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내면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선 Nov 17. 2015

아프다는 건 다만, 아프다는 것.

나는 쉽게 웃고 쉽게 우는 사람을 사랑한다. 사실 내가 그래 왔다. 좀 멋쩍지만 나는 그런 나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했다, 한때는. 20대 후반이 되면서 쉽게 웃고 쉽게 우는(소위 일희일비하는) 그 가벼움에 치를 떨게 되었다. '나는 왜 이리도 가벼운가.'에 대해 많이 반성했다. 쉽게 웃고 쉽게 우는 사람은 감성의 촉수가 예민하다. 예민한만큼 많이 다치지만 예민한만큼 감정의 농도가 진한 삶을 산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보다 삶을 피곤하게 산다는 의미도 되지 싶다. 무덤덤해지고 싶었다. 크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너무 많이 동요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그간의 삶이 너무 요동쳐서 피곤했기 때문일 런지도 모르겠다. 한시도 가만있질 못하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처럼 나의 감정은 적어도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동안은 들쑥날쑥했다. 감정을 다스려보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사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일희일비한다. 그러나 20대의 나보다는 훨씬 덜 울고 덜 웃는다. 그럼에도 친구들과의 단체사진, 직장에서 워크숍에서 찍은 단체사진 등을 보면 '객관적(!)'으로도 제일 많이 웃으며 찍는다, 늘.(엄마는 "제일 활짝 웃는 사람 찾으면 네 모습이 확실하다"라는 말씀까지 해주신 적이 있다.)


감정이 조금씩 평정을 찾아가면 무언가 낭비하는 것들도, 사려 깊지 못해 덤벙대는 것도 줄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감정이 불길처럼 치솟는 시간들을 지나 울고 웃는 일이 줄어들수록 나는 타인의 아픔에 울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의미 없는 '타자'로서만 인식하고 얄팍한 생각이 머리를 먼저 장악하게 되지는 않을까 말이다.


뉴스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떠돈다. 가장 가깝게는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사건, 그리고 서울 광화문에서 있었던 민중총궐기. 그리고 조금 더 멀게는 각종 사건사고. 특히나 아직도 잊어지지 않은 세월호, 세월호.


언젠가 영화평론가 최광희 씨는 천만을 동원한 영화 <7번 방의 선물>을 두고 신파라고 했다. "한국의 신파 영화에 눈물 흘린 그 숱한 관객들 수만 본다면, 한국은 참으로 정도 많고 배려심도 많은 사회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이 그러한가? 사람들은 그저 극장 안에서만 착해질 뿐이다. 그렇게 자신이 여전히 착함을 위안 삼으며 극장 문을 나설 뿐이다"라고 덧붙여 이야기한 적이 있다.

(출처 :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1837795)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에 대한 이견은 있을 수 있으나 이 문장은 제법 매섭게 다가온다. 우리는 얼마나 간사하게 눈물을 흘리는가. 우리가 진정 아파야 할 공간에서는 얼마나 울고 있는가. 전 세계의 어디에라도 이 순간에도 아픔은 존재한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듯이 기쁨의 총량만큼 아픔의 총량도 이 지구상에 함께 할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죽어도 초상집에서 끼니는 챙겨먹으며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로 아픔에서 벗어나는 일에 인색하지 않은 것이 또 사람이다. 그러나 타인의 아픔을 내 것으로 진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픔에서 벗어나라 말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 안에서만 반응하는 간사함이 있다. 나와 관련 없는 '타자'들의 고통에 함께 울어줄 만큼 아름답지 않다. (파리의 테러상황이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상황에서 포털검색어 1, 2위를 다투는 것이 "로또당첨번호"라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한번더 자조적으로 웃게 되었다.) 사실 그러므로 타자의 고통에 함께 울어주는 일은 매우 인간적이며 매우 존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격과 수준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프다.
많이 아프다.


벌써 20년이 지났다. 어릴 때에 우리 집에서 키우던 진돗개가 있었다. 많이 좋아했던 개였고, 매일 보살폈던 개였다. 여름 저녁에는 녀석이 너무 답답해하는 것 같아 목줄을 풀어주곤 했다. 녀석을 매일 산책시키기에는 부모님도 나도 너무 바빴다. 학교에 직장에.. 동네 지리를 녀석은 다 알고 있고, 물론 동네 사람들도 녀석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그 큰 덩치에 비해 순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낯선 사람에게  해코지한 적도 없었다. 녀석이  컹컹하고 짖을 때엔 집을 지킬 때 밖에 없었으므로. 그러니 한 번씩 풀어주어도 밤새 쏘다니다가 새벽이 되면 집 대문 앞에 다소곳이 앉아있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녀석이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 개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우리는  그때 이후로 그 개를 잊지 못한다. 죽었다면 잊었을 것이다. 그런데 잃었기 때문에 잊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얼마 전에 깨달았다. "하물며 개 한 마리도 그런데, 사람은 어떻겠나."라고 생각해본다. 세월호의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아프다.
많이 아프다.

며칠 전의 파리가 그랬지만, 아픔에 더 중한 것이 있을 수 없음에도 파리에만 애도를 보내는 모습도 불편할 정도로 아프다. 며칠 전의 서울도 아프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무덤덤해지고 있다. 타인의 아픔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 사람은 사람다움에서 멀어지기 쉽다. 타인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과 동일한 크기로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차라리 쉽게 울음을 터뜨리고 쉽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 용감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극장에서 최루성 장면에 눈물 흘리고 영화가 끝난 후에 자연스럽게 밥을 먹으러 가는 일상을 보내며 부끄러움이 밀려든다. 여전히 나는 <7번 방의 선물>과도 같은 영화를 보며 최루액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지만, 적어도 나는 최루액없이 눈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겠다. 아프다는 건 아프다는 것이다. 다른 무언가로 덮을 수도 없으며 아픔에 인색할 필요도 없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감정 중에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기쁠 때 웃는 것처럼 아플 땐 울자. 아프지 말라고 달래지 말자, 기쁨을 달래지 않듯이 아픔도 달래지 않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사람이 죽으면 초상집에서 '곡'을 하듯. 곡을 해야 하듯.

매거진의 이전글 관계, 소비하지 않겠다는 다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