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복종주(직각 식사와 삶은 계란)
새벽 5시면 어김없이 기상나팔소리에 깨어나 숙소 앞 작은 연병장에 집합해 인원 보고와 당일 암구호를 하달받고 오전 단체 구보를 시작했다. 오늘의 당직 훈련관이 명령을 하달했다. "오늘부터 2주간 복종 주가 시작된다. 경례 구호는 복종!이다~ 알겠나?" "넵~~"
그렇게 복종 주가 시작되었다. 복종 주는 군인으로서 상급자의 명령에 무조건적인 복종 정신을 체득하여 일사불란한 명령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군 조직 문화의 첫걸음이자 기본정신이다. 하지만 입영 전까지 4년 동안 대학 캠퍼스의 낭만과 자유를 누리던 우리에겐 '복종'이란 단어는 정말 낯설고 두렵게까지 느껴졌다.
해군 사관후보생들의 식사시간은 정말로 독특했다. 식사시간조차 훈련의 일환으로 각 잡힌 직각 식사를 했으며 식당 내 입장과 퇴장 시에도 직각 보행을 해야만 열외 되지 않고 식사를 마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식당에 들어서면 음악 2곡만이 계속해서 무한 반복되었는데 가수 이소라의 '난 행복해'와 민들레의 '사랑을 할 거야'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두곡이 90기의 기생가(해군사관후보생 기수별 애칭 곡)였다.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기에 훈련이 끝나면 절대로 가수 이소라 노래는 듣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과연 나만 그랬을까?!
동기생들이 모두 자리에 착석하면 마주 보고 앉은 훈련관 석에서 타종을 친다. "땡땡~" 그러면 우리는 합창을 하듯 목구멍이 터져라 구호를 외쳐댔다. "나는 가장 강하고 멋있는 해군 장교가 된다~~!!" 그러면 훈련관은 한 번에 밥 먹을 기회를 절대 주지 않았다. "이 자식들 밥 먹기 싫구나~ 목소리 봐라 목소리~~ 다시 구호 실시~!" "나는~ 가장~ 강하고~ 멋있는~ 해군~ 장교가~ 된다~~~!!"
직각 식사는 사실 거의 로봇 같은 모습으로 식사를 하는 것인데, 상체를 곧게 편 상태를 유지하면서 고개와 눈동자는 맞은편에 앉은 동기의 눈을 쳐다보고 있어야 하며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감지되어 훈련관에게 들키면 곧바로 퇴장 명령을 받게 된다. 밥이나 반찬을 먹을 때도 한 번에 집어서 입 앞까지 팔을 올린 다음 90도의 각으로 꺾어서 입에 넣어야 하는데 익숙하지 않을 때 숟가락이 입을 찾지 못해 이빨에 부딪히거나 입술에 흘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주 앉은 상대방이 실수하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그 경직된 시, 공간에서도 가끔 속으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한 번은 삶은 계란이 포크형 숟가락에 꽂히지 않아 미쳐버리는 것 같았다. 훈련관이 좌우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눈동자만 밑으로 살짝 깔아 계란을 집었는데 그때, 훈련관이 식탁 위로 뛰어 올라와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너~ 식사 끝~ 퇴장~~!!" 명령을 받았다. 그러면 숟가락을 그 즉시 내리고 먹던 식판을 들고는 밖으로 퇴장해야 했다. 밖으로 쫓겨난 나는, 나처럼 퇴장당한 동기들과 함께 식당 밖 광장에서 열중쉬어 자세로 식사를 마친 동기들이 모두 퇴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먹지 못한 그 한 끼가 얼마나 서럽고 억울했던지 후회를 하면서 말이다.
저녁식사 후 잠시 쉬는 시간에 다른 소대로 배치된 대학 동기 '기훈'이가 내 손을 잡아끌고 화장실로 데려갔다. 좌우를 열심히 살피더니 비어 있는 대변실로 끌고 들어가 문을 잠그고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삶은 계란 하나를 내게 건넸다. 이 녀석은 내가 식사 때 퇴장당한 거를 보았는지 자신의 삶은 계란을 어떻게 주머니에 숨겨왔던 것이다. 자신도 너무나 먹고 싶었을 텐데... 코끝이 찡해진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맙다 기훈아" 하면서 반을 잘라 '기훈'이 입에 넣어주고 나머지 반을 입에 넣었다. 그것도 코를 톡 쏘는 독한 냄새를 풍기고 구질구질하여 역한 대변이 가득한 대변실에서 둘은 마주 보고 미소 지으며 정말이지 황홀한 꿀맛을 맛보았다. 취침 전 그 꿀맛을 떠올리며 '기훈'이의 갑작스런 선행(?)이 떠올라 모처럼 오늘 밤은 포근한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