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글쓰기를 가르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지식이 부족해서, 말을 못 해서라기보다는 애초부터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위치가 되는 게 무척 이상하고 부담이 됐다. 물론 문예 창작 학생이라면 누구나 다 하는 입시 과외를 나도 하긴 했다. 그러나 그것도 돈이 필요해서 한 일이었다. 그때 다른 아르바이트가 있었다면 그것을 했을 것이다.
여하튼 내가 느끼는 부담과 중압감과는 별개로 글쓰기를 시작하는 학생들을 만나게 될 때 항상 좋은 결과가 있도록 열심히 도우려고 하긴 했다. 안타깝게도 좋은 결과는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입시 선생으로서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모든 선생들이 그러하듯 나에게도 무기로 쓰는 말이 생겼다.
"'사랑해'라는 말보다 떨리는 입술이 더 사랑에 가까워 보이는 것처럼, 하고 싶은 말에서 일단 멀어지세요. 아무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글을 쓰면 더 좋아요."
기껏해야 과외생들과 두세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내가 사랑 어쩌고를 얘기했다는 사실이 오글거려서 졸도할 것 같지만 그때의 나는 이 말만큼 입시생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말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내가 그 누구보다 이 말을 좋아했으니까 그렇다. 이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내가 사랑을 잘 아는 선수 같았고 진실을 꿰뚫는 어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사랑을 할 때의 나도 진실을 마주한 나도 이 말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 돌려 말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밥 먹고 싶으면 밥 먹자, 자고 싶으면 자자고 했다. 서로에게 아무런 기대 없는 상태에서의 고백은 의외로 느닷없는 힘을 발휘할 때가 많았고, 연애로 도달하는 과정은 나에게 늘 간단하고 빨랐다.
하지만 나는 연애를 할 때마다 깨달았다. 내가 잘 하는 건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지 연애가 아니라는 것을. 쉽고 빠르게 해결하려는 버릇은 연애에 있어서 최악이었다. 나는 문제에 놓일 때 상황 파악도 못 하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고 상대는 나의 텅 빈 언어에 마음이 빠르게 차가워져 갔다. 마지막에 말이 많은 건 늘 나였다. 예전엔 좋아한다는 말 하나로 상황을 뒤엎을 수 있었는데, 끝에 가선 그 어떤 말도 상한 마음을 되돌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을 많이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말들은 '널 여전히 좋아하고 난 등신이야' 이 한마디로 축약할 수 있는 말이었다. 사랑의 결말은 늘 하고 싶은 말에서 멀어질 수 있을 만큼 멀어진 채로 끝났다.
나의 지난 연애들은 기억 속에서 시체처럼 쌓였지만 그 속에 깨달음은 없었다. 나는 얼마나 각양각색으로 추해질 수 있는지 잘 알게 되는 시간의 연속일 뿐이었다. 교훈도 성장도 없이 생각만 많아졌다. 미래로 갈수록 새로운 사람과의 시작은 더 두려워질 것이다. 아무 생각나지 않는 듯이 글을 쓰라는 말은 사실 생각 없이 쓰라는 말이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음'에 대해 쓰라는, 결국 '아무 생각 없음'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쓸 수 없다.
사실 나는 말을 이상하게 해놓고 몰래 알 수 없는 용기를 심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생각이 없으면 시작의 두려움도 사라지니까. 생각이 없다고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버릇을 들이면 매일 어떻게든 쓰게 되고, 늘 새것 같은 만족감을 느끼게 되니까. 알 거 다 아는 어른들이 연애를 할 때마다 첫사랑을 하는 기분을 느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