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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May 14. 2024

만남

오래 기다리셨어요?

저도 막 왔어요.

커피 주문할까요?

네. 저는 먼저 주문했습니다.

뭘로 드실래요? 아메리카노요.


준비된 멘트처럼 자연스럽게 주고받았다. 얼굴을 보는 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커다란 백팩에서 책을 꺼낸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던 모습이었다. 그는 한 달 전에 고전문학이나 쉬운 철학서 같은 것들 위주로 독서 모임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었다. 나는 흔쾌히 응했고, 사람들을 모아 보기로 하고 헤어졌었다. 나의 도피인지 자유인지 모를 여행이 끝나갈 무렵, 그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나는 7번 국도 여행 중이라고 말했고, 여행이 끝나면 한번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었다. 자리에 앉자 7번 국도 여행은 어땠냐는 이야기로 그는 안부를 물었다. 떠나는 일은 언제나 좋은 것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 때 커피가 나왔다. 나와 그는 따뜻한 커피잔에 손을 올리고 커피를 호록 마셨다. 그는 나에게 커피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세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때의 장면은 사진처럼 기억이 또렷하다. 조도가 낮은 카페의 갈색 벽에 그려졌던 커피 원두 모양의 그림들과 쳇 베이커의 트럼펫 연주가가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는 것. 커피를 다 마시고 커피잔이 완전히 메마를 때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도 해가 뉘엿 옆으로 누울 때 즈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는 것. 주차 공간이 마땅찮아 차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내게 그가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 주었다는 것. 무거워 보이는 그의 백팩에 무슨 책이 들었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못했다는 것도. 오후 6시가 가까워져 카페에서 일어서면서도 "저녁 식사하고 가실래요?"라고 묻기에는 친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우리가 독서 모임을 만들었기 때문에 만난 것도 아닌데. 왜 만났을까.


누가 먼저 만나자고 했는지 기억도 정확하지 않던 만남. 만날래요? 네. 그래요.

이렇게 만난 낯선 이와의 만남.

그럼에도 취향과 책과 음악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만 꽉 채운 만남.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거리, 그리고 밀도 있는 대화가 있었던 만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전화번호를 외우며 이 시간이 다시 이어지길 기대하게 되었던 만남.


https://youtu.be/dETrd0rYNQM?si=y6dDmB5IihTcXQ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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