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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아빠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다.

습작의 창고

by 나바드

나는 공무원이다.

늘 고정된 월급을 받으며,

한 달을 살아내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아픈 아이의 치료비를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버거웠다.


나는 다짐했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좋은 추억을 쌓는 ‘좋은 아빠’가 되는 건

이번 생에 포기하자고.


대신, 아이를 살리자고.


회사에서는 언제나 내가 자원했다.

비상근무, 당직, 공휴일 근무.

수당이 붙는 일이면 뭐든지 내가 했다.

누가 꺼리는 공사 현장도 내가 나섰다.

주말이고, 새벽이고, 밤낮없이,

내 몸을 바쳐 일했다.


그렇게 살았다.

자식 하나 살리겠다고.

내 삶을 통째로 그 아이의 치료비로 바쳤다.


아이의 병원비를 입금할 때마다

내 계좌 잔고는 비었지만,

그날 하루는 살아냈다는 안도감이 남았다.


아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아이는 몰랐겠지만

나는 늘 그 생각을 했다.


아이의 치료를 위한 내 삶은

눈 뜨면 일이고,

눈 감아도 숫자였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내 나이 어느덧 칠십을 바라보고 있다.

돌아보면,

나는 나를 위해 산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내 아들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찢어진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넌 늘 혼자 병실을 지켰고,

아빠는 늘 병원비를 벌러 밖에 있었다.


너는 외로웠을 것이고,

아빠는 늘 늦었다.


어쩌면 나보다

너는 훨씬 더 어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병원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늘 그렇게 흐렸을 텐데

아빤 그 하늘도 같이 보지 못했다.


그게 지금도 마음에 남는다.

아빠가 너의 하늘을

한 번도 같이 봐주지 못해서.


그래도

너는 잘 커줬다.

살아 있어서 고맙고,

아빠를 미워하지 않아서 고맙다.


이제라도 말해주고 싶었다.

아빠가 미안했다고.

아빠가 너를 참 많이 사랑했다고.

그래서,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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