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종로구 계동길

20화. 이곳에 머무는 이유

by 나바드


겨울의 끝자락, 계동리는 여전히 따뜻한 불빛을 품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흩날리는 가벼운 눈발이 보였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걸음을 멈추고, 누군가는 지나가고 있었다.

가게 안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와인, 위스키, 커피,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주인장은 조용히 바 뒤에서 잔을 닦으며, 오늘도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이했다.


1. 퇴사를 앞둔 직장인, 그리고 새로운 시작

문이 열리며 H건설사 최준혁이 들어왔다.
평소처럼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오늘은 묘하게 가벼운 느낌이었다.

그는 바에 앉아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사장님, 오늘은 와인 한 잔 주세요.”


주인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와인을 따라주었다.


“오늘은 무슨 날인가요?”


준혁은 와인잔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퇴사합니다.”


주인장은 잠시 손을 멈추고,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결정하셨군요.”


준혁은 잔을 기울이며 작게 웃었다.


“네. 오랜 시간 고민했는데, 이제는 새로운 길을 가보려고요.”


주인장은 잔을 닦으며 조용히 말했다.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중요하죠.”


준혁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금 무섭기도 하지만, 기대도 돼요.”


주인장은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마음이 든다면, 제대로 가고 있는 걸 겁니다.”


준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앞에는, 이제 새로운 길이 펼쳐질 것이었다.


2. 김민석과 최소현, 익숙해지는 거리

그때, 문이 열리며 최소현이 들어왔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잠시 후, 김민석이 기타를 들고 들어왔다.

그는 그녀를 발견하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오늘도 오셨네요.”


그녀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곳이 편해서요.”


김민석은 기타를 조용히 튕기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어떤 노래를 듣고 싶나요?”


최소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이곳에 어울리는 노래요.”


김민석은 피식 웃으며, 천천히 연주를 시작했다.


“이 밤에 머무는 사람들
이 공간에서 흘러가는 이야기들
우리는 어쩌면, 같은 시간을 지나가고 있나 봐”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노래를 들었다.

그들은 점점 더, 자연스럽게 서로의 공간에 머물고 있었다.


3. 방송국 PD, 그리고 다큐멘터리 기획

한참 후, 문이 열리며 이희재 PD가 들어왔다.
그는 피곤한 얼굴로 자리에 앉더니, 소주를 주문했다.

주인장이 조용히 소주 한 병을 따라주며 물었다.


“오늘은 어떤 고민인가요?”


희재는 한숨을 쉬며 소주를 한 잔 들이켰다.


“다큐멘터리 기획, 진행하기로 했어요.”


주인장은 잔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동리 이야기인가요?”


희재는 씩 웃으며 말했다.


“네. 여기 오는 손님들, 그들의 하루, 그들의 고민…
이 공간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담아보려고요.”


주인장은 말없이 잔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희재는 천천히 소주를 마시며, 다큐멘터리에 담길 이야기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계동리에서 나눈 대화들, 남겨진 흔적들, 그리고 서로를 위로하는 순간들.

그것들은, 분명히 누군가에게 닿을 것이었다.


4. ‘계동리 사람들’ 노트에 남겨진 흔적

그날 밤, 한 손님이 바 한쪽에 비치된 ‘계동리 사람들’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조용히 한 줄을 남겼다.


“이곳에 머무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같은 감정을 안고 이곳을 찾는지도 모른다.”


주인장은 조용히 노트를 덮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계동리 안은 여전히 따뜻했다.

오늘도 계동리는, 누군가에게는 잠시 머무는 곳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다시 시작하는 곳이었다.

keyword
이전 19화종로구 계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