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C.S(5)

해군사관후보생

by 글짓는 베짱이

5장. 단결주(옥포탕과 어머니의 손 편지)


"단결!"

경례를 붙이는 손가락 끝자락의 여운이 이젠 매우 익숙한 느낌이었다. 어느새 2주간의 '복종주'를 지나 해군사관후보생 두 번째 훈련 단계인 '단결주'에 진입하였다. '복종주'를 지나며 우리는 어느새 각 잡힌 몸놀림과 각 잡힌 말투로 세상과 단절된 울타리에서 우리만의 세계관에 갇힌 듯 꽥꽥되고 있었다. 아무도 보는 이 없고 듣는 이 없어도 가장 멋있는 해군 장교가 되기 위해 다들 자신을 깎고 갈아가며 새카맣게 변해가는 얼굴에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시 꿀맛 같은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을 찰나 악당 같은 훈련관들의 명령 소리가 들렸다.

"복장 전투복, 연병장 집합 15분 전~!" (해군은 군함 출항 시 30분 전, 15분 전, 5분 전 명령을 내린다. 출항 준비는 30분 전을 시작으로 15분 전에 끝내고 5분 전에는 출항을 실시하게 되어있다.)


우리는 어느새 기다렸다는 듯 재빠르게 복장을 착용하고 연병장으로 뛰어갔다. 거의 매일 보는 바닷가이지만 오늘 밤은 유난히 심성 사나운 듯 파도소리가 철석이는 게 영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집합 후 인원 보고를 끝내자 평소 저녁 구보 대형으로 구보를 시작했다. 어떤 훈련을 할 건지 물어볼 수도 없었고, 또 공지도 듣지 못한 채 건물과 연병장을 이어 돌면서 모두들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내심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사방을 흘겨보고 있었다. 10여 바퀴를 돌고 나니 어느새 온몸에는 열이 발생하여 차가운 밤 바닷바람을 물리치고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딱 그때쯤 훈련관들은 바닷가 앞으로 구보 대형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는 바다를 등지고 중대별 소대별 길고 긴 한 줄씩을 만들어 가며 한참 동안 '오와 열'을 맞추라고 뛰어다니며 소리쳤다. 한참 후에 훈련관들은 '오와 열'이 마음에 들었는지 씩~ 웃으며 한 줄 한 줄 다니면서 우리의 얼굴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날렸다. 왠지 오싹한 느낌이 들면서 저 악당들의 얼굴을 할 수 만 있다면 걷어 차고 싶은 심정이었다.

"좌우의 동기들은 너희가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용기와 의리이다. 지금부터 사랑하는 좌우 동기들과 어깨동무를 실시한다. 실시~!" 그리고 한 훈련관의 일장 연설이 이어졌다.

"지금부터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어깨동무를 풀어서는 안 된다. 그건 곧 자신과 동기의 죽음이고 나아가 단결이 깨졌다는 증거이므로 오늘 밤 너희들은 밤새도록 빵빠레를 받게 될 것이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훈련관의 명령에 조금 전 감동 깊게 들렸던 연설 내용이 금세 배신감으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저 악당들이 또 뭔가 꿍꿍이가 있구먼~"

['옥포탕' 훈련 장면]

"줄줄이 뒤로 3보 가~!" "하나~ 둘~ 셋~" 좌우를 둘러보던 훈련관이 연달아 명령을 내렸다. "줄줄이 뒤로 5보 가~!" "줄줄이 뒤로 10보 가~!" 이제야 이 악당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바로 등 뒤에 있는 바닷물로 우리를 유인해서 차가운 바닷속에 우리의 몸을 담그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이 훈련이 해군 전통 훈련 중 고통스러운 '옥포탕'이라는 훈련이었던 것이다.


발목부터 정강이를 지나 무릎까지 물이 차자 구보로 은은한 온기를 품던 몸뚱이는 송두리째 냉기를 품는 송장 덩어리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가슴까지 물이 차오르자 그렇게 춥던 몸이 적응을 한 건지, 아니면 몸이 마비가 되어 못 느끼게 된 건지 추위가 조금 수 그러 들면서 견딜 만 해졌다. 그때 급격한 기온 변화 때문인지 몸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스르르 물속에서 소변을 보니 따뜻한 나의 액체가 허벅지를 타고 배꼽을 거쳐 가슴팍에 와서 사라진다. 그리고 부르르 떨림~! 내 좌우에 있던 동기들도 나와 같은 느낌으로 떤 건지 추워서 떠는 건지 모르겠지만 부르르 떠는 표정은 한없이 행복해 보였다. 모든 동기들이 가슴까지 물에 잠기자 훈련관은 해군가 합창을 명령했다. 그리고 이어서 '어버이 은혜'를 불렀는데 눈과 코와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울컥함이 차가운 밤바다를 덮고 어느새 울음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옥포탕' 훈련 장면]

옥포탕 훈련이 모두 끝나고 연병장으로 나오자 한겨울 이불속에서 나온 것처럼 바닷바람의 냉기가 온몸을 꿰뚫어 정신이 혼미하고 맹렬하게 추웠다. 그때, 각 소대별 훈련관들은 한 명 한 명을 호명하며 한참 동안이나 묵혀 뒀던 편지를 나누어 주었다. 애인, 친구, 가족들에게서 온 편지들이 전달되면서 감동 어린 환호와 떨림이 해군사관학교 연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편지를 동시에 받았다. 75세의 아버지와 65세의 어머니의 손 편지를 받아 든 내손은 반가움과 추위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바다를 등지고 읽어 내려가는 아버지의 편지는 평소 아버지답게 아주 정돈된 글씨체에 선생님 같은 말씀으로 가득하였다. 어머니의 편지지를 펼치는 순간 '보고싶은 아들'이란 첫 문장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첫 줄부터 글씨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가정 형편으로 중등교육도 제대로 못 받으신 어머니의 삐뚤빼뚤한 글씨체와 틀린 문법이지만 사랑을 가득 담아 꾹꾹 눌러쓴 글씨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중한 한 줄 또 한 줄이었다. 그 위로 뚝뚝 떨어진 나의 눈물이 소중한 어머니의 글귀를 못 알아볼 정도로 지우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춥거나, 또는 뜨거웠던 옥포탕의 마지막은 깊은 떨림으로 끝나버렸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옥포탕 훈련이 더 있었고 끝날 때마다 맛있게 얻어먹었던 건빵이나 카스테라 빵이 그 훈련의 고통을 감탄으로 승화시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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