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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얏나무 꽃이 질 무렵

제18화: 칼날 위의 맹세

by 나바드

절 밖에서 바람이 스쳤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인기척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기운으로 변했다. 의병들은 조용히 무기를 손에 쥐었다.


“놈들이 다가오고 있다.”


김명규가 속삭였다. 어둠 속에서 일본군이 무리를 지어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었고,

등불이 꺼지며 절 안은 깊은 어둠에 잠겼다.


“숨어서 기다린다.”


장혁이 낮게 명령했다. 박차정과 청년들은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무겁게 열린 절의 문틈으로 일본군이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았다. 빗물에 젖은 칼날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잠시 침묵. 그리고, 번개처럼 터지는 움직임.


“지금이다!”


장혁이 외치며 달려들었다. 짧은 칼이 일본군 한 명의 목을 스쳤다. 동시에 김명규가 총을 쏘았다.

울림이 퍼지고, 어둠 속에서 일본군이 당황하며 무너졌다.

박차정은 잽싸게 몸을 돌려 절 밖으로 뛰어나갔다.

불이 붙은 화살을 들고 있던 마을 청년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지금 던져!”


화살이 하늘로 솟구쳤다. 불꽃이 밤하늘에서 터졌다. 그 신호를 본 숲속의 의병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일본군을 포위하며 빠르게 공격했다.


“놈들을 놓치지 마라!”


김갑이 칼을 휘둘렀다. 싸움은 짧지만 치열했다. 일본군은 예상치 못한 습격에 당황했고,

후세 다쓰지가 마지막으로 포탄을 던졌다. 폭발과 함께 절 마당이 흔들렸다.

살아남은 일본군은 도망쳤다. 바람이 잦아들고, 피어오른 연기 속에서 의병들은 서로를 확인했다.

모두가 살아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장혁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놈들이 본대를 불러올 것이다.”


박차정이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웃었다.


“좋습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치죠.”


그날 밤, 의병들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반격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 및 인물 각주

사찰에서의 전투 - 실제로 독립군과 의병들은 일본군을 피해 사찰을 은신처로 활용했으며,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박차정 (1910년~1944년) - 의열단의 여성 독립운동가로, 직접 전투에 참여하며 일본군을 공격하는 작전을 지휘했다.

포위 및 기습 전술 - 의병들은 적을 교란시키고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전술을 사용하여 수적으로 우세한 일본군을 효과적으로 무력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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