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tdaal Jun 25. 2023

나의 이름을 불러주오

narrative_recipe : 여름밥


나는 강아지파. 


고양이가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고양이를 무서워했어. 밤에 들리는 기이한 울음소리와 노려보는 두 눈을 갖은 그들의 직업이 '도둑'이라는 사실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어. 연희동 산꼭대기에 살던 시절, 대학원생이었던 지현을 계단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내게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하며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어. 쪼그리고 앉아서 약간은 긴장한 듯한 그녀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고 그제야 왜 그녀가 수상쩍게 행동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지. 고양이들 밥을 주던 중이었고 하루 두 번씩 서너 곳에서 고양이 팝업식당을 열었던 거야. 그걸 목격한 어른들이 나쁜 말을 한마디씩 하거나 밥그릇을 버리는 경험을 했던 지현에게 내가 건넨 인사는 안도의 인사였다고 해. 


그 계단은 마을버스가 지나가는 산꼭대기에서 집으로 내려오는 쪽길이였고 그 이후로도 종종 지현을 볼 수 있었어. 어느 날 난 그녀가 어떻게 그 많은 고양이들을 구분하며 이름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이름은 누가 지었는지 등이 궁금해졌지. 그녀는 '대장고양이 라이언', '등에 다이아몬드 무늬가 있는 다이아', '체구가 작은 애기' 등 많은 고양이들의 특징과 이름을 신나서 쏟아냈어. 며칠 후 나에게 라이언 중심의 가계도를 손으로 그려서 메세지로 보내주기까지 했어. 고양이들 얼굴과 이름, 그리고 특징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길고양이, 도둑고양이'가 아닌 '지묘; 내가 아는 고양이'들이 잔뜩 생긴 기분이 들더라고.


다음날도 역시 그 가계도 속 고양이 가족이나 친지 중에 하나인 듯한 녀석이 나를 보고 경계음을 보내왔지만, 이번엔 무섭거나 싫거나 하는 감정은 없고 오히려 약간의 반가움이 생기더라. 내가 고양이에 대해 많은 것들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생각과 함께. 


궁동산 희동이


궁동산에서 희동이라는 고양이 친구 역시 그 흔한 진저 중 하나일 뿐인데 누군가가 달아둔 목줄에 '저는 궁동산에 사는 희동이입니다. 데려가지 말아 주세요'라는 메세지를 보고는 '아, 네가 희동이구나. 반갑다.'인사하며 그는 특별한 나의 첫번째 진저가 되었지.


이름은 나와 너 사이를 구분 지어 주기도 하지만 그 대상이 더욱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가 되게 만들어주지. 그러니 그대 나의 이름을 불러주오.




내가 꼬마농부가 되고 싶어 5평짜리 텃밭을 처음 시작했던 몇년 전 초봄. 밭을 디자인하고 흙을 정리하고, 씨를 심고 씨가 발아하면 이제 잡초와의 전쟁을 선포해. 호미를 든 손은 느리고 대신 나의 입을 바빠졌지. 


'이거 잡초야?' '이거 뽑아?'


'응'과 '아니'를 반복하다 지친 친구는 '사실 얘들도 이름이 없어서 그렇지 다 존재하는 것들이겠지?'라고 했어. 맞지 맞아. 그래서 나는 이것저것에 이름을 붙여주기 시작했어. 이름이 있으니 이제는 더 이상 잡초가 아니게 된 거야. 그해 한여름에 우리는 옆 텃밭 주인이 키운 토마토 줄기에서 떨어진 방울토마토를 주워 먹으며, 내 허리만큼 올라온 우리 밭 풀들을 바라보며 허허 웃었어. 가을농사는 잘하자!

잡초에게 이름을 붙여주다.




샌드위치는 주 재료로 이름을 짓지. 그건 국수나 밥에게도 마찬가지야. 열무국수, 콩나물밥처럼 말이야. 나의 요리세계에는 즉흥적인 것도 있고, 요리라고 부르지 못할 만큼 거의 씻고 썰어 조합하는 게 전부인 그런 음식들도 있지만, 종종 이름을 짓고 나서 요리를 해. 


지중해식 샐러드에 들어가는 펄 쿠스쿠스는 보리과 율무로 대체하고, 각종 여름 채소들과 섞어 만든 여름밥은 불을 사용하기 힘든 무더위에 어떻게 밥을 지어먹을지 고민을 하다가 '여름밥'이라는 이름을 지은 후에 만들게 되었어. 가을에 채소를 넣어 만든 가을잎은 라자냐가 마치 가을 나무 아래 소복하게 쌓인 나뭇잎 같아서 켜켜이 가을 채소들을 쌓고 채소를 구워 가을 색을 담아 만들었지. 올리브를 곱게 갈고 아보카도를 으깨서 빵 위에 두껍게 바르고 여러 채소들을 색색이 얹어서 만든 채소팔레트도 이름을 짓고 나서 생긴 음식이야. 그래서 그것들은 다른 무엇보다 특별하고 유일해.



여름밥
풍선밥

아줌마, 아저씨,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개, 고양이는 세상에 많지만 미숙, 동배, 지영, 재승, 정배, 순자는 유일하고 특별해. 그러니 이제 나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오. 

이전 08화 많은 작은 것들이 내게 말을 걸어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