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의 루머의 루머> 시즌 1이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을 주제로 한다면, 시즌2는 이 성폭력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성폭력 피해자 해나가 우리가 생각하는 피해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완벽한 피해자'가 아닐지라도 성폭력은 성폭력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완벽한 피해자는 없다.
시즌2에서는 시즌1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해나의 사생활이 낱낱이 드러난다. 타일러가 해나의 몰카를 촬영하는 동안, 해나는 음란 채팅을 하고 있는 중이었고 여름방학 동안 다른 누군가와 연애를 했으며 전학 오기 전의 학교에서는 왕따 가해자였다 것. 즉, 해나는 완벽한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해나가 피해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해나의 이면을 알게 된 클레이는 혼란스러워한다. 성폭력 피해자이지만, 성적 경험이 있으며 왕따 가해자이기도 한 해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전형에 부합하지 않는 해나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클레이
그러나 드라마는 해나가 '순결하지 않음'에도, 결점이 많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해나가 피해자라는 변치 않는 사실을 전달한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는 그 자체로 인정받기 어렵다. '피해자의 평소 행실이 문제였다'며, '이제 와서 문제 제기하는 걸 보면 합의금이 목적이 아니겠냐'며 끊임없이 피해자성을 의심한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의심하는 사회에서 피해자는 무해하고 순결한 존재가 되어야만 피해자성을 인정받곤 한다.
그러나 성폭력이 성폭력인 이유는, 피해자가 '완벽한 피해자'라서가 아니라 '한 개인을 침해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해나가 성폭력 피해 이전에 성경험이 있었어도, 왕따 가해자였어도 피해자임은 변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깨고, 피해자를 다층적인 면을 지닌 한 인간으로 복구시킨다. 이 과정에서 성폭력에 대한 초점은 피해자 의심에서 벗어나 폭력으로 향한다.
데이트 폭력, 그 복잡함
시간이 갈수록 해나, 제시카 등을 대상으로 저질렀던 브라이스의 성폭력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 클로이는 브라이스의 여자 친구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킨다. 그를 믿는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과연 괜찮을까?
잭은 클로이에게 브라이스랑 사귀는 것이 괜찮은지 묻는다. 클로이는 괜찮다고 대답하지만, 표정은 복잡하다. 괜찮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루머의 루머의 루머>에 관한 첫 번째 리뷰에서도 설명했지만, 성폭력의 정의는 피해자가 얼마나 저항했느냐가 아니라, 가해자가 얼마나 동의를 구했는지 여부이다. 즉 성폭력의 기준은 동의 여부이다. 이런 정의에서 본다면, 친밀한 이성애 관계에서 발생한 동의 없는 성적 접촉은? 그렇다. 폭력이다. 하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했기에 그것이 성폭력임을 인지하기도, 문제 제기하기도,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 브라이스의 여자 친구 클로이가 복잡한 표정을 한 채 침묵을 지키는 이유다.
정의와 존중
이후 클로이는 브라이스로부터 겪은 성폭력을 인지하지만, 재판에 나서 증언하기를 두려워한다. 클로이와 남자아이들은 '정의 실현'을 위해 클로이가 증언해주기를 바라지만, 제시카는 일단 클로이의 의견을 경청하며 누구보다 피해자인 클로이의 의사를 존중한다. 여성이 성폭력 피해자로 나선다는 것의 부담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제시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피해자를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치유의 가능성
마지막으로 볼거리가 있다면, 시즌1에서 해나의 죽음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아이들의 연대다. 해나의 테이프를 숨기기 위해 클레이를 견제하기만 하던 아이들은 해나와 제시카의 성폭력 피해를 지원하면서 연대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클레이를 비롯한 알렉스, 제시카, 잭 등등 아이들은 자신들이 해나의 죽음의 원인이었다는 죄책감과 해나를 잃은 상실감을 함께함으로써 달랜다. 드라마는 '함께함'으로서 치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해나와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던 날 들었던 날의 노래를 다시 듣게 된 클로이. 아이들은 그런 클로이를 안아주며 말없이 달래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