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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May 07. 2024

노란 송진가루가 생명의 잉태를 위해 멀리 날린다. 이리저리 머리칼을 눕히는 바람이 부드러운 온도로 피부에 닿는다. 언 땅이 조금씩 녹고 냉이와 쑥이 밟힌 채로도 머리를 내밀어 올린다. 밟히고도 올라올 줄 아는 풀들은 힘이 세다. 냉이와 쑥을 뜯는 내 손에 진한 향취를 전한다. 냉이에 된장을 풀어 멀겋게 끓인 국을 한 술 뜨며 뱃속부터 봄으로 채운다. 봄은 체온으로 번진다. 내 몸의 체온을 덮이고 내 입을 향으로 감싸며 강렬하게 봄은 온다. 추위에 유린되었던 모든 시간들을 감각으로부터 지우고 싹을 틔울 수 있는 몸이 되기 위해 봄은 나를 물들인다. 봄은 묵었던 추위가 지날 무렵에 오는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거침없이 다가오는 계절이다. 단단했던 나무 둥치에서 나오는 연두색 보드라운 잎, 햇빛의 온도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채고 꽃봉오리를 돋우는 가지, 모든 것들이 새로 시작되는 찬란한 공기 안에서 나는 진하게 봄을 만난다.


봄은 우리가 만나는 계절. 나는 너와 어색한 얼굴로 만나고 어설픈 표정에 발을 딛는다. 날씨 얘기 말고도 할 말을 찾아내느라 고단함을 어깨에 걸친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돋아날 여린 싹을 위해 웃음을 만난다. 꽃이 피고, 흩날리는 것을 보며 비로소 네 이름을 불러본다. 이제야 너는 나에게 웃는다.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을 시간이 너의 향기로 물이 들고, 나는 너를 예쁘게 보고 싶어 조바심을 낸다. 선생님이 우리 반 담임이라서 좋아요, 봄에 찾아온 너희가 내 생일선물이야. 오월의 첫날에 간지러운 말들을 주고받으니, 언 땅을 뚫고 올라온 풀보다도 우리가 가장 힘이 세구나. 이 만남이 기꺼워 기대와 실망이 커지기 전에, 연둣빛이 시퍼런 생명으로 둔갑하기 전에, 오래도록 너를 보고 싶구나. 황사와 송진가루와 방향을 알 수 없는 바람이 머리칼을 어지럽히더라도, 나는 바라보고 흐뭇하기 좋을 봄에 마음껏 보고 싶구나. 봄은 보는 게 좋은 계절. 너를 만난 계절은 언제나 봄. 어느 계절에 만나도 그때부터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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