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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등어 Oct 29. 2020

한 마디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들어야 하는지

나 하나를 먹여 살리기에 바빠서 외국에 나가서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국의 문화와 풍경에 관심이 없었다기보다 욕심을 가질 수 없는 처지였다. 


어느 날 내가 정말 사랑하던 LA 밴드의 인스타 주소를 알게 됐다. 나는 주소를 알자마자 영어로 용기 내 DM을 보냈다.

"나는 당신의 한국 팬이고, 7년 동안 당신의 음악을 듣고 있어요." 

왠지 이렇게만 보내려니 허전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기왕이면 좋은 하루를 보내면 좋을 것 같아서 굳이 덧붙였다. 

바로 답장이 왔다. 어메이징과 함께 당신도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얘기였다. 홀로그램처럼 느껴졌던 사람과 소통을 하니 내가 정말 사람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먼 나라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폭발했다. 내가 열심히 본 영어란 토익 문제집밖에 없지만, 한번 나도 외국인의 문법을 배워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대충 하더라도 매일매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하루에 한 번씩 미국의 팟캐스트 방송을 듣기 시작했다.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냥 시도하기 시작했다. 충무로로 향하는 지하철을 탈 때, 종각역 거리를 걸을 때, 쌍문동의 집에서 소면을 삶을 때, 슈퍼에서 사 온 우유를 끓일 때, 항상 귀에 에어팟을 꽂고 들었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같은 회차를 반복해서 틀었다. 


처음엔 10퍼센트도 알아듣지 못해서 절망스러웠다. 열 번 넘게 들으니 밀가루 반죽처럼 어렴풋하고 뭉뚱그려진 문장들이 하나하나 형태를 가지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물속에서 focus, especially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단어 하나를 알기 위해 나는 몇 번이나 더 들어야 할까? 귀에 에어팟을 끼고 담배꽁초가 나뒹구는 쌍문의 술집 골목을 걸으며 생각했다. 


"시를 쓰다 보면 치명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문장이 있잖아. '아, 진짜 이거 누가 봐도 습작생 티 난다.' 싶은 것들. 그런 문장 하나 안 쓰려고 내가 몇 년을 시를 쓰는지 모르겠어…."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말한 적이 있다. 하나를 깨닫기 위해 몇 년이 걸릴까?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다. 나에게 발전이란 계단식이라서 한 단계를 거치면 전과 다른 나로 되어있는 느낌이다. 서서히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야 성장을 할 것만 같다. 게임에서 4성 캐릭터가 보스 몬스터를 잡으려면 5성으로 강화를 해야 하듯이.


인간관계도 비슷하다. 얘는 왜 이러지? 왜 이렇게 화나 있지? 뭐가 싫은 걸까? 이해를 하지 못 하다가 한참 뒤에 생각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애인의 생활 패턴을 기억을 못 해서 혼난 적이 많다. 직장에 있을 때는 언제 통화가 되는지, 수업은 무슨 요일에 받는지, 어떤 음식을 먹지 못 하는지에 관한 것들이었다. 성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거였다. 나는 혼나 놓고 자주 자책했다. 


말로 많이 얻어맞아보고, 실수도 하고, 상처도 받아본 뒤에야 그들이 얼마나 짜증이 났을지 이해가 갔다. 이해란 제때 될 때도 있고 한참 뒤에 될 때도 있으니까. 대화는 했지만 상대방의 마음이 제대로 들리는 순간은 늦게 찾아오곤 한다. 정보가 아니라 사실로서 받아들여지는 순간들이다. 나는 그러면 같은 말을 다시 듣는 기분이 든다. 아, 이런 말이었구나. 귀로 들은 말이 다 뇌로 가는 건 아니구나 싶다. 그렇게 나는 과거와 조금 다르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다. 


나는 꽤 한국의 샌님 같은 사람이다. 모든 순간을 주입식 교육을 받듯이 보내고 모든 공부도 그런 식으로 했다. 언제까지 발전을 위해 지루한 걸음을 이어가야 하는가… 잘 모르겠는 순간도 자주 찾아오지만 일단 계속 걸어 본다. 생각은 멈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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