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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지만.. 다시 한번, 소통.

by nay

소통은 늘 어려운 것

제가 회사에 다닌 지 17년이 넘는데 소통에 대한 강조는 입사 바로 이후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어딘가 일이 어긋나기라도 하면 소통 부족이 이유 중에 하나로 항상 나오기 때문이죠. 그만큼 어렵고 잘 안되기 때문이라는 반증일 겁니다.

'소통이 잘 되어야 한다'는 말이 단순히 대화를 많이 나눈다는 것과 동일한 뜻이 아님을 누구나 잘 알 것입니다. 각자 생각하는 소통의 정의 또한 미묘하게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옆에서 관찰을 해보니 어떤 분에게 소통은 '내가 모르는 정보가 있으면 안 된다'는 뜻이었고요, 또 어떤 분에게는 제발 같은 조직 안에서 다른 부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일해라가 숨은 의도였습니다. 각자 생각의 차이만큼 소통의 방식과 이유, 만족도와 불편함의 괴리는 더 커집니다.

흔히 소통을 잘하는 조직은 성과도 좋다고 하지요. 조직 이기주의라고 불리는 사일로 silo 이슈에서도 소통 문제는 늘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입니다.


실제로 직장 내 소통으로 겪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직장 내 소통이 힘들었던 적이 있는가에 대한 설문에 10명 중 9명이 '그렇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37%가 '직장 안에서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다'라고 답할 정도라고 나왔다니 참 놀라운 일입니다. 소통의 불만은 결국 프로젝트나 업무를 진행하는데 원인이 되고 맙니다. 비단 설문 내용을 떠나 오랜 기간 회사에서 근무해 온 저 자신도 소통의 어려움을 늘 느낍니다.


고맥락 문화도 한몫

한국 기업 문화에서 소통이 더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국과 같은 대표적인 서양 문화에서는 (개인주의가 중심이므로) 사람과 사람을 통한, 즉 관계 중심의 소통 방식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된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한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은 훨씬 관계 지향적이지요. 그런 삶의 방식은 직장 생활에도 그래도 투영됩니다.

개인적으로 많이 느끼는 특징 중 하나로 한국은 특히 위계적인 문화와 함께 고맥락 화법이 많은 어려움입니다.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의견 표시보다는 간접적으로 말하고 듣는 사람이 '알아서 해석'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하는 사람도 하나를 말하면 둘, 셋을 알아서 잘해오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지요. 굳이 그걸 말로 해야 해? 하며 섭섭해하기도 합니다. 상사로부터 어떤 의견을 들었을 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함축적인 의미를 파악하려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때로는 정말 아무 의미 없이 던진 말임에도 그것에 담긴 뜻을 찾는 웃지 못할 경우도 있습니다.

서양에서도 상사의 한 마디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많은 고민을 만들어 주나 봅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기사 중에 이런 것이 있답니다. 한 CEO가 조찬 미팅에서 '블루베리 머핀이 없네'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그냥, 아무 의미 없이 한 말이지요. 이후 부하 직원들은 다른 미팅이 잡힐 때마다 블루베리 머핀을 준비해 두었다고 해요. CEO는 훨씬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신 앞에 준비된 블루베리 머핀의 이유를 알았다고 합니다. 상사의 한마디는 이렇게나 강력합니다.

저는 고맥락 문화권이든 아니든 업무 지시는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사 일을 선문답처럼 만들 필요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회사에서의 소통은 결국 성과 창출에 기여하는 모든 활동의 기본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겹게 얘기해도 그 중요성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소통이 잘 되는 문화를 가진 기업일수록 내부 구성원의 만족도가 높게 나오는 결과를 봅니다.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이나 소기업이라고 소통이 우수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는 보다 긴밀한 소통 기회를 제공합니다. 미시간대학교 연구진의 결과에 의하면 자주 부딪힐수록 협력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결과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같은 빌딩에서 근무하면서 업무 공간이나 동선이 겹치는 과학자들이 함께 연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실제 데이터가 그렇게 나오기도 했고요 (자주 본 과학자들 사이에서 공동연구 숫자가 늘었다).


결국 체질 개선이 필요

소통의 기술에는 늘 상호 작용이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소통의 기본 중 하나는 '경청', '배려'와 같은 자세입니다. 경청과 배려는 듣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말하는 상대가 중심인 표현입니다. 즉 타인의 말을 잘 듣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소통이 안된다고 생각하면 어떤 말을 할까요? 흔히 '거 참 말이 안 통하네' 일 겁니다. 이 표현은 말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정리된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뜻을 전했건만 상대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안)했거나 행동 변화가 없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왜 말이 통하지 않았을지에 대해 거울을 들여다보듯 자신의 행동을 다시 반추해 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소통은 조직 문화와 관련성이 큽니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책 한 권 읽으면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혼자서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소통은 말하는 사람(부서)과 듣는 사람(부서) 양쪽 모두의 관심이 요청되는 영역이거든요. 하지만 그래도 좀 더 실천적인 방법을 터득하고 의식적인 개선을 위해 따라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소통이 안된다고 자리에 앉아서 불평만 하기보다는 무엇이라도 찾아서 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나요?


또한 소통에 관한 접근할 때는 개인과 조직을 나누어서 접근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직장 내 언어생활에 관한 주제] (개인 관점)

최근에 읽은 책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박소연 저)에서 저자는 '일의 언어는 배우면 된다'라고 합니다. 다행이지요? 일터라는 특수한 환경과 상황에서 쓰이는 소통의 기술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입니다.

저에게 와 닿았던 예시는 '안심 첫 문장'으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보고를 듣는 사람에게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지 말고, 핵심을 제일 앞에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보다는 '간단한 현황 보고입니다'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으로 말이지요. 더 좋게는 '보고 안건은 3가지입니다'처럼 예측 가능한 표현을 해야 상대가 안심한다고 말입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학기 초 연중 커리큘럼 소개 자리에 참석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오더니 이따가 할 얘기가 있다는 겁니다. 그 순간부터 앞에서 떠드는 얘기가 무엇인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거든요. 나중에 확인해 보니 좋은 소식을 전해 주려고 한 것인데, 운만 띄우고 요점을 얘기하지 않으니 듣는 사람인 저는 당황스러운 마음일 수밖에요. 이런 사례들을 생각해 보면 항상 우리는 소통의 대상에게 조금 더 마음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회사에서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소통의 방법론이 사례별로 잘 소개되어 있어 유익했습니다. 회사를 오래 다니고 경력이 길다 해도 항상 말에 대해 이렇다 할 자신감이 없었던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좋은 리더들이 어떻게 말을 하는지에 대해 면밀히 관찰한 사례들을 잘 정리해 두었다고 보입니다. 가르침은 늘 주변에 있는 것이지요. 실전에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요 (하지만 이대로 똑같이 했다고 상대방의 반응이 예상대로 나오리란 것도 금물입니다).


[조직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다룬 책] (조직 관점)

개인의 소통 한계를 극복하고 더 나은 문화를 만들기 위한 방안으로 단위 조직에서 도서 워크숍을 한다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보통 한 팀 또는 같은 부서 안에 있을 때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고 가정하기 쉽습니다. <훌륭한 관리자의 평범한 습관들> 저자에 따르면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팀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회사 안에서 서로 돕는다는 생각을 하지만, 상호 의존적인 관계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지금은 더더욱 개인화된 조직문화도 그 이유가 되겠습니다. 긴 시간 회사 일을 하면서 제일 크게 깨달은 점은 나 혼자 달성할 수 있는 성취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 노력과 열정, 능력에 의한 퍼포먼스는 절대 공동의 작업을 이겨내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필요할 때는 열심히 협업을 요청하고 결과를 종용하다가, 일이 마무리되면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는 사람(부서)들도 많습니다. 제가 일부러 과장해서 말하는 것 같지요? 에이 설마 그렇게 하겠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몇 번이나 이런 상황에 마주치고 또 반복되는 것에 지칩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통의 기술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리더 또는 구성원이 자신의 조직 안, 타 조직과의 관계에서 소통의 문제를 절실하게 느낀다면, 함께 책을 읽고 워크숍과 같은 활동으로 구성원 전체의 인식을 각성, 변화시킴으로써 만족스럽지 않은 소통의 개선 기회를 찾는 노력을 해보기 바랍니다. 가능하다면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타 부서원과 함께 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소통을 위한 노력이고, 책을 보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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