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사관후보생
6장. 지옥주(악당들의 세상!)
여기저기서 이상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곧 지옥주가 되는데 아마 밥도 안 주고 잠도 안 재우고 훈련만 시킬 거라는 둥 밤새도록 빵빠레를 할 거라는 둥 훈련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이 다시 한번 낯선 단어들로 내동댕이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정말로 떠돌던 소문은 소문이 아닌 현실이 되었고 훈련관의 입에서 '지옥'이란 단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심장이 멎을 듯 긴장되어 마치 저승사자를 마주한 싸~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경례구호도 '지옥!'으로 바뀌면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미궁 속에서 그저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다.
지옥주 첫날이 밝았다. 경례구호가 '지옥!'으로 바뀐 것 빼고는 별다른 이상 징후가 보이지 않는 아침이었다.
평상시와 똑같이 삼정문(해군사관학교 정문)까지 구보를 하고 돌아와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식당 앞 광장에 도열한 우리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평상시 밖으로 새어 나오던 음식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소문이 어쩌면 진짜 일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온몸에 번졌다.
직각 보행을 하면서 들어선 식당 안은 여느 때와 같이 기생가[난 행복해/사랑을 할 거야]가 큰 소리로 밥 먹으러 왔느냐? 는 듯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공기만큼은 싸늘함이 느껴졌다. 그것도 그럴 것이 식탁 위에는 식판이 없었고 오직 물컵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으며, 테이블 중간에는 물병과 조그마한 종지 그릇만 눈에 보였다.
"에이~설마! 진짜 밥을 안 준다고?" 속으로 그럴 리 없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면서 차츰 가까워지는 식탁의 내가 앉을자리까지 와서야 정말인가 보다 "이런 미친~XXX!" 하면서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모두 자리에 착석하자 훈련관이 명령했다. "앞에 놓인 종지 그릇에는 설탕이 들어있다. 지금부터 설탕을 맘껏 앞에 놓인 컵에 탄다, 식사 시작~!" "우리는 가장 강하고 멋있는 해군 장교가 된다~" 우리는 평소 직각 식사 때처럼 설탕물이 든 컵을 연신 직각으로 들어마시면서 허탈하고 좌절스러운 아침식사를 끝냈다. 아침 식사도 못하고 각종 장애물 훈련과 개인 침투 훈련 등을 하자니 입에서는 단내가 한창이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식사 시간이 되었다. 식당으로 들어선 우리는 아침식사 때와 똑같은 광경에 아연실색하며 떠밀리듯 식탁에 앉았다. 훈련관의 아니 악당의 호기로운 명령이 환청처럼 귓가에 처박혔다.
" 중앙에 있는 종지 그릇에는 소금이 들어있다. 맘껏 물컵에 타서 맛있게 먹도록 한다, 식사 시작~!" "우리는 가장 강하고 멋있는 해군 장교가 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점심식사는 오전 중 땀을 흘려 배출된 나트륨 성분을 보충한다는 의미였다는 훈련관들의 아주 마음 따뜻한(?) 식단 편성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을 때 우리는 탈진 직전 상태의 지친 육신을 이끌고 또다시 식당 앞에 정렬했다. 식사도 훈련과정 중 하나였기에 구보 대형으로 뛰어가 인원 보고를 마쳐야만 식당에 입장이 가능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식당 내에서 풍기는 고소한 고기 냄새가 코를 후비고 들어오면서 아득해진 정신이 또렷하게 살아나면서 온몸의 근육과 지방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각 잡힌 직각보행을 하면서 입장한 식당 안에는 두 끼를 굶겨 정말 미안하다는 듯 가지런히 식판이 놓여 있었고 멀리서 보아도 냄새만으로 직감할 수 있는 소고깃국이 가득했다.
"그러면 그렇지~ 이 악당들이 우리를 죽이진 않는구먼~ 헤헤"
모두 착석이 끝나자 훈련관이 신선한 명령을 했다. "지금부터 밥을 국에다 모두 만다, 실시~!" "실시~" 영문도 모르고 밥을 국에다 말면서 속으로 "소고깃국은 말아먹어야 제맛이지~" 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훈련관은 "나는 정말 악당이야!"라고 고백하듯 충격적인 명령을 내뱉었다.
"숟가락 뒤집어~ 식사시간 3분!, 식사 시작~!" "나는 가장 강하고 멋있는 해군 장교가 된다~"
식사 숟가락은 끝이 포크 형태로 생긴 것인데 이것을 뒤집어서 국에 말아버린 밥을 먹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것도 식사시간이 고작 3분이라니...!!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넋을 놓고 있을 수도 없을 만큼 허기진 우리는 숟가락을 뒤집어 허겁지겁 직각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숟가락 뒷면으로 밥을 건지자 국물이 주르륵 흐르고 가끔 운이 좋으면 밥알 몇 개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정말 운이 대박 좋아서 소고깃국에 들어있는 조그마한 고기 한 덩어리가 떨어지지 않고 입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그 순간은 세상 부럽지 않고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밤이 되면 더욱 처참한 지옥 주의 끝을 경험하게 된다. 이 악당(훈련관)들은 우리가 배고프고 피곤함에 지쳐 쓰러져 꿀잠이라도 잘 수 있게 내버려 두질 않는다. 침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훈련관은 한쪽 다리와 얼굴만 쓰윽 내민 상태로 "이 녀석들 지옥 준데도 잘~들 자는구나~~ 흐흐흐~~~" "연병장 집합 5분 전, 복장 팬티, 실시~!"라고 나지막이 말하고는 사라졌다. 꼭 저승사자의 뒷모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