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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얏나무 꽃이 질 무렵

제17화: 어둠 속의 빛

by 나바드

강을 건넌 의병들은 깊은 숲속으로 몸을 숨겼다. 불어오는 밤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곳곳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렸고, 저 멀리서 부엉이가 울었다. 그들의 발밑에서 흙과 이슬이 섞여 부드럽게 꺼졌다.


“앞쪽에 작은 절이 하나 있습니다.”


한 의병이 말했다. 그는 이 근방을 잘 아는 마을 청년이었다.


“그곳에서 하룻밤 몸을 숨길 수 있을 것입니다.”


장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다. 하지만 경계를 늦추지 마라. 놈들은 우리가 이 근처에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김명규가 조용히 무기를 점검하며 말했다.


“이제 놈들도 우리가 단순한 도망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겁니다.”


“그래서 더 거세게 몰려들겠지.”


박차정이 나지막이 덧붙였다.

의병들은 빠르게 절로 이동했다. 오래된 기와지붕 아래에서 희미한 등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한 승려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평온했다.


“들어오시오.”


의병들은 절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나무꾼, 장사꾼, 떠돌이, 그리고 눈빛이 살아 있는 청년 몇 명. 그들은 모두 조용히 의병들을 바라보았다.


“당신들도…?”


장혁이 물었다.


“우리는 의병을 돕고자 이곳에 모였습니다.”


한 청년이 답했다.


“일본군이 마을을 장악한 후, 우리는 숨어서 저항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박차정이 청년의 손을 잡았다.


“함께 싸울 수 있겠습니까?”


청년은 잠시 침묵하다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미 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순간, 절 밖에서 작은 인기척이 들렸다. 의병들은 일제히 몸을 낮췄다. 어둠 속에서 칼날이 번쩍였다.

일본군이었다. 장혁이 낮게 속삭였다.


“빛을 끄고, 숨을 죽여라. 그리고, 기회가 오면 움직인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기다렸다.


역사적 사실 및 인물 각주

절과 독립운동 - 전국의 사찰들은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활용되었으며,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의병들이 몸을 숨기고 전략을 짜는 장소가 되었다.

민간인의 협력 - 의병들은 지역 주민들의 지원을 받아 활동했으며, 마을 청년들이 직접 무기를 들고 합류하는 사례도 많았다.

박차정 (1910년~1944년) - 의열단의 주요 여성 독립운동가로, 일본군에 맞선 다양한 작전에서 지휘관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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