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상대성 원리

by nay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말하기 전에는 시간과 운동이 절대적인 값으로 움직인다고 믿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전에도 느끼고 있었을지 모른다. 특히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것을 말이다. 같은 하루라도 어느 날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어느 하루는 지루하기 그지없다. 물론 이것은 다분히 심정적인 상대성 이론으로, 아인슈타인이 말한 그것과는 다르다.


한국 연구소에 복귀, 출근했던 첫 일주일은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를 순간이었다. 첫날 깨달았다.


아, 싱가포르에서 살던(일하던) 속도로는 안 되겠구나.


집에서 격리 생활을 할 때만 해도 몸은 한국이었지만 마음의 속도는 싱가포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격리하는 도중 폭설이 내린 어느 밤, 밖에 나가지 못하고 그저 영상을 시청하듯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국의 풍경을 감상하듯 했다. 어쩌면 격리하는 2주 동안 준비해야 했을 것은 한국의 상대적 속도감에 대한 이해와 복기였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후 결론일 뿐이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아무리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마인드셋을 달리한다 해도 닥쳐봐야 아는 법. 늘 마음속으로는 한국에 돌아가면 아마 순식간에 한국인이 되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해 왔다. 부딪혀보고 현장에서 직접 확인해 보니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어쨌든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업무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정신없이 회의에 끌려들어 가면서 마음의 속도에 엑셀레이터를 조금씩 더 강하게 밟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 구석에는 이방인의 시선이 남아 있다. 고작 3년의 해외 생활이었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지하철 문이 열릴 때 내릴 사람 기다려 주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좁은 주차장에서 반대 편으로 건너가고 싶은데 차들이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고 오히려 속도 내고 지나가는 것이 어색하다. 어쩌면 과거의 내가 계속 여기에 있었다면 당연하게 바라봤을 것들이 조금 뒤틀려 버렸다. 마음의 속도계에 자동 브레이크 기능이 생긴 것 같다.


이런 시선은 회사 일에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당연히 참석하는 회의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이걸 왜 하는지’라는 삐딱한 마음이다. 원래 그랬었지 하는 익숙함, 과거의 경험에서 체득된 막연한 이해가 바람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시간이 흘러 나도 동화되겠지 싶다가도, 괜히 현재 내 모습 즉 ‘익숙한 이방인’의 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른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상대적이라 누군가는 계속 다른 의견을 주어야 할 필요도 있지 싶다. 정반합,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역사는 나선형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뭐 이런 생각들. 내가 반대 편에 있어야 함에 대한 당위성은 없다. 이것도 잠시 해외 생활과 업무에서 얻은 상대성의 원리라고 괜히 주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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