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가 실종된 사회

우리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by 개똥밭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보면 묘한 생각이 듭니다. 손바닥 안에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한 정보가 들어있지만, 정작 그들의 눈빛에서는 깊이 있는 통찰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모순입니다.


의사는 질병에 대해서는 박학하지만 환자의 정서에 공감하지 못하고, 경제학자는 시장을 꿰뚫어 보지만 인간의 마음을 읽지 못합니다. 변호사는 법조문은 달달 외우지만 시민들의 법 감정에 대한 철학적 고민은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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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스페인의 대표적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중의 반역'이란 저서를 통해 이런 현상을 일찍이 예견했습니다. 학문이 점점 더 전문화되면서 전문가들이 자신의 분야를 제외한 다른 영역에 대해 무지한 것을 마치 바람직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게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영역에서는 똑똑하지만 인생의 깊은 지혜는 전혀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고, 그런 사람들이 지식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회에 대해 각종 견해를 내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 대중들의 상황은 더욱 절망적입니다. 치솟는 집값, 불안한 고용 앞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관심은 사치가 되어버렸습니다. 당장 내일 먹고살 걱정에 머리가 꽉 찬 상황에서 '인간사의 통찰'은 너무나 먼 얘기입니다.

토니벤.jpg 귀족 출신임에도 노동자들 위한 정치를 펼친 영국의 원로 정치인 '토니 벤'


지금은 돌아가신 영국의 원로 정치인 토니 벤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을 조종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사람들을 겁주는 것이고, 둘째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빚에 찌든 사람들은 희망을 잃게 되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투표하지 않게 된다. 교육받고, 건강하고 자신감 있는 국민들은 통치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의 말은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생계에 매달린 사람들은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하게 됩니다. 아예 정치적 무관심으로 빠져들거나, 아니면 권력에 기생하는 레거시 언론과 돈벌이에 눈이 벌건 인터넷 방송들의 먹잇감이 되어 극단적이고 편협한 대중으로 변모하는 것입니다.

이를 한줄로 정리하면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찾아 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버드대 마이클 센델 교수를 비롯한 전 세계 석학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엘리트'들에게 추종하는 사회가 불러온 양극화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입니다. 그 반감을 이용하여 대통령이 된 사람이 바로 '트럼프'이며, 이는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소외감과 박탈감에 휩싸인 사람들의 분노는 결국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파시즘.jpg https://youtu.be/PIAR0oOgG_0?si=KpVvmQqPONvdbzap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은 그렇다고 해도 자유진영 국가인 이탈리아의 멜로니, 미국의 트럼프,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의 윤석열과 같은 이들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의 등장은 우연이 아닙니다.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생계에 매몰되어 비판적 사고를 할 여유를 잃은 사람들과, 지식은 많지만 지혜가 부족한 전문가들이 함께 만들어낸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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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여기서 해답은 명확합니다. 그동안 경제적 번영과 물질적 풍요라는 신기루를 좇으며 정보와 지식에만 탐닉해왔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추구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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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완의 상태나마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조차, 깨어있는 시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토대 위에 설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르테가 이 가세트(Ortega y Gasset)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통찰력 있게 밝힌 바 있습니다.

공적(公的) 삶은 정원과 같고, 자유는 세심하게 돌봐야 하는 섬세한 식물과 같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연적인 사실이 아니라, 끊임없는 경계와 보살핌을 요구하는 역사적 창조물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라는 정의를 새롭게 써야 할 때입니다. 높은 학벌이나 막대한 수입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으로 자신의 지식을 아낌없이 나누며,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지혜로운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어야 합니다.


저는 경쟁과 분열이 아닌 협력과 연대가, 배제와 차별이 아닌 포용과 공감이 숨 쉬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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