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입맛 찾아줄 엄마표 총각김치, 곧 도착합니다!

by Jean


새벽 6시, 엄마는 벌써 일어나 가스불 앞에서 풀을 쑤고 있다. 다음날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 생각에 잠을 잘 못 주무시고는 헸는데 어젯밤도 계속 깨어계셨을지도 모르겠다. 감자 가루로 쑤는 풀은 김장 김치 중에서도 총각김치를 맛있게 담그는 엄마의 비법이다. 어제 하루 종일 밭에서 총각무를 뽑아서 다듬고 절여두고 왔다. 오늘은 가서 재료들을 씻고 풀을 넣고 양념을 버무려야 한다.


우리 집은 김장을 두 번 한다. 총각무 김장을 먼저 해놓고 한 일주일 뒤쯤 배추김치를 한다. 나야 엄마가 시키는 대로 도와만 드리는 건데도 김장철이 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제발 좀 적당히 해요. 누가 요즘 김치를 그렇게 많이 먹는다고’, ‘이제 외삼촌들한테는 보내지 말고 우리 먹을 거만 하면 어때?‘, ’ 동생한테는 딱 한 통만 부쳐요‘, 몸도 안 좋은데 그걸 어떻게 다 하려고...’


그동안의 나의 잔소리들. 엄마는 그럴 때마다 그런 말 할 거면 오지 말라고, 알아서 할 테니 니 볼 일 보라고 오히려 성을 내셨다. 여든셋의 허리와 무릎이 고장 난 노모가 종종걸음으로 이 사람 저 사람 나눠 줄 것까지 만드느라 애쓰는 모습을 보는 일이 힘들어 쏟아냈던 말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누가 강요한 것도 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엄마는 하는 김에 좀 더 하는 거라며 이상한 논리를 펼친다.


그렇게 올해도 엄마는 김장을 한다. 벌써 며칠 전부터 차근차근 혼자 준비를 해오셨다. 하루는 종일 마늘과 생강을 까서 아픈 다리를 이끌고 시장에 가서 갈아다 두었다. 또 어느 날에는 여기저기 김치를 담아 보낼 김장용 봉투를 사놓고, 요즘은 보기도 힘든 검정 고무줄도 구해다 두셨다. 고무줄 놀이할 때나 쓰던 검은색의 굵은 고무줄은 김장 봉투를 꽉 묶는 용이다. 혹시라도 김칫국물이 샐까 봐 노심초사하는 엄마의 준비성은 정말 알아줘야 한다.


"100킬로그램 더 있어야겠는데..."


외삼촌 두 분, 동생네 집, 친한 아주머니네, 농사를 도와주시는 분, 이웃집, 그리고 엄마집에 둘 거까지 계산한 이번 총각김치 목표량을 공표하는 순간 하마터면 이제 잔소리는 하지 말자는 결심이 무너질 뻔했다. 그래도 얼른 마음을 다잡고 입을 꾹 다물었다. 산처럼 쌓여있는 총각무를 다듬으며 나는 한숨을 푹푹 쉬는데 엄마는 이 얘기 저 얘기 옛날이야기들을 즐겁게 하시며 꼼짝도 않고 몇 시간을 앉아 총각무를 다듬었다. 몸을 좀 펴고 하라고 해도 무조건 괜찮단다. 9시에 시작한 총각무 다듬기는 오후 4시경 세 대야를 꽉 채우고야 끝이 났다.



오늘은 얼마나 걸리려나. 총각무 김장의 완성을 위해 엄마와 나는 모든 재료들을 바리바리 챙겨 밭으로 나갔다. 다행히 날씨가 춥지 않다. 무릎이 아프다, 허리가 쑤신다, 인상 펼 새가 없는 엄마가 꼬부라진 허리와 쩔뚝이는 다리로 밭을 펄펄 날아다닌다. 신기할 따름이다. 병원만 가면 잔뜩 주눅 들고 얼어붙는 엄마가 밭에만 오면 저렇게 즐겁게 지휘를 한다.


"올해 가을에 비가 와서 걱정했는데 잘 됐어.

총각무 몸매가 이렇게 예쁘네."


당신 몸에 무리가 되는 건 싹 잊고 천진하게 총각무 몸매 칭찬하는 엄마를 보니 또 부아가 난다. '총각무가 몸매는 무슨. 예쁘기는 쥐뿔'



마음이 잠시 삐뚤어졌지만 김장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총각무와 파, 쑥갓을 깨끗이 씻어 물을 잘 뺀다. 드디어 최종 버무리는 단계까지 왔다. 양이 많아 한꺼번에 다 하기는 벅차 일단 50킬로그램만 먼저 버무리기로 했다. 엄마의 지시대로 감자풀과 고춧가루, 마늘과 생강을 순서대로 넣고 잘 섞는다. 여기에 씻은 총각무를 와르르 붓고 마지막에 파와 쑥갓을 넣어 한번 더 버무린다. 양념을 무치는 일이 장난이 아니다. 팔 힘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허리와 다리, 온 힘을 써야 한다. 엄마는 지쳐 잠시 숨을 돌리고 섞고, 또 조금 쉬고 섞는다. 양념이 뻑뻑해 잘 안 무쳐지는데 나중에 김치에서 수분이 많이 생긴다며 물을 못 붓게 해 힘이 더 든다. 이제 마지막 단계다. 젓갈을 넣지 않고 오직 소금으로 간을 하는 것이 엄마식.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면서도 엄마는 집중해 간을 본다. 드디어 완성이다. 색깔이 너무 예쁘지 않냐고 감탄하는 엄마의 얼굴에 땀이 흥건하다. 그 순간 힘든 건 싹 잊은 듯 뿌듯한 미소를 짓는 엄마 말처럼 빨갛고 파란 양념을 입은 총각무가 참 곱다. 비닐하우스에 해가 잘 들어 고춧가루는 빨간 단풍보다 더 붉다. 쑥갓과 무청의 초록색까지 있으니 마치 포인세티아 같다. 크리스마스 즈음 하얀 눈 내린 날, 잘 익은 총각김치 하나 갓 지은 밥 위에 척 얹어 먹을 상상을 하니 군침이 돈다. 엄마한테 김장하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밀이다. 나머지 50킬로그램의 총각무까지 버무리느라 엄마는 한 번 더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낸다. 엄마의 저런 불가사의한 힘을 어디서 나오는 건지 참나. 땀을 비 오듯 흘려 목에 감싼 수건이 물에 적신 것처럼 젖어버렸다.



이제 담는 일만 남았다. 택배상자 4개를 싸고 김치통 4통을 채우고 엄마가 선물하고 싶은 분들께 드릴 것까지 봉지봉지 담겼다. 엄마가 좋아하는 동생들한테로 갈 택배상자와 여러 개의 김치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가 웃는다. 홀가분한 표정으로 활짝 웃는 모습이 마치 작품을 완성하고 멀찍이 물러서서 잘 그려졌나 바라보는 화가 같다. 그러고 보니 김장은 엄마의 '작품'이다. 당신이 한 해 농사지은 것들로 창조해 낸 이 작품은 정말 특별하다. 유형으로 존재하며 누군가의 겨울 양식이 되었다가 겨울이 지나면 그 형태는 사라진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몸으로 흡수되어 그 사람 안에서 피와 살로 존재하니 말이다. 그런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우리 엄마고 또 누군가의 엄마들이다.


기다리세요! 집 나간 입맛 찾아줄 엄마표 총각김치가 갑니다!


총각무 김장을 다 끝내고 집에 들어오며 엄마가 들릴락 말락 아주 조그맣게 혼잣말을 한다. "에구, 내년에는 정말 못할 거 같네.” 오! 예상치 못한 엄마의 말이 반가웠지만 과연 그럴까.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기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매해 삼촌들에게 해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셨지만 올해 또 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이제는 그만하라는 말 대신 엄마의 즐거움을 지켜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말이다. 그저 즐겁게 도와드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나는 엄마와 몇 번 더 김장을 함께할 수 있을까. 엄마의 맛있는 총각김치를 몇 번이나 더 먹을 수 있을까.


엄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주무신다. 내일이면 여기저기에서 엄마의 작품들을 받은 이들의 감사와 찬사를 전하는 전화들이 걸려올 것이다. "얼마 안 돼. 맛있게 먹어." 쿨하게 답하는 엄마의 기분 좋은 목소리를 어서 듣고 싶다.


그건 그렇고 김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주일 뒤 총각무 김장보다 몇 배나 고강도의 배추김치가 기다리고 있다. 엄마의 두 번째 작품도 멋지게 탄생하도록 한번 최고의 조수가 돼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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