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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May 11. 2020

건강한 사람이 돌아다녀서 약자를 아프게 하는 코로나

결국 언제나 약자가 아프다

코로나가 건강한 사람이 돌아다녀서 건강하지 못 한 사람을 죽이는 바이러스라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포인트.

평소 건강한 사람들이야 걸려도 낫기는 하겠지. 반대로 면역력 약한 사람들, 개인위생 취약한 사람들은 걸리면 치명타라는 것.

경제권도 마찬가지. 급여 생활자나 고급 지식 서비스직 사람들은 코로나로 뭐 얼마나 힘들겠어. 휘청하기는 하나 어떤 이는 전화위복 될 수 있는 새로운 기회 일 수도 있고, 급여도 관이나 대기업에서는 그대로 나오지만 소상공인, 중소기업은 무급휴직이나 일정 비율 깎여 나오는 상황이 되는 것이고. 소위 사업이 아닌 장사하는 사람들은 거의 주저앉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가 되는 것이다는 것.

신천지도 개인적으로 영적 약자로 흔들리니 교단에서 이단으로 평가하는 신천지에서 심신을 달랬고. 지금 문제 되는 성소수자도 사실은 사회적 약자로 우리 사회에서 서성거렸고. 그들이 발원지가 되어, 남에게 피해도 주고 스스로 피해도 받는다.

이렇듯 예부터 역병은 높은 사람, 가진 자는 거뜬하게 비켜가는 것이었다. 지금의 코로나도 가진 자나 있는 자는 어떻게든 비켜가는 전염병이다. 그냥 약자들이 속수무책 당하는 것이 역병이다.  그렇게 아프고 힘든 부분에 대한 공감 없이 움직이고  하는 사람들, 나는 이해와 용서가 안 된다. 그래서 바이러스 때문이 아닌 그런 역학 관계의 내 생각적 전이들 때문에, 나는 바이러스 들어오기 전에 정신적 쇼크로 죽을 것 같다. 밤새 잠을 거의 못 잤다. 내가 잠을 못 잔다는 것은 심각한 증상이다.

언젠가 여기 페북에서 어떤 사람들이 그랬다. 벤치에서 음식 나눠 먹는 사람들 그거 하고 싶냐고, 또 어떤 이는 그렇게 돌아다니며 뭐뭐 단체로 먹고 있다고 사진 찍어 올리고 싶냐고. 그냥 조용조용 다니라고. 전자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분노라면, 후자는 각자 아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 내지 자기 분노에 대한 글로 읽혔다. 그런 글들이 나는 충분히 공감이 갔었다. 나도 그런 감정들이 크니까.

백신도 없고. 아직은 숨어있는 바이러스가 여기저기에서 호시탐탐 있는 이 상황에서 자기들만 괜찮으면 된다는 식으로 주변에 대한 안타까움이 없는 상황들을 지켜보는데 내가 패닉이 오니, 어디 병원 가서 약 처방받고 싶은 심정이다. 잠을 못 자면 이런 증상이 오는구나.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눈이 튀어나올 것 같다.

말과 글로 부조하면서 타인의 아픔 어쩌고 하는 사람들보다 그냥 집콕하며, 처박혀 있는 사람들이 더 위대해 보인다.

건강한 사람들이 돌아다녀서 늙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치명타를 주는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것. 그거 인지하고 인정해야 하는 이 상황들이 나는 왜 이렇게 슬프고 가슴 아프냐고. 그래서 아침부터 꺼이꺼이 운다. 세상 개떡 같다. 그 개떡에서 나는 뭐 해야 하는가, 그거 고민하는 게 더 개떡 같다.

좋아하는 것을 하려는 것 말고, 싫어하는 것을 안 하려는 노력이 더 건강한 관계인데 그 역시도 서로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는 지점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그래서 언제나 노 할 수 있어야 하고. 뭔가 얻었으면 또 잃고 버려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 그게 세상인 것 같다.

나는 왜 이렇게 쓸데없이 구질구질하게 신경 쓰며, 사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이 오니, 내가 살아야 할 상황인 모양이다. 이것도 사실은 병이다. 심각한 중증이다. 송곳이네.

ㅡㅡ
사진은 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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