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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학회에 속지 마세요

by nay

오랜만에 bric에 갔다가 가짜 학술지 얘기가 나와서 기억 난 올해의 에피소드.

비록 편수가 많지는 않지만 간간이 논문을 내기도 하고, 여러 번 학회에 다니면서 어딘가에 이메일 연락처를 흘리기 마련이다. 그러면 꼭! 반드시! 연락이 온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좋은 저널에서는 당연히 연락이 안오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학회나 저널지의 editor라는 사람의 메일을 종종 받는다. 처음엔 되게 신기했었다. 나도 이제 학자로서 인정을 받는건가 싶은 마음에 우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곧 이것도 스팸메일의 하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올 초에 이런저런 (여기에 밝힐 수는 없는) 이유로 이름도 생소한 학회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것도 런던. 런던 도심이 아니라 바로 근처에 있는 개트윅이라는 공항에 위치한 호텔에서 학회를 한다는 것이 의심스러웠지만 학술대회는 시골에서도 많이 하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름 여기저기서 연사를 모아놓기도 했고 그나마 메이저 회사의 발표도 있어서 믿고 참석했다. 가기 전에 걱정이 되어 개최자에게 '혹시 몇 개의 회사에서 참석하는거니?' 물어봤더니 20개 이상은 된다고 한다. 오.. 내가 잘 모르지만 새롭게 신경 좀 쓰는 컨퍼런스인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도착해 보니 20개 이상의 회사가 아니라 20명 이상의 참석자였다. 오.. 지쟈스.

게다가 참석자 중의 반 이상이 발표자라는 사실. 오호...

더 놀라운 건 명단에 이름만 올리고 참석도 안한 사람이 거의 반은 된다는 점.

기억에 남는 발표자는 셔츠의 단추를 한 3개쯤 풀어 헤치고 머플러를 두른 채 열변을 토하던 모발이식 전문 의사 아저씨.

규모가 작더라도 알찬 발표만 있으면 절반은 성공이라는 생각에 끓어오르는 분노와 당혹감을 참으려했다. 가장경악스러웠던 건 첫날, 점심 먹고 오후 2시쯤 오늘 세션이 끝났다며 돌아가라는 거다. 아니, 5시까지는 해야하는데? 왜 끝났냐고 물어보니 발표자가 안왔어, 라는 쿨한 개최측의 답변. 우와.. 이런 이상한 컨퍼런스도 있구나. 첫날은 참 당황했는데 둘쨋날은 일찍 끝나는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더 자세히 쓰기 그렇지만 여기에 소개한 컨퍼런스 홍보 메일을 보면 참 조악하기 그지없다. 원래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다녀 온 느낌으로 소설을 써보면 이렇다.

이런 모임을 조직해서 개최하는 회사가 있다 (실제로 그럴듯하게 홈페이지도 운영 중). 적당한 주제와 제목으로 컨퍼런스를 구성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그들이 가진 네트워크를 통해 발표자를 모집하고 전세계 관련된 사람들/회사를 수신자로 메일을 보낸다. 거기에 나처럼 낚여서 참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반쯤은 발표자들이니까 결국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이 업계에서도 스팸에 낚이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괜히 시간과 돈만 버리는 아까운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 좋은 학회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기에도 빠듯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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