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진해...
검푸른 겨울바다는 내 젊음과 N.O.C.S 90기 동기들의 젊음을 삼켜버릴 듯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1장. 입영열차(1996.03.19)
1996년 3월 19일 대전역 광장은 여느 때와 같이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로 붐볐다.
어떤 이는 반갑게 웃으며 또 어떤 이는 알 수 없는 아쉬운 눈빛으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분주한
모습들이 교차되면서 심란한 내 심장은 쿵쿵 소리를 내어가며 온몸에 긴장감을 전달하고 있었다.
"건민아" 어제 캠퍼스 벤치에서 기다리는 나를 향해 다가오며 부르는 친구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오늘은 약간의 떨림처럼 귓가를 때리고 잠시 심란했던 정신이 친구의 얼굴에 집중되었다. 초조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한 친구의 어색한 웃음은 어디선가 본 듯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언젠가 내 얼굴의 미세한 근육들이 만들어냈던 그 느낌을 많이도 닮아있었다. 생각해보니 3년 전 저 녀석 군대 입소하는 날 배웅했던 내 얼굴이 투영된듯하여 기분이 묘했던 것이다.
어제 보고도 1년쯤 못 만난 사이처럼 반갑게 손잡고 들어선 플랫폼에는 같은 날 같은 곳으로 함께 입대하는 동기들 셋이서 나를 반기고 있었다. 두 명의 동기는 여자 친구와 꼭 붙어서 남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 맞추고 껴안으며 작별의 마지막 시간을 부여잡고 있었다.
잠시 뒤 플랫폼에 들어서는 거대한 직육면체 모양의 쇳덩어리는 덩그런 무쇠 바퀴를 굴리면서 거기 서있는 너희들을 모두 삼켜버리겠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달려들고 있었다. 이마에 내 목적지는 <마산>이라고 힘주어 알려주려는 듯 큼지막한 입간판을 붙이고는 입김을 킁킁거리며 우리 앞에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함께 올라탄 동기들과 자리를 확인하고 곧장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절친 '윤선'이와 배웅 나온 과 친구 몇 명이 내 눈과 마주치려고 기다렸다는 듯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재빠르게 입구로 나가 어느 로맨스 영화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이별하는 남자 주인공처럼 계단 손잡이를 잡고 계단에 서서 친구들의 배웅에 화답했다. 그 순간 가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먹먹함이 코끝을 타고 목구멍에 흡착되어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고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객실로 돌아왔다. 그때 열차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듯 오직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만으로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고 나는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친구들이 모두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니, 사라지고도 한동안 우두커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진해라는 먼 곳으로 여행도 아닌 군대 입영을 혼자가 아니라 네 명이 떠난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후줄근한 의자 깊이 몸을 기대었다. 다들 무언가 소중한 것들을 내려놓고 온양 뒤척이며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면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재미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긴장감이 잠시 누그러져 단잠에 빠져버렸다.
버스를 타는 곳까지 배웅을 나오시며 눈물을 꾹꾹 참으시는 어머니와 힘겹게 눈물을 막아내고 있는 내 미간 사이로 빼꼼히 흘러내리는 뜨거운 액체에 결국 어머니도 나도 눈물을 터뜨렸다.
이미 70세를 넘기신 노모에게 막내였던 나는 귀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이었으리라.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한동안 헤어지는 슬픔과 아쉬움이 섞인 눈물은 꿈에서조차 뜨거웠다. 잠에서 깬 내 눈가에 촉촉이 젖은 눈물을 숨기듯 훔치고 나니 어느새 기차가 마산역 근처에 다다랐는지 마지막 정차역 안내방송이 흐르고 있었다. <마산>... 함께 온 입영 동기들과 나는 스산한 겨울 끝자락의 찬바람이 코끝을 탁 쏘는 마산역 광장으로 나오면서 비릿한 바다 냄새 같은걸 맡았다. 아니... 강렬하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