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당신은 늘 젊은 시절입니다.

by nay

실로 오랜만에 원주에 계신 부모님 댁을 찾았다. 격리하느라 못 가고, 이사 준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실제로 이사하느라 등 이유 없는 상황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뵈니 유독 아버지의 노쇠함이 눈에 밟힌다. 늘 단정한 모습으로 계셨던 것 같은데, 그날따라 흐트러진 머리카락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에게선 노인의 취가 풍겼다. 자식이 늙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아직은 모르지만, 적어도 그 반대의 마음은 이제 확실히 알겠다.


나이가 들어 어엿한 가정을 꾸려도 부모 눈에는 늘 아기 같이 느껴지고 맘이 불안하고 모자라 보이는 것이 자식이라 하였다. 먹는 거 잘 챙겨 먹는지, 길 건널 때는 조심하는지 걱정하는 것은 마음속에 여전히 어린아이로 각인된 까닭이다.

그런데 일 년 만에 어머니, 아버지를 뵙고 나니 내 마음속에도 당신들은 어떤 시간 속에 멈춰 계시기를 바라고 있었구나 깨닫는다. 내가 늙어가는 만큼 당신들의 시간도 함께 흐르는데, 그걸 붙잡아 두고 싶은 헛된 욕심이 마음 한편에 있었던 것이다. 욕심과 현실의 괴리가 갑자기 크게 다가와 적잖이 당황하였다. 하긴 이제 팔순이 가까워 오시는데, 자식의 기억 속에는 지금의 내 나이 때쯤으로 부모님 모습이 박제된 채 있었다.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어느덧 집에 갈 시간. 늘 그랬듯 먹을 것을 잔뜩 싸주셨다. 김치도 얻어먹고 있을뿐더러, 밑반찬에 국, 얼려둔 식혜까지 이것저것 챙기니 한 짐이다. 미리 가져간 바구니가 모자라 아버지는 바깥에서 박스를 주워 오시기까지 했다. 전에는 이렇게 싸주시는 것이 싫었다. 짐처럼 느껴진 까닭이다. 그런데 누구 말마따나, 해주실 수 있을 때 잘 받아오고 감사히 먹는 것이 효도라는 것이 맞다. 물론 너무 많이 가져왔다가 처치 곤란하여 버리거나 폐기하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촌부가 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마음 한편이 괜히 쓸쓸하다. 당신들의 삶을 좀 더 잘 기록해 두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클 때는 크느라고 관심 없었고, 가정을 꾸리고서는 우리들끼리 복작복작 산다고 시간이 지나갔다. 나이가 들어보니 내 부모님의 일대기가 괜히 궁금해지는 것이다. 자식이 아니면 누가 관심을 갖고 기억해 주겠나.


어른의 사랑은 아이일 때 어떻게 사랑받았는지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상상해보는 것이어야 한다.

-알랭 드 보통, 사랑의 기초



유독 이 문구가 스산하게 다가온다. 사진을 취미로 하던 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있다.

"그래, 너라도 그런 취미를 갖는 게 좋지. 아버지는 하고 싶으신 게 많았지만 못하셨잖니"


쭈그려 앉아 열심히 반찬을 담아주시는데 본의 아니게 휑하게 빈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그런 아버지 모습에 그저 나는 어떤 부모가 되고 있는가, 나는 당신들처럼 살 수 있을까.. 당신들의 희생이 우리를 이렇게 키워내셨음에 마음이 무겁고 감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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