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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May 21. 2024

아침

지겹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고 시시하기도 하고 간혹 웃을 일도 있지만, 생활은 대체로 시지프스가 밀어올리는 돌 같다. 돌덩이를 밀어올려놓으면 굴러떨어지고 또 밀어올려야 하는. 평생 돌을 밀어올리는 시지프스와 같은 모습이 사람의 일상이다. 그런 생각으로 하루를 다 소진한다고 해도, 해가 지면 드디어 자유다. 밤은 언제나 나의 것. 밤에는 누구도 나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음식을 나에게 먹이지 않아도 되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이 시간을 가장 아낀다. 그러나 시간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나는 곧 잠들고 만다.


그리고 다시 아침. 어젯밤 시간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내가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시간은 나를 재촉한다. 빨리 세수하라고 재촉하고, 빨리 옷을 입으라고 재촉하고, 화분에 물은 주었느냐고 닦달하고, 블라인드며 커튼을 걷으라고 재촉한다. 식사라고 보기 어렵지만 무언가를 입속에 넣으라고 재촉하고 나면 어서 집 밖으로 나가길 재촉한다. 나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길 재간이 없다. 그렇지만 그 싸움을 포기할 수도 없다. 다만 조금이라도 잘 싸워보려고, 라디오를 켠다.


바쁜 나와 전혀 상관없는 부드럽고 여유 있는 목소리의 아나운서가 오늘의 음악들을 선곡하고 명징한 연주를 주파수로 보내온다.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의 레온카발로라는 작곡가가 쓴 "아침의 노래(원제:Mattinata)"를 파바로티의 음성으로 듣는다. 밤에 부르는 사랑 노래가 '세레나데'라면, 아침에 연인의 창가에 찾아가 부르는 노래가 '마티나타'이다.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과 잔잔하지만 새파란 바다색이 청량하게 통통 떠오르는 이 멋진 노래를 스킨과 로션을 바르며 듣는다. 시간은 나를 재촉하다가 함께 음악을 듣는다. 시간은 재촉을 멈추고 화초에 춤추는 햇살을 보라고 손짓한다. 창을 연다. 방안의 묵은 공기가 재촉하던 시간과 함께 창밖으로 사라진다. 푸른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고작 돌을 밀어 올리는 일이더라도, 시작은 희망을 담보하는 단어. 오늘의 돌이 자그마한 희망이 되길 기도하며 셔츠의 단추를 잠근다.

https://youtu.be/8mWUCO6yTQw?si=O0n_N7rW9hPQvp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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