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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등어 Oct 23. 2020

사랑하는 너를 이해하면 사람들은 내가 다치는 줄 알아

마음은 너무 쉽게 곤죽이 되는 것이니까.

그리스에서는 사랑을 설명하는 단어가 네 가지라는 유명한 얘기가 있다. 신에 대한 사랑,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 친구 또는 형제간의 우애적인 사랑, 성애적인 사랑이 그것이다. 필리아니 에로스니 여러 단어가 있는데, 나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과연 그리스에서 이 단어들을 '사랑'으로 지칭할까? 한국인이 짜 맞춰서 해석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렇게 정의된 단어들이 사랑에 대해 다채롭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범주화에 대해 회의적이다. 사랑에 대해 범주화시키면 오히려 언어의 무력함만 느끼게 된다. 있음에 대해 얘기하면, 없음을 상상하게 되니까. 친구끼리 정말 우정만 느끼는지, 애인끼리 사랑만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사랑이 네 가지인 줄은 모르겠지만, 사랑 앞에서 어리석어지는 방식은 네 가지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랑하다 보면 사랑을 무기로 자신을 피해자라고 오해하기도 하고, 맛없는 음식을 욱여넣듯 사랑을 강요하기도 한다. 공짜 사랑을 바라기도 하고, 사랑에 값을 매겨서 남이 자신의 감정을 풀어주길 바라기도 한다.


사실 사랑을 할 때 가장 괴로운 건 늘 나 자신이 내가 되길 바랐던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 아닐까. 사랑 앞에서의 나는 부자연스럽거나 정직하지 못하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안다고 말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 연애가 끝나고 나면 상대에게 인간적으로 꼴 보기 싫은 사람이 됐다는 사실만 정확히 알게 되었다. 내 사랑이 얼마나 특별한지, 슬픔이 얼마나 깊은지는 친구나 연인에게 아무 쓸모가 없었다. 단 1도...


몇 번의 우정과 연애를 거치고 나서 깨달은 건 인간적으로 잘 대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좋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랬다. SNS에서 숱하게 봤던 온갖 스테레오 타입의 사고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눈앞의 상대를 열심히 이해해 주려고 애쓰는 게 나에겐 제일 최선이었다. 그렇게 태도를 바꾸니 연애하면서 아무 의미를 찾지 않게 됐다. 아픔과 기쁨은 똑같았다.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참 명쾌하고도 실천하기 어려운 정답만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의 대뇌피질에 다른 고민이 자리를 차지했다. 나에게 가혹하게 행동하는 상대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됐다. 조금이라도 나를 이해하면 다치기라도 할 것처럼 나를 나쁜 사람으로 단정 짓는 사람이 있었고, 감정에 못 이겨 나쁜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 말 못 했다. 정신 차려보니 나는 항상 낮은 위치에서 나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쪼다 같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때는 너무 섭섭했지만 지금은 그들의 마음이 어땠는지 알 것 같다. 어떤 이해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전형성에서 벗어나 인간적으로 사람을 이해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에 가슴속에서 종이박스를 꺼내는 기분일 테니까. 마음은 너무 쉽게 곤죽이 되는 것이니까.


몇 년 전에 이기주의 트위터에서 "싫은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사랑"이라는 말을 봤다. 너무 공감이 가서 아직도 이 말이 기억이 난다.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참 많이 알려져 있다. 누군가는 운동을 하라고 하고, 누군가는 옷을 잘 입으라고 한다. 근데 싫지 않은 사람이 되는 방법은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싫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끔찍한 것이라서 다들 생각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사랑과 싫음은 공존하기 쉽다는 걸 알았더라면 내가 실수를 덜 하고 살았을 텐데.


나는 지금 카페에 있다. 여기까지 쓰고 다음 내용을 쓰려는데 갑자기 직원이 한 번만 열어도 되냐고 부탁했다. 뭘 연다는 거지? 직원이 내가 앉아있는 소파형 의자 아래로 손을 뻗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옆으로 비켜줬다. 의자 밑에 이상하게도 작은 문이 있었다. 그는 작은 문을 열고 종이로 된 음료 캐리어 한 묶음을 꺼낸 다음 작은 문을 닫았다. 그러고선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뭐가 고맙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왠지 다른 생각이 들었다. 한 발짝 비켰다가 한 발짝 돌아왔다가,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비밀스럽게 쌓아둔 것을 누군가 훔쳐 가고 비밀을 다시 돌려주기 위해 돌아오는 일련의 부지런하고 귀찮은 행위의 총합이 사랑이었지. 원초적이고 감각적인 것은 사랑이 아니야. 진심 같은 건 없고 그냥 참고 잘하면 되는 거. 인사팀이 신입보다 경력을 좋아하듯이 순수한 사람보다 요사스러운 사람이 인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겠지. 내가 생각해둔 건 다른 건데 이 말이 쓰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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