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공정함에 대한 단상

by nay

작년에 있었던 일화 한 토막.

연말이 되면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예년과 달리 작년은 ‘각 사업부별로 잘 운영된 과제를 자체적으로 1-2개 선정하여 최종 발표에 참여 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각 사업부별로 사전에 대표과제를 선발하는 일종의 semi-final이 있었다.

과제 리더를 맡은 입장에서 최종 수상이라는 영광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같이 고생한 동료들을 대표하여 우리 과제가 final에 올라가는 것이 당연히 더 좋은 일이다. 과제의 범위가 다양한 만큼 여러 성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스토리를 잘 정리하여 내부 발표회를 준비했다.

Semi-final 당일. 우리 과제는 제일 마지막 순서였다. 장장 4시간을 기다려 내 발표를 마쳤다. 짧은 시간이나마 나름 잘 얘기했다고 스스로 자축했다. 발표가 모두 끝나고 사업부장님의 강평. 그렇게 그 날 일정은 끝나는 것으로 이해했다. 조만간 최종 선정 과제를 알려주시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런데.

갑자기 "자 이제 최종 발표회에 나갈 과제를 알려줄게"라는 그 분의 말씀. 분명 내 발표가 끝난 지 채 5분이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벌써 평가가 끝났다는 말은 뭐지? 바로 옆 자리에 앉은 나는 그 분이 점수를 매기거나 뭔가 체크하는 걸 보지 못했다. 게다가 발표회 초반에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지에 대한 항목을 보여주셨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벌써 채점이 끝났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걸까.


‘다들 수고 했지만 올 해는 특히 이 두 과제를 선정하도록 할게. 여기에 대해 불만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고’

….


유구무언. 내가 받은 느낌은, 이미 마음 속에 결정된 상태였다. 물론 우리 과제가 선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상황에 대해 불복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발표자를 위한 배려의 관점에서 고민한 흔적은 보였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과제의 어떤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특히 이 과제들이 해당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라는 조금은 객관화된 내용도 제시를 해주었으면 그래도 설득이 되었을 것이다.

답정너라는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던 까닭인지 얼굴에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나 보다. 허탈한 마음으로 퇴근하는데 같은 자리에 있었던 팀장님이 ‘수고했다’는 톡을 보내오셨다. 다음 날, 발표 어떻게 되었어요? 잘 하셨나요?라는 동료들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기억.



회사 생활을 하면서 과연 공정한 평가란 무엇인가 고민이 끊이질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 말고도 크고 작은 부당한 평가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과 카더라가 적지 않다. 내 경우 어느 해 좋은 평가를 통해 금전적 보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저인가요? 라는 물음에 대해 적합한 답을 듣지는 못했다. 글쎄 나를 챙겨주는 것으로 고마워만 하기에는 절차적 투명성을 떠나 내용의 투명성에도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글을 쓰다 보니 어쩌면 나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답정너의 평가를 내린 리더는 아니었나 반문해 본다. 나의 편견으로 객관적 시선은 덮어두고 이미 좋은/나쁜 점수를 마음 속에 정리했던 것은 아닌가. 일을 할수록 확증편향이 심해지는 것을 느낀다. 좋게 보던 사람이 무언가 잘못하면 한 번 실수한 것이다. 나쁘게 보던 사람이 잘못하면 역시 그는 일 못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높으신 분에게 남기는 첫 인상이 참 중요하다. 경험이 많고 사람을 많이 겪은 분일수록 편견이 오히려 심했다. 시간과 경험은 리더의 편견을 더욱 강화시켜 변화의 가능성은 적어진다. 혹시 내가 가진 사람, 일, 가치에 대한 시선이 자못 견고해서 동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신은 조력자가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