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비봉능선, 갈증에서 시작했지만 오래된 시간에 다시 섭니다.
북한산은 너무도 유명한 산이 되어있었다. 수도 서울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산이기도 하지만, 멀리서 바라보기에도 다채로운 산이었다. 그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나뭇잎의 색만 보여주는 산이 아니라는 뜻이다. 커다란 바위, 그 바위틈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들. 산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다. 땅에서 어떻게 이런 것이 솟아올랐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 북한산에서 제법 긴 산행을 하며 큰일 날 지점들이 있었다. 너무 많은 음식물은 걷기에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과했던 걸까. 간식을 많이 챙기지 않고 가방을 좀 가볍게 해서 걸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땀을 많이 흘릴수록 물을 들이켜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물만으로는 목마름이 풀리지 않는 이유를, 그때는 몰랐다. 갈증에 더해 온몸에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 들기까지. 백운대(정상)에 도착하지도 못했는데, 물을 거의 다 마셔버렸다. 우리는 그전부터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끼긴 했었다. 준비의 착오였다. 필요한 물을 눈대중으로 대충 계산했던 터였는데. 생수 네 병이면 둘이서 충분하다고, 대충 계산해 버렸다. 고도가 높지 않은 산이라고 만만하게 본 걸까. 왕복 18km가 절대 만만한 거리가 아닌데. 다른 산행에서는 충분할 수 있는 양이었지만, 땀을 많이 흘릴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수분뿐만 아니라 몸속의 염분과 당도 모두 빠져나가버렸다. 급기야 백운대에서 낯선 등산객에게 물을 부탁해 얻었다. 음식은 먹고 싶지 않고 물만 먹고 싶은 상황. 나는 몸속 전해질 균형이 무너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직접 겪었다. 꾹꾹 버티다 기진해 쓰러질 지경이 되었고(조난되기 일보 직전) 걷는 속도도 완전히 느려져서, 예정보다 2시간이 늦게 해가 다 지고서야 하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본능적으로 산 아래 문 열린 밥집을 찾아 김치찌개를 말도 없이 퍼먹었다. 짭조름한 김치찌개 한 사발을 비우자, 정말로 '눈이 뜨이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때 왜 이온음료를 챙기지 않았을까.
"저번에 너희들 없을 때 너희 외삼촌이랑 등산을 가는데, 출발한 뒤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제법 덥더라고. 내가 땀을 한참 흘리니까 삼촌이 알약을 하나 주더라. 소금 대신이라며 꿀꺽 삼키라고 했었다. 그거였네. 어휴. 너희 큰일 날 뻔했다."
북한산에 다녀온 일을 어머니에게 들려드렸을 때, 어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리셨다.
"산은 늘 조심해야 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절대 이기려 들지 마."
산은 사람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앗을 수 있을지에 대해 북한산의 능선 위에서 배웠다. 그 위에서 얻는 '생각'과, 때로의 '생각 없음'은 그다음의 문제였다. 나는, 자연의 일부라고 하기에는 이미 철저히 문명화된 나약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문명의 이기 없이는 산에 다가오기 어렵다는 사실을.
그러나 고생만이 산의 얼굴은 아니었다. 준비를 새로 가다듬고, 나는 다시 북한산을 찾았다. 저번에는 의상능선을 타고 백운대를 거쳐 내려오는 길을 거쳤다면 이번에는 비봉능선을 찾았다. 저번보다는 길지 않은 코스로 잡고, 백운대에 올라가는 길을 생략했다. 등산에서 꼭 정상이 필수가 아니라는 사실 즈음은 이제 체득할 때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조금은 힘을 뺀 후 다시 찾은 북한산은 다른 이야기를 내게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신라 진흥왕이 북한산 순수비(신라가 한강 유역을 장악하고 영토를 확장한 기념을 하기 위해 직접 왕이 산에 올라 비석을 세웠다)를 세웠다는 그 비봉에 올라가 보고 싶었다. 지금 비석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길은 더 짧게 잡았지만, 이번엔 시선이 멀리 갔다. 바위와 성벽, 이름을 가진 봉우리마다 오래된 시간이 겹쳐 보였다.
우리나라의 큰 산들은 침략과 방어, 번영과 쇠락의 아픈 시간들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옛사람들이 지났던 그 길을 걷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산이 경주의 남산이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던 그 많은 불상들이 무뎌지고 깎여진 채 등산로 주위에 버려지듯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시간의 흐름을 새삼 일깨운다. 그 사람들이 지났던 길을 내가 이 시간에 걷는다는 것. 경주의 남산은 약간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것처럼 북한산도 마찬가지이다. 방어를 위해 쌓았던 북한산성은 처절했던 싸움의 터이기도 하고, 그래서 하나의 역사적 유적지이기도 하다. 그 유적지 위, 암릉을 네 발로 기고 두 발로 서며 바위에 착 달라붙어 서 있는 기분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나라는 기분, 내가 여기에 서 있다는 새삼스러움, 그런 것이 때로 나를 새롭게 이 시간에 존재한다는 기분을 갖게 한다. 내가 어디서부터 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 하더라도, 나와 세상을 구별할 수 있는 인식을 처음 했던 청소년기처럼 말이다. 그래서 산 위에 서면 삐뚤빼뚤 했던 삶의 어느 모퉁이를 고쳐 더 나은 나로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억겁의 시간들이 흘렀던 그 흔적 위에 서면, 그 흐름에 나 자신도 일부가 되어 심장박동이 편안해지는 것만 같다. 그러면 산 밑에서 밥 지어먹고사는 나의 매끄럽지 않은 삶도 때로 조금은 괜찮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산에 가는 이유는, 누군가가 밟았던 길을 내가 느리게 밟는 걸음으로 진하게 느끼기 때문일까. 그래서 내 앞에 사람 있고 내 뒤에 사람 있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일까,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나는 나로서 있지만 나는 혼자이지 않다는 사실, 그 위로를 산이 더 크게 증폭시켜 내게 보여주는 건 아닐까.
덧) 이 산행을 마치고서야, 드디어 우리는 설악산 공룡능선으로 향할 용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