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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아도 다른 길이 있지,

끝낼 수 없는 삶이라면 다른 길에서 시작해보면 어때. 북한산 암릉처럼.

by 경계선

“걷는 일에는 자신 있다”로 시작한 산행은, 결국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남은 거리가 얼마든, 남은 시간이 얼마든, 산은 언제나 길과 하늘을 넉넉히 내어주었다. 무언가를 끝내야 한다는 강박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산은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알려주었다. 차를 몰고 가다가도 먼 곳에 보이는 산의 이름이 궁금했고, 날이 흐리면 어느 산 정상에 쌓였을 눈을 상상하곤 했다. 산을 마음 가까이에 두자 끝나지 않은 삶에 대한 조급함과 두려움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산에 안기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당일 산행으로 10~15km를 걷고, 8~10시간을 너끈히 버틸 수 있게 되었으며, 주말마다 평일보다 더 일찍 일어나는 일이 당연해졌다. 산에 오르려면 적어도 새벽 네다섯 시에는 기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이제 설악산 대청봉 가고도 남겠다."


외삼촌이 우리 부부의 산행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이어지는 외삼촌의 설악산 등반기는 호기로웠다. 십수 년이 더 되었다고 했다. 설악산 공룡능선을 올랐던 것은.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 뾰족뾰족한 암릉 사이사이를 오가는 그 5km의 능선은 위험천만한하지만 황홀경이라고. 삼촌의 설악산 등반기를 들으며 나는 머릿속으로 이미 여러번 설악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내게 대한민국 제1경이라 불리는 그 능선을 밟는 일은, 설악산의 대청봉 보다도 더 간절하고 위험한 목표가 되어갔다.


"5km 정도면 아무리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다고 해도, 쉽게 가능하지 않아요?"

“아니야. 문제는 공룡능선 자체가 아니야. 그 전후가 훨씬 더 힘들어. 소공원에서 시작해 비선대-마등령-공룡능선-무너미고개-천불동-비선대로 이어지는 코스가 보통인데, 전체 거리가 20km가 넘거든.”


20km. 아직 걸어본 적 없는 거리였다. 게다가 나는 흙길이나 돌길은 익숙했지만, 바위만 이어지는 길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단어마저 생소했다. ‘암릉’. 우리는 유튜브를 찾아보며 암릉이 무엇인지부터 배웠다. 그 순간부터 내 안에는 이유도 없이 ‘암릉을 걷고 싶다’는 욕망이 피어올랐다.


암릉 하면 북한산이다. 왜 그동안 가보지 않았을까. 서울을 병풍처럼 둘러싼 거대한 화강암 바위, 수도를 둘러싸고 있는 천혜의 방어막. 아직 겨울의 바람이 산 위에 남아 있을까. 우리는 얇은 바람막이와 혹시 모를 추위에 대비한 재킷을 챙겨 3월 초에 북한산으로 향했다.


"이번엔 암릉과 거리를 익히는 게 목표야. 거리는 총 18km코스로 가보자."


주말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들머리에 닿은 건 오전 여덟 시가 넘어서였다. 서울의 외곽, 은평구. 지하철역과 산자락이 가까이 이어지고, 등산복과 일상복이 뒤섞인 거리 풍경은 수도 서울의 따뜻한 얼굴로 비춰졌다. 북한산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지하철을 타고 곧장 해발 800m가 넘는 산에 오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하산 후에는 먹을거리와 쉴 곳이 풍부하다는 점. 그렇게 도시와 자연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산은 내게 또 다른 세계가 될 수 있었다. 그 어떤 산보다도 산길로 향하는 길목에서 이미 북한산은 글로벌한 관광지였다. 등산 중에 만난 외국인의 숫자가 내국인 못지않았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앞은 벌써 주차된 차들로 가득했다. 등산복 매장과 정비된 상가, 알록달록한 등산복이 풍경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믿기지 않을 만큼 멀리서도 보이는 크고 둥글둥글한 바위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설악산처럼 뾰족하지는 않았지만, 넉넉하고 포근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방심하면 위험한 구간이 많다고 했다. 나는 봄이 다가오는 속도에 발을 맞추어 천천히 의상봉으로 향했다. 의상능선의 암릉을 넘어 백운대로 이어지는 코스, 왕복 18km. 가방에는 김밥과 간식, 물을 챙겼다.


백운대의 해발은 1,000m가 되지 않아 쉬울 거라 생각했지만, 시작부터 가파른 길이 이어졌다. 북한산은 순한 얼굴 뒤에 만만치 않은 기세를 숨기고 있었다. 미끄럽진 않았지만, 바위는 속도를 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산은 두 발만으로 오르는 곳이 아니었다. 두 손으로 짚고 밀고, 몸을 낮춰 네 발로 기어 올라야 하는 산이었다.

스틱을 접고 두 손을 자유롭게 하자, 나는 거대한 바위 위를 기어오르는 작은 생물이 된 듯했다. 등산화는 바위에 빨판처럼 달라붙었고, 손은 앞을 가로막는 돌을 붙잡았다. 전신의 근육이 하나하나 깨어났다.


숨이 턱에 차오르고, 정수리에서부터 땀이 흘러내렸다. 결국 바람막이를 벗고 반팔 차림이 되었다. 오전 10시 30분, 아직 봄이 오기엔 이른 계절이었지만 반팔의 나를 보고 미소 짓는 산객들이 지나갔다. 그들의 시선이 응원처럼 느껴졌다. 바위는 내 키보다 높거나 내 팔로 감싸지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그 위를 기어오르는 일이 왠지 즐거웠다. 두 손으로 바위를 잡아당기며 한 걸음씩 내딛는 감각, 단순히 걷는 것보다 더 짜릿했다. 배낭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허리벨트를 단단히 조이자 불안감도 사라졌다.


암릉을 타는 재미란, 전신의 근육을 모두 깨워 쓰는 데 있다. 바위를 요리조리 넘어 길을 이어가다 보니, 시야가 갑자기 트였다. 서울의 빽빽한 아파트 단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도심의 혼잡함을 아무 근심 없이 내려다볼 수 있는 풍경. 그 순간, 대도시의 산이 주는 독특한 매력에 탄성이 터졌다.

이런 풍경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서울의 가장 아름다운 산에 있음을 깨달았다. 암릉을 타며 만난 이 일회성 풍경은 내 안에 난데없는 감격을 남겼다. 그리고 그 암릉은 단순한 바위가 아니라 또 다른 삶의 방식임을 나에게 알게 했다.


그러나 삶의 방식 만큼이나 생각지도 못한 현실적인 문제도 도사리고 있었다. 풍경이 아름다울수록 길은 끝나지 않고, 길이 끝나지 않으니 풍경이 더이상 아름답지 않더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더 무서운 사실도 있었는데. 몸의 전해질의 균형이 무너지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 아름다움은 몸의 온전함 그 뒤에 오는 사치라는 사실, 여전히 나는 등산의 초심자라는 사실을 북한산성의 성벽길에서 깨달아야만 했다.

IMG_9743.jpg 일명 '토끼바위'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멀리 보이는 도시의 풍경이 색다릅니다.
IMG_9767.jpg 북한산성 성곽길. 멀리 보이는 모든 산이 다 바위에요. 내 사랑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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