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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Nov 26. 2020

우리가 비록 만날 수 없지만.

비대면 강의 녹화를 했다. 

가끔 대학생,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연구와 회사 소개, 비즈니스에 관한 강의 기회가 있었다. 싱가포르에 온 뒤로는 그런 요청이 거의 없었는데 (있어도 힘들었겠지만), 갑자기 지난달과 이번 달에 2건의 비대면 강의를 진행했다. 교수로 있는 대학 동기들이 한꺼번에 요청을 해온 덕이다.

오랜만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료를 만들어 보니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그랬다. 머릿속으로 이런 얘기를 해줄까, 저런 얘기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은 늘 즐겁다. 그러나 재미도 없는 강연을 억지로 듣게 만들기는 싫다. 인트라넷에 올라온 여러 자료들을 참고해 가며, 요즘 상황에 맞게 그리고 클라이언트(교수님)의 요청에 맞게 발표 내용을 수정했다. 특히 책을 출간한 이후에는 연구직 회사원에 대한 스스로의 애착과 자부심 같은 것이 강해져서, 이번 강의에도 포함시켰다. 사실 클라이언트들이 원하는 부분이기도 했고.


막상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이야기를 하려니 참 낯설기 그지없다. 무릇 발표는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에 interaction이 중요한데 그걸 확인할 길이 없다. 현장에서는 어떤 얘기를 할 때 반응을 살피며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이면 적당히 하거나 더 잘 전달되도록 노력을 할 수 있다. 관심을 보이면서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는 장표가 있으면 더 열정적으로, 시간을 할애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진다. 


줌 앱을 띄우고 내 목소리 외에는 아무 잡음도 없는 강의라니, 메아리 없는 ‘야호’ 외치는 기분이다. 그래도 열심히 공을 들여 이야기를 했다. 오히려 비대면이라는 상황이 더 집중해서 떠들도록 만들었다. 내 에너지가 모니터를 넘어, 랜선을 넘어 그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유튜버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만남의 방식이 달라졌다.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는 당연했던 전제는 사라질 위기다. 어떤 대학은 교수 임용을 위한 면접에서도 실시간 미팅이 아닌 발표 자료를 녹화해서 보내면 알아서 보겠다고 했단다. 앞으로 출장, 미팅의 방법과 방향이 예전과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을 가져올 것이다. 사실 이미 시작되었다. 사람과 사람의 직접적인 만남에서 오는 무형의 효과는 분명한데,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바뀐 현 상황이 의외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랄까.


회사에서도 많은 미팅이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발표를 할 때도 온라인 중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의외의 장점이 있다. 특별한 이유로 라이브를 하지 않는 이상, 녹화된 영상을 며칠 동안 올려두기 때문에 마치 온디맨드 시청하듯 편한 시간에 발표를 볼 수 있다. 실시간으로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다시 되돌리기 해서 몇 번이고 시청이 가능하다. 진작에 왜 이런 생각과 시도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다.


연구의 방법, 연구자가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가 없어진다면 더 효율적으로 일이 진행될까? 정보의 공유가 목적이라면 꼭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이란 때론 비효율적이지만 계산하기 어려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작용한다. 어색함으로 인한 낯 섬이 주는 긴장감 속에서 이뤄지는 네트워킹의 기회는 비대면 화상 미팅이 풀어줘야 할 숙제다. 물론, 가끔은 출장을 핑계로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었던 기회마저 사라질까 봐 괜한 걱정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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