들리며 서로 부대끼는 나뭇잎들의 수다.

그것들은 곧 햇살에 비쳐 잔디 위에 일렁이고 내게 여기 누워 같이 작은 춤을 추자고 말하고 있어.

골목 끝 카페에서 만난 멍멍이의 꼬리는 '너도 내가 좋아?'라고 묻고 있지.


Botanical garden in Melbourne

햇땅콩을 팬에 볶고 있는데 언제까지 볶아야 잘 볶인 것인지 알 길이 없어. 어느 순간이 되면 팝콘처럼 땅콩 껍질이 타닥타닥. 이제 거의 다 되었다고 말을 걸지.


처음 담가 본 김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김장이었고 어느 시점에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지 이 또한 알 길이 없었어.

'적당한 만큼'이 모든 요리의 계량 수치인 엄마에게는 더 이상 의지할 수 없어서 나는 김치가 말을 걸어주길 기다려. 보글보글, 보글보글, 거품이 보이면 그때가 바로 그 적당한 때라며 이제 냉장고에 넣어 달라고 내게 말을 걸어.


South Melbourne market, nutstore


나는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지. 그래서 잠시라도 생각을 내려놓고 쉬길 바라. 명상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생각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되는 건가? 그 과정에서, 나는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지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무언가를 하는 것이 오히려 명상이겠다 생각이 들어. 한 가지 행위에 몰입되어 현재를 살지만 나를 잃어버리는 듯한 정지된 상태.


그래서 나는 머위대를 까고, 땅콩 껍질을 까지. 나물을 다듬으며 손끝에서 느끼는 질감, 코 끝에 닿는 향, 작은 근육의 움직임, 그것의 반복됨. 나를 잃어 버리면서 동시에 나를 찾아가는 여정.



채소파타이의 정점은 이렇게 볶아진 땅콩을 위에 뿌리는 것인데 아이코 오늘은 너무 집중했던지 잊어버렸다. 채소저금통에서 꺼낸 콜리플라워는 뚝 뚝 자르고 콜리플라워의 심지는 넓고 얇게 썰어. 스냅피와 양송이, 양파, 생강, 마늘을 기름에 볶다가 불려 놓은 쌀면도 넣어. 진간장, 다크소이소스, 설탕, 마른 고추를 빻아 넣고 거의 다 익었을 때 타이바질, 숙주를 더해 잔열에 볶아내면 중국과 타이와 한국이 모두 화합하는 볶음 쌀 국수가 내 앞에 있어. 그리고 땅콩 잊지 말기.


채소 저금통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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