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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un 13. 2019

싱가포르 살아보니..

작년 말쯤 싱가포르에서 지낸 1년을 돌아보며 정리해 둔 글이 있었다. 포스팅을 해야지 하다가 게으름으로 서랍 속에 방치해 두었던 것을 꺼내어 본다.


1년 반이란 시간을 이 더운 나라에서 보내 본 소감.


-이방인이 적응하기 쉬운 곳

이 부분에 대해 분명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나처럼 적응에 필요한 자원을 회사가 지원해 주는 입장에서 싱가포르는 참 외국인이 정착하기 쉬운 곳이다. 회사의 HR을 통해 어렵지 않게 EP나 DP를 받을 수 있었다. 거주에 필요한 돈 역시 일정부분 회사가 지원해 준다. 잘 알려져 있듯 살인적인 물가가 발목을 잡기 때문에 언어나 문화의 적응과 달리 경제적 적응에는 사람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분명히 호불호가 있을 것이라 본다.

외국인으로 살면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현지에서의 소통이다. 다행히 영어를 아주 잘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아무 문제 없다. 문화적으로도 많이 낯설지 않다. 동서양의 문화가 애매하게 섞인 부분도 있지만 culture shock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체구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익숙하고 주눅들지 않는다 (가끔 유럽에 가면 덩치가 산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거인의 나라에 온 느낌을 받기도 하니까..).


-여행의 최적지

동남아 여행을 사랑한다면 싱가포르 만큼 좋은 허브도 없을 것이다. 부지런한 아내 덕분에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호주를 거쳐 심지어 신혼여행 때나 가봄직한 몰디브도 다녀왔다. 육로도 이용해보고, 큰 배도 탔다. 물론 비행기도 자주 탔다. 동남아 휴양지가 거기서 거기라지만, 맘먹고 떠나야 하는 한국에서와 달리 싱가포르는 참 좋은 입지적 조건을 갖고 있다. 대부분 2-3시간 거리라서 비행의 부담이 적은 것도 사실. 가장 멀리 다녀 왔던 가족여행은 서호주인데 5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한국과 달리 작은 나라라서 공항에 갈 때 몇 시간 전부터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편하다.

Bali 여행


-지루한 일상

최근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싱가포르 생활이 무료하다고 하는 건 매일 똑 같은 풍경을 보기 때문 아닐까? 우리나라는 계절에 따라 같은 곳도 다르게 보이고 느껴지잖아'. 그랬다. 그거였나 보다. 처음엔 녹색 잎이 가득한 거리의 나무들이며 주변 풍경들이 참 좋았다. 그런데 매일 매일이 같은 날의 반복이다.

그래서일까? 연중 언제나 크고 작은 이벤트가 끊이지 않는 나라다.

언제나 초록초록

그렇다고 한국의 연교차 50~60도가 그리운 것은 아니지만 봄의 싱그러움이나 가을에 느낄 수 있는 새벽 찬공기가 머릿 속에 떠오를 때가 있다. 그래서였나 지나고보니 조금 추웠지만 다른 풍경과 환경을 만날 수 있었던 호주 여행이 기억에 남는다.


-미세먼지 걱정 끝

한국에 있을 때는 아침마다 확인하는 것이 하늘 색이었다. 여기서는 그럴 일이 없어 참 좋다. 예전에는 삼림을 태운 재가 날아오는 헤이즈 현상이 있었고 때로는 꽤 심해서 휴교도 했었다고 한다. 특히 아이 키우는 집에서는 많이 공감하겠지만 아이가 미세먼지 때문에 집 안에 붙잡혀 있으면 아주 힘들어 한다. 적어도 올 해는 그런 일도 없어서 외출할 때 걱정이 없다.


-인도 가족들

분명히 인구 비율을 따지면 중국계가 절반 이상인데 유독 내 눈에는 인도인들이 많이 들어왔다. 특히 놀이동산이나 동물원 같은 곳에 가면 인도인들 - 특히 가족 단위 - 을 만나기 쉽다. 어떤 날 주롱 새공원에 공연을 보기 위해 앉아 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거짓말 안하고 관객의 80~90%가 인도 사람들이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늘 이들은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대동하는 가족 단위의 움직임이 많다. 중국계 사람들은 우리랑 비슷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인식이 잘 안되지만 인도인들은 외양이 확연히 달라서 더 잘 느껴질 수도 있다는 회사 다른 분 말씀이 맞을 수도 있다.


-여전히 더운 날씨는 적응이 안된다

좀 살다보면 더운 날씨쯤 익숙해 지겠지 생각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에어컨 풀가동 되는 실내에 더 익숙해져서 조금만 더워도 짜증이 확 올라오곤 한다.


-바베큐 파티

직접 참여한 경험은 많지 않지만 전에 살던 콘도에서는 우리 집 바로 앞이 BBQ pit이라 간접적으로 잘 안다. 더운 날씨지만 밖에서 고기 굽고 술 마시는 바베큐 파티가 참 잦다. 예전에 살던 콘도는 ㄷ자 모양인데 BBQ pit이 딱 가운데라서 한 번 파티라도 열리면 고기 굽는 냄새가 엄청날 뿐 아니라, 그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건물 안쪽에서 늘 시끌벅쩍하게 맴돌았다. 다행인 점은 10시가 되면 대부분 끝을 낸다는 것이다.

얼마 전 아내의 어학원 친구들이 주최하는 가족동반 바베큐 파티가 있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신선한 일이다.


-아이 교육

일단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는 입장에서 부모로서는 아이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잘 적응할까 고민과 걱정이 있었지만 짧은 시간 안에 적응한 아이에게도 감사하다. 주로 많이 듣는 얘기는 영어교육에 참 좋지 않냐다. 학교에서는 영어만 써야 하고 상대적으로 어린이들의 습득력이 높은 점 때문에라도 영어에 익숙해 지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그것보다 세상에는 한국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있고, 다른 말을 쓰는 전혀 새로운 문화(권)가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하고 싶었다. 위에서 말한 바베큐 파티에 가서 처음 본 아이들과 쉽게 친구가 되어 노는 것을 보니 한숨 놓였달까. 부모로서는 그래도 뿌듯한 부분이다.


이상.. 떠오르는 몇 가지들을 정리해 봤다.

요즘도 가끔 내가 여기서 살고 있다는 점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해외에서 살아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생에서 좋은 경험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계속 지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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