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듯 익숙해지지 않는 그것.
'오늘은 또 뭘 (혼자) 먹지?'
배달음식을 시킬까, 픽업으로 들고 와서 사무실에서 먹을까, 식당에 앉아서 먹을까. 매일 점심 때가 되면 하게 되는 고민인데 이것처럼 답을 내리기 어려운게 없다.
대학원 박사 졸업을 앞둔 1년 반은 늘 혼자였다. 지도 교수님의 공직 진출로 더 이상의 학생을 받지 못한 것이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결국 내가 그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말이 좋아 지도 교수지, 업무로 인해 자리를 비운 실제로 그를 볼 시간은 없었다. 커다란 실험실에 아침부터 밤까지 혼자였다. 물론 가끔 찾아와 놀다가는 친구나 후배가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특별히 약속을 잡지 않는 이상, 아침 식사도, 점심 식사도, 저녁 식사도 늘상 혼자여야 했다. 다른 실험실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가면 되지 않나?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사실 하루 이틀이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싱가포르에서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독립된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처음 올 때만 해도 현지 직원이 한 명 있었는데 작년 3월에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그 때 부터 또 혼자다. 더 정확하게는 일주일 중 화요일 목요일이 혼자 식사하는 날이다. 가끔 근처에 계신 한국인 박사님과 식사라도 하는 날이면 그게 그렇게 좋다. 이쯤되면 나는 혼밥을 해야하는 운명인가 싶기도 하다.
혼밥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불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밥을 먹는다는 것에 단지 고픈 배를 채우는 그것 이상의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혼자 밥을 먹을 때는 길어야 20분. 그나마 주문하고 나오는 시간이 소요되고 먹는데 고작 10분이면 충분하다. 워낙 빨리 먹기도 하고, 혼자 먹다 보면 빨리 자리를 뜨고 싶다. 그런데 식당에 또는 사무실에서 홀로 앉아 먹는 그 시간이 하루 일과 중 가장 고독하고 슬픈 시간이다. 따지고 보면 사무실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몇 배는 더 긴데도 말이다. 밥을 먹는 시간은 잠시 모든 것을 잊지만 다 먹고 숟가락을 내려 놓으며 외로운 현실로 돌아온다. 얼른 사무실로 발길을 옮긴다. 식당을 나서면 이상하게도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식당 앞을 지나다가 혼자 식사하고 있는,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보면 왜 저 이는 혼자서 왔을까 궁금해 진다.
그저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을, 왜 그렇게 심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혼자서 지내던 대학원 시절의 힘든 기억이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는지 모른다. 아니 그것 보다 혼자 먹는 내 자신이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싫은 까닭일 수 있다. 어쩌면 밥 친구도 없이 쓸쓸히 허기를 달래고 있는 내가 꼴보기 싫은 것이다.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나는 동물적 본능에 굴복하고 매 끼니를 챙겨야 하는 귀찮음과 부끄러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야, 그게 아니다.
밥을 먹는 시간 만큼이라도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좋다. 묵묵히 내 밥그릇만 비운다 해도 '함께 있는 시간'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같이 밥을 먹고 있는 다른 이들이 내심 부러웠던게다.
그래서 나는 혼자 먹는 밥이 싫었던 것이다.
오늘은 목요일. 혼자 먹어도 좀 덜 외로울 수 있는 식당을 찾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